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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08년 05월 30일(金)
바이러스는 왜 ‘생명체’가 아닌가
생물과 무생물 사이 /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화두다. 분자생물학자인 저자는 이 화두를 붙잡고 생명과학의 세계를 생생하게 펼쳐보인다.

역사적으로 저명한 생물·물리·화학자들의 면면과 그들의 연구활동, 그 배경에 서려 있는 암투와 갈등,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난관과 이를 뚫고 나가는 용기, 번뜩이는 기지와 행운 등을 만만찮은 필력으로 그려낸다.

학술서적, 그것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과학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만 무려 50만부가 팔려나갈 정도로 책의 흡인력은 대단하다.

저자는 이 책으로 지난해 일본 최고 권위의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 내용을 통해 저자의 사고(思考)를 따라가보도록 하자.


# 바이러스는 생물인가

바이러스는 단세포 동물보다도 훨씬 작다. 대장균을 럭비공이라 한다면 바이러스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탁구공이나 유리 구슬 정도의 크기다. 광학현미경으로는 해상도의 한계보다 작아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 바이러스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광학현미경보다도 열 배에서 백 배 정도 배율을 높인 전자현미경이 개발된 1930년대 이후였다.

바이러스는 영양을 섭취하는 법이 없다. 호흡도 하지 않는다. 물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도 않을 뿐더러 노폐물을 배출하는 일도 없다. 즉 대사(代謝)를 일절 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를 혼합물이 없는 순수한 상태로까지 정제시킨 후 특수한 조건에서 농축하면 ‘결정(結晶)’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바이러스는 광물과 흡사한, 틀림없는 ‘물질’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단순한 물질과는 분명히 구분 짓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큰 특성이 있으니 바로 스스로를 ‘증식’한다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자기복제 능력을 갖고 있다. 바이러스의 이 능력은 단백질 껍질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단일 분자가 도맡고 있는데 핵산=DNA 혹은 RNA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 무엇이다. 만약 생명을 ‘자기를 복제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바이러스는 틀림없이 생명체다. 하지만 저자는 바이러스를 생물이라 정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생명이란 자기 복제를 하는 시스템’이라는 정의만으로는 생명을 규정할 수 없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생명의 정의에는 또다른 무엇이 필요한가.


# 생명에는 ‘동(動)적인 질서’가 있다

생명은 현존하는 질서가 그 질서 자체를 유지하는 능력과 질서정연한 현상을 새로 창출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살아 있는 생명은 끊임없이 엔트로피(물질계의 열적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의 하나)를 늘린다. 즉 죽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최대 엔트로피라는 위험한 상태로 다가가는 경향이 있다. 생물이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는, 즉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부(負)의 엔트로피 = 질서’를 섭취하는 것이다. 실제로 생물은 항상 ‘부의 엔트로피’를 ‘먹음’으로써 살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생명은 ‘부의 엔트로피’를 위해 음식물에 함유된 유기 고분자의 질서를 섭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물은 소화 과정에서 단백질이든 탄수화물이든 유기 고분자에 함유되어 있을 ‘질서’를 잘게 분해, 거기에 함유된 정보를 아낌없이 버린 후에야 흡수한다. 왜냐하면 그 질서란 것은 다른 생물의 정보에 들어 있던 것이며 자기 자신에게는 노이즈(noise)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 생명은 요소의 ‘흐름’이 유발하는 효과다

우리는 자신의 표층, 즉 피부나 손톱이나 모발이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옛것을 밀어내는 현상을 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표층’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신체의 모든 부위, 장기나 조직에서뿐만 아니라 언뜻 보기에는 고정적인 구조인 것처럼 보이는 뼈나 치아에서도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분해와 합성이 반복되고 있다.

‘새 것’으로 대체되는 것은 단백질뿐만이 아니다. 저장물로 인식되던 체지방조차 다이내믹한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다. 한마디로 생명이란 ‘동적 평형상태에 있는 흐름’이다.

모든 원자는 생명체 내부를 흐르며 빠져나가고 있다. 우리는 종종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인사할 때 “여전하네”라고 한다.

하지만 반년 혹은 1년 만에 만났다면 분자 차원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다. 전혀 ‘여전하지 않은’ 것이다. 생명체는 우연히 그곳에 밀도가 상승하고 있는 ‘분자 덩어리’일 뿐이다. 그 ‘분자 덩어리’는 빠른 속도로 대체되고 있다. 그 같은 흐름 자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항상 외부로부터 분자를 흡수하지 않으면 빠져나가는 분자와 수지가 맞지 않게 된다.

# 생명은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 없다

기계에는 시간이 없다. 원리적으로는 어느 부분부터든 만들 수 있고, 완성된 다음에라도 부품을 제거하거나 교환할 수 있다. 그러나 생물에는 시간이 있다. 그 내부에는 항상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에 따라 접히고, 한 번 접히면 다시는 펼칠 수 없는 존재가 생물이다.

생명이라는 이름의 동적인 평형은 그 스스로 매 순간마다 위태로울 정도로 균형을 맞추면서 시간 축을 일방통행하고 있다. 이것이 동적인 평형의 위업이다. 이는 절대로 역주행이 불가능하며, 동시에 어느 순간이든 이미 완성된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에 혼란을 야기하는 인위적인 개입은 동적 평형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자연의 흐름 앞에 무릎 꿇는 것 외에, 그리고 생명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고백한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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