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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게재 일자 : 2008년 06월 28일(土)
“국악 현대화 좋지만 ‘싸구려’로 흘러선 안돼”
정년퇴임 하는 ‘국악작곡 1세대’ 백대웅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사진 = 김선규기자 ufokim@munhwa.com
오선지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고, 쾨헬벨의 캐논변주곡을 가야금으로 편곡한 국악작곡 1세대 백대웅(65)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전통예술원 교수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 한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백 교수의 퇴임기념연주회 ‘이면과 공감’은 제자들이 마련한 음악회로 한국 예술계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대거 참석, 국악은 물론 한국 예술 전반에 끼친 그의 영향을 짐작케 했다. 황지우 한예종 총장은 이날 “동시대의 전통음악이 서야 할 미래의 지점을 미리 가보는 즐거움 절반, 동시에 그것이 안겨주는 외로움 절반을 벗삼아 온 분”이라며 “형용이 쉽지 않은 그 치열한 흔적이 오늘 연주된 작품들”이라고 특유의 호방한 문체로 축하했다.

백 교수의 이름과 음악은 들었지만 제대로 인사는 못나눴다. 한국 예술계가 창작이 약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연주자보다는 작곡가를 가볍게 여긴 이유도 없지 않아 부끄러운 게 사실이다. 어렵게 인터뷰 요청 전화를 걸었는데 “합시다”라고 너무 쉽게 답이 온다. 언제 시간 여유가 있느냐고 하니까 “언제든지”라고 뚝 자른다. 이렇게 무뚝뚝하면 인터뷰에 고생께나 하겠다는 걱정을 하면서 25일 오후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 전통예술원 2층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그러나 오해였다. 그는 무뚝뚝하다기 보다는 ‘선기(禪氣)’가 있다는 게 정확했다. 질문을 하면 마치 선문답처럼 앞뒤를 뚝 자르고 정면으로 치고 들어온다. 그것도 죽비나 죽장이 아니라 날이 퍼렇게 선 계도(戒刀)다. 정년퇴임연주회 ‘이면과 공감’을 이용해 좀 멋을 부려 정년퇴임의 ‘이면’에 대해, 또 ‘공감’하는 부분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더니 “이면은 판소리요, 공감은 이면에 대한 탄복”이라고 답했다. 이게 무슨 뜻? 뭐라 질문을 이어가지 못해 멈칫하고 있는데 명료한 해설이 이어졌다.

“예악은 정악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말인데 이때 판소리는 ‘이면’으로 바뀝니다. (판소리가) 실제 ‘뒤에’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예악으로 설명하는 ‘이면’이 아니라, 음악정신의 ‘이면’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면에 탄복하면 비로소 ‘공감’이 되는 거지요.”

판소리에 대한 음악적 가치를 명료하게 밝히며 학계의 통설을 여지없이 ‘까부수는’공격적인 칼날에 피가 뚝뚝 묻어나는 것 같다. 이런 분에게는 질문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대답이 선문답인데 격식을 차리며 물었다가는 인터뷰는 산으로 가기 마련이다. 정년에 대한 소감을 구체적으로 물었더니 “정년은 꼭 필요하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제가 전남대, 중앙대, 전통예술원 등 세 군데서 교수를 했습니다. 제가 교수가 돼서 보니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에서 3개월 연수받고 국악교수 자격증 딴 고교선생님에서 바로 교수가 된 분이 많았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실력과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정년이 꼭 필요하다고 평소에도 말해왔습니다.”

그는 “1년에 100일도 일하지 않는 교수가 안식년이 뭐가 필요하느냐”며 독설을 이어갔다.

“교수들 나쁜 사람이에요. 제가 (전통예술원)원장할 때 신임 교수 임용식에서 총장이 제게 한마디하라고 했을 때 ‘제일 못된 집단이 교수집단’이라며 자기가 아는 것만을 주장하는 ‘전문바보’들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좀 분위기가 썰렁해졌지만 사실인 걸 어떻게 합니까.”

