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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문화] 영화평론가 오동진의 동시 상영관 게재 일자 : 2008년 05월 20일(火)
영화의 거장 35인 ‘180초의 고백’
그들 각자의 영화관, 영화보다 더 재밌는 극장이야기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여자가 울고 있다. 옆에 앉은 남자가 살며시 여자의 손을 감싸 잡는다. 어두운 극장 안. 남자가 속삭인다. “결국…여자가 죽었어.” 허공을 응시하던 여자의 눈에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 문을 향해 걸어 나간다. 따각 따각. 여자는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다. 지팡이에 의지해 밖으로 나간 여자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담배를 입에 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담배 끝을 손으로 확인한 후 불을 붙인 그녀의 표정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극장 안과 달리 훤한 대낮의 거리 풍경. 뒤따라 나온 남자가 그녀의 어깨를 잡는다. 여자는 남자의 품을 파고들며 결국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흑백이었어요 컬러였어요?” 남자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대답한다. “컬러였어.”

눈물기를 가득 담은 이 서정미 넘치는 장면은 단 3분. 이름하여 장편(掌篇) 영화다. 작가는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지난주에 개봉돼 조용히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사진)은 이렇게 세계 35인의 거장 감독들의 3분짜리 장편들을 모은 작품이다. 이냐리투 말고도 테오 앙겔로풀로스, 장이머우(張藝謀),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켄 로치, 마누엘 데 올리비에라 등등 이름을 거론하기가 숨이 가쁠 정도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한국의 작가들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옴니버스 영화는 이 거장 감독들이 갖고 있는, 영화관에 얽힌 특별한 추억에 대한 얘기들이다. 지난해인 제60회 칸 영화제가 특별상영한 작품으로 프로듀서는 이 영화제의 프로그래머 가운데 한 명인 질 자콥이 맡았다. 프로듀서의 마당발, 기획력이 돋보인다. 고색창연한 예술주의를 주창하고 고집해온 칸 영화제가 아니었으면 기획 자체가 불가능했을 작품이다.

3분짜리 35편의 영화들 모두 한결같이 각각의 뚜렷한 개성과 예술관을 자랑해온 영화작가들의 작품인 만큼 첫 오프닝 컷만으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자기만의 색깔들을 자랑한다. 그래서일까. 영화마다 오프닝 크레디트가 없는데, 이는 영화광들이라면 작품만 보고도 단박에 누구의 작품인지를 알아맞히는 재미까지 곁들이는 장치로 활용된다. 예를 들면 핀란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작품을 보면 여지없이 배우 가운데 한 명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나와 그의 대표작인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를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의 데이비드 린치는 이 짧은 영화에서조차 여지없이 살바도르 달리류의 초현실주의 감각의 영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섬뜩하게 만든다. 캐나다의 거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최후의 극장에서 자살한 마지막 유대인’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통해 직접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눔으로써 영화미래에 대한 자신 특유의 비관주의를 그려낸다.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는 또 어떤가. 관객의 한 명으로 직접 분한 그는 영화 속 스크린에 자신의 ‘위대한’ 실패작인 ‘만달레이’를 걸어 놓고는 옆에 앉아 깐죽대며 평론가연하는 한 남자를 망치로 때려 죽인다. 영국 최후의 정통 좌파 감독 격으로 불리는 켄 로치는 극장에서 표를 사는 부자의 대화를 통해 지금 영국에서는 볼 영화가 하나도 없다는 것, 그나마 볼 만한 영화는 목요일 심야에(금요일에 프로그램이 바뀌기 전에) 단 한번만 상영할 정도로 홀대받는다는 것을 풍자해낸다. 영화 속 이들 부자는 결국 영화 보기를 포기하고 축구를 보러 간다. 차라리 축구를 보게 만드는 영국의 영화 현실. 켄 로치의 짧은 영화는 3분간은 웃기지만 나중에는 30분 이상을 생각하게 만든다.

3분 안에 도대체 무슨 얘기를 담을 수 있느냐고? 영화에 있어 3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거장들에게 3분은 얼마나 충분한 시간인지,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웅변처럼 보여준다. 최근의 영화들로 잇달아 실망감을 느끼신 분들에게는 큰 위안이 될 작품이다. 35인의 거장들에게 숭배의 잔을!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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