<문화 초대석>“청남대를 교육의 메카로 만들어 달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심만수기자

기념식조차 열지 못하는 이상한 기념일이 있었다. 스승의 날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초·중·고교 교사들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이날 제자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15일은 제27회 스승의 날. 기념식조차 없었던 지난해와 달리 일부 교육 관계자들은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스승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주무 장관의 참석도 없이 전국 36만 현장 교육자를 대표하기에는 초라한 기념식, 그러나 이 기념식이야말로 새 교육을 향한 중요한 계기라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이원희(56) 회장이다. 지난해 7월 평교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교총 회장이 된 지 약 10개월,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회관 회장실에서 만난 그는 올해 스승의 날과 이를 전후한 제56회 교육주간(10~17일)에 대해 묻자 온갖 이야기를 줄줄 쏟아냈다. 요컨대 학생과 학부모가 행복한 배움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행복하고 기가 살아야 한다는 거였다.

그러나 인터뷰는 덕담만 주고받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

―얼마 전 이 회장의 촛불집회 기자회견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다. 현 정부의 교육 정책 비판과 학생들의 촛불집회 반대 중 어디에 방점이 찍혀 있는가.

“광우병 괴담, 촛불집회, 특히 5·17 집단휴교 문자메시지 유포 같은 것들을 보며 교육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학생들을 만나본 결과 이들의 불안에도 근거가 없지 않았다. 사실 급식에 대해선 학생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지 않은가. 여기에다 자고 나면 바뀌는 입시제도가 학생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의 자제를 정중하게 요청하는 한편, 정부 측에는 가감없는 진실을 설명해주길 요구할 필요가 있었다.”

―일관성 없는 입시제도가 학생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의 영어 몰입교육이 상징하듯 현 정부의 상당수 교육 정책이 여론 수렴 없는 일방통행식, 아이디어 나열식 또는 던져 놓고 보기였다. 이게 학생들의 불안을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대통령 선거 당시, 교육 대통령을 뽑겠다며 사실상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는가.

“지난 10년 동안 교육자들은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며, 획일화한 교육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새 대통령은 현장 교육자를 존중하며 공교육을 살려내는 한편 자율, 경쟁, 수월성 등의 가치가 균형이 잡힌 정책을 펴길 기대했다. 현 정부의 탄생과 함께 균형 잡힌 교육이 이뤄지길 바랐던 건 맞다.”

―그런데 지금은?

“총론에서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각론이나 방법론에서 현장이나 시대 정신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회장 취임 이래 줄곧 교육 현장을 강조하며 탈이념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교총 자체가 보수 이념의 주요한 축으로 기능해온 것 아닌가.

“교육자는 과거와 현재의 삶과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미래를 설계하게 돕는 전문직이다. 보수적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며 발전시키는 것이 전제인 이상, 교육자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10년 동안 좌파 이념이 득세하면서 교육자가 개혁의 대상으로 몰렸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도 학생이나 학부모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탈이념은 이런 교조에서 벗어나 교육현장의 문제를 다루자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학교 자율화에 강력히 반대한다. 교총이 주장해온 자율화의 요체는 무엇인가.

“수업이나 교원 인사 등 현장 교육과 관련된 권한을 학교 자율에 맡기되 정부의 초·중등 교육에 대한 기획, 장학, 편수, 평가 지원 기능 등은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장의 권한을 강화하라는 이야기인데, 학교장에 대한 불신도 없지 않은 상황 아닌가.

“극히 일부 문제가 있다고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어렵더라도 학교가 교육 현장의 상황에 맞게 책임지고 교육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0교시 수업과 우열반 편성은?

“현장의 상황과 학생, 학부모의 요구 그리고 교육적 필요에 맞춰 0교시건, 우열반 편성이건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대학 입시 정책이 또 바뀌었다. 뭔가 근본적인 대안이 없겠는가.

“고교는 교육 과정에 따른 교육을 하게 하고, 대학은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를 자율적으로 뽑아가게 하는 것이다. 굳이 내신이나 수능시험, 논술뿐 아니라 사정관의 인터뷰, 면접이나 토론, 논문, 영어능력, 특기 등등 다양한 방법을 열어놓아야 한다.”

―더욱 다양한 사교육이 판치고 교육 양극화가 심화할 우려는 없는가.

“제대로된 평가로 사교육 문제는 어렵잖게 해결할 수 있다.사교육의 핵심은 주입식 단순 반복 교육이다. 다양한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있게 사유하며,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학생을 뽑을 수 있는 수준높은 입시 시스템을 만들면 사교육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상위 5% 학생들에게만 초점을 맞추느라 대다수 보통 학생들은 소외되지 않을지.

“평준화의 틀을 일시에 뛰어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학생을 맞춤식으로 교육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교사 연수 강화도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일보 지면을 통해 긴급히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청남대를 현장 교육자들이 연수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넘겨 달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옛 별장 말인가.

“그렇다. 지금 교육공무원 연수원에서 연수가 이뤄지고 있으나 대부분 형식적이다. 교사들에겐 현장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맞춤형 연수가 시급하다. 청남대 정도의 공간이면 현장 교사 연수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하는 사회교육 프로그램 운영, 우리 교육의 역사를 보여주는 교육박물관 설립 등 온갖 것이 가능하다. 충북도와 중앙 정부가 서로 관리를 미루느라 계륵이 된 청남대를 교육의 메카로 활용하는 것만큼 멋지고 실용적인 대안이 어디 있겠는가.”

―스승의 날인데다 머잖아 취임 1년이다. 소감과 각오는.

“대다수 교원단체와 달리 교총은 회원이 증가세다. 고무적이다. 61년 전 창립 정신을 이어 교육을 통한 나라 발전에 기여하겠다. 다만 학생, 학부모가 만족하고 행복한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자가 행복해야 한다. 교육자의 기를 살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

인터뷰 = 김종락 사회부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