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초대석>“풍요 속에 ‘호국보훈’망각 안타까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김동훈기자

김양(55)국가보훈처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다. 김구 선생은 보훈처가 매년 전국의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해온 ‘국민보훈의식지수 조사’에서 지난 2005년 이래 보훈 인물에 대한 행적 이해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해온,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독립투사다. 지난달 실시한 올해 조사에서도 김구 선생은 당연한 듯이 1위(71.3점)를 차지했고, 2위는 안중근 의사(69.4점)였다.

오는 9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김 처장과의 첫 대화는 ‘할아버지 김구 선생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시작됐다.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보훈처 집무실에서 만난 김 처장은 “기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며 “태어나기 전인 1949년 6월26일 돌아가셨기에 할아버지는 책으로 접해 온, 부모님 말씀 속의 인물이셨다”고 운을 뗐다. 김 처장은 “늘 할아버지의 명예에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면 안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행동, 행실, 언어 사용 하나 하나 조심하고 있다”면서 “가훈은 너무 간단하다. 어릴적부터 ‘나라사랑’이었고 지금 아이들에게도 ‘나라사랑’이 몸에 배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올해는 건군 60주년,내년엔 상하이(上海)임시정부 수립 90주년(4월13일), 2010년은 안중근의사 의거·순국100주년(3월 26일)으로, 국가유공자 등 보훈 가족과 온국민에게 워낙 큰 의미가 있어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상하이와는 4대에 걸쳐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하이 총영사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요.

“2005년 광복 60주년때 특임공관장으로 상하이 총영사를 발령받고 그곳에서 2년 반을 보냈습니다. 상하이는 대한민국 국호가 처음 사용되고 임정 단체가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출생지입니다. 더구나 제 집안에서 증조 할머니(곽낙원 여사), 조부모님, 그리고 부모님이 모두 상하이와 인연을 맺었고 제 딸이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총영사로 재직하는 동안 전 세계에서 한국인학교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학생수가 많은 상하이 한국학교를 신축했지요. 지난해 7월에는 상하이 대한민국문화원을 개원, 임시정부 발자취를 교육할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11월30일엔 윤봉길의사 의거 후 김구 선생 도피처인 항저우(杭州)등지에 임정 구청사를 복원해 개소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상하이 총영사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안중근의사 유해발굴사업이 교착 상태에 빠져 아쉬움이 많습니다.

“안중근의사 유해발굴은 이 자리에 오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제 집안과도 연결되는데, 큰어머니(안미생여사)께서 안의사의 조카가 되시지요. 보훈처에 온 뒤 유해 발굴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발굴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중국측도 발굴작업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워낙 기록 자체가 미비하고 순국 100년이 경과해 정확한 장소를 찾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 소견으로는 일본인들이 열쇠가 되는 기록을 갖고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일본인은 기록을 잘하기로 유명한데다 당시 일본인들이 영웅으로 떠받들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인물을 아무데나 묻어버렸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새정부 들어 처음 맞이하는 보훈의 달입니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선 지원 대상자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합니다. 미국처럼 제대군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 독립유공자·6·25참전용사, 해외에서 국익을 위해 싸우신 분, 민주화 유공자, 경찰 등이 모두 대상자지요. 요구 사항도 매우 다양해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무려 39개에 이르는 복잡한 보훈 관련법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한데 이를 통폐합할 계획은 없는지요.

“통폐합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정리할 필요는 있겠지만 나름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정리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주변지역 재개발 사업등과 관련해 중국측과 협의가 진척됐습니까.

“중국 지진 참사 등을 고려해 우리 정부는 포괄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 들어가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임정 청사 재개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와 관심을 요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2년 6월 일어났던 제2 연평해전 기념식을 새 정부 들어 보훈처가 주관키로 했는데 준비상황은 어떤지요?

“지난해까지 추모행사가 해군2함대사령부 자체 행사로 진행되는 등 희생자에 대한 예우나 관심이 부족했다는 유족과 국민들의 비판여론이 제기됐습니다. 새 정부 출범후 희생자들의 명예를 선양하고 ‘국민과 함께 영원히 기억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종전의 ‘추모식’을 ‘정부기념행사’로 격상하기로 했습니다. 오는 29일 오전10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유족, 부상자, 시민, 학생등 1000여명이 참석해 행사를 진행합니다. 전사자들을 위한 추모의 글 남기기, 사진 전시회, 독도함 공개행사 등 부대행사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보훈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질높은 의료지원 서비스입니다. 미국 등 보훈선진국처럼 질높은 의료시설과 의사를 갖춘 보훈병원뿐 아니라 동네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보훈처에서 정산하는 시스템 등을 도입해 달라는 요청이 많습니다.

“독립유공자의 평균 연령은 80대 후반이 넘었고, 6·25전쟁 참전 용사도 80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도 벌써 60대 중·후반입니다. 보훈병원이 전국이 5개 밖에 없는데 예약 환자들이 많은 한계가 있어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부터 위탁병원을 대폭 확대할 것입니다. 현재 200개 수준인 위탁병원에서 올해 중 58개를 추가하고, 현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12년까지 464개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또 2010년까지 2257억원을 투입, 서울 강동구 둔촌동의 서울보훈병원을 3차 진료기능을 갖춘 1400병상 규모의 보훈중앙병원으로 확충할 예정입니다.”

―보훈처가 매년 조사하는 국민보훈의식지수가 광복60주년이었던 2005년이후 3년간 연속 하락세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풍요로운 세태 속에 점차 잊혀져가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천양지차입니다.우리는 나라를 빼앗겨 봤고 동족 상잔의 아픔도 겪었고, 분단 국가로서 어려움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가 위기나 국난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올수 있습니다. 최근 국가유공자 분들께 한가지 주문을 했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젊은 후배들이 나라사랑과 호국보훈의 의미를 생각하는 계기를 갖도록 모교에서 보훈특강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젊은 후배들이 국가가 어려울 때 자신을 던질수 있도록 어릴 적부터 마음가짐을 다잡고 선대들이 어렵게 나라를 지키고 꾸려왔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김양 처장은 누구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이자 창군멤버로 공군참모총장과 교통부 장관을 지낸 김신 장군의 아들이다. 가문의 이력에 어울리게 평소 예의 바르고 겸손한 처신으로 잘 알려져있다.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주 대만 대사를 지낸 부친을 따라 1962년부터 10년간 대만에서 체류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연세대 정외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대만 생활과 미국 유학 덕에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유럽우주항공방산회사 등을 거친 외국계기업 최고 전문경영인(CEO) 출신이다. 새 정부 들어 첫 보훈처장직을 맡아 온화한 성품이면서도 합리적인 경영기법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보훈처를 이끌며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1953년 대구 출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79년 공군중위 전역 ▲프랑스 국영 우주·항공방산회사 한국대표 ▲㈜KDI사장 ▲㈜EBT 네트워크 대표 ▲상하이 총영사관 총영사

인터뷰 = 정충신 사회부차장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