교수 일반에 대한 독설은 국악이론 일반으로 옮겨져 계속됐다. 백 교수는 “국악 이론계가 형편없다”며 “그게 모두 ‘똥통학교’출신들 때문”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구체적으로 L, H, S 등 국악계 원로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책임을 물었다.

“연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고전 한 두권을 베껴먹고만 있습니다. 그리고는 기득권, 문화권력이 되니까 이제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는 또 ‘이론가’들의 문제점으로 일반화돼 공격범위가 예술계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계로 확대됐다.

“이론가라는 게 뭡니까. 실제를 설명하는 게 이론 아닙니까. 그런데 이론이 먼저 있고 그것에 따라 실제가 생겨난 것처럼 행세를 합니다. S대 경제학 교수들보다 정주영(전 현대그룹명예회장), 이건희(전 삼성그룹회장)가 훨씬 더 경제를 잘 압니다.”

백 교수는 이같은 입장에서 “어느 구름에 비올 줄 모르기 때문에 고려대 교양과정에 강의를 나간다”고 덧붙였다. 실제와 유리된 이론을 비판하다가 갑자기 ‘기상학’을 거론하며 고려대에 강의를 나간다니, 이해의 속도가 보통 빠르지 않으면 내용을 쫓아가기가 쉽지 않아 ‘어느 구름이… 무슨 뜻’이라고 더듬거렸다.

“똑똑한 고려대생들 중에서 한민족음악을 아는 좋은 실천가가 나오면 예술도, 경제도 발전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가서 열심히 ‘이면’을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그는 특히 홍난파와 최남선의 잘못된 국악관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홍난파 그 사람이 ‘전통예술은 화음이 없으니까 원시음악’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가 조선정악연구소에서 전통음악을 배운 천재였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서양음악 하는 사람들이 ‘국악은 원시음악’으로 이해하게 됐어요. 또 일본 연구가들이 일본의 경우에 비추어 느린 음악을 지배계층의 음악으로 보고 정악, 흥겹고 빠른 판소리 등을 서민들의 음악으로 구분해 속악으로 나눴습니다. 그것을 ‘똥통학교’출신들이 아무 비판없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여 일반화하고 있으니 정말 문제입니다.”

그는 “정악은 오래된 것이고 속악은 컨템포러리의 시간 개념이지 계층의 개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오류가 판소리 동편제, 서편제의 구분이라고 지적했다.

“판소리의 이해에 최남선 등 국문학자의 공이 분명 있어요. 그런데 판소리는 음악이지 문학이 아닙니다. 동편, 서편은 지역의 구분이 아닙니다. 먼저 시작해 동편이고, 나중에 시작해 서편이에요.”

백 교수는 판소리라는 용어 자체가 만들어진 것도 그리 오랜 일이 아니라고 했다. 18, 19세기에는 잡가, 타령이란 이름으로 불렸고, 20세기 전반에도 창극, 창가였고 후반에 와서야 판소리로 불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성호사설’의 내용을 인용, 궁중의 음악이 결코 느리지 않았고 오히려 빠른 곡이 유행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형식주의 음악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느린 음악을 치켜세우며 정악이라고 한 거예요. 아니 궁중에서는 환갑 잔치에도 느린 음악을 연주하고, 백성들만 안방에서 빠른 음악을 연주한답디까. 사람은 다 똑같은 거예요. 제가 왜 1년에 책을 두 권씩 쓰는 줄 압니까. 틀린 것을 바로잡아 이론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예요.”

그렇게 ‘똥통학교’라고 욕하는 이론가들을 왜 원장시절, 교수로 초빙했는지 궁금했다. “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었다”고 너무 쉬운 대답이 돌아온다. 이론 싸움은 독하게 하면서도 일에서는 공평무사한 측면에 그가 새삼 새로 보였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좀 주위와 어울려 살 만도 한데 예술의 이론이나 실제에서는 도저히 한치의 양보도 없다. 참 피곤하게 살았다 싶다. 그는 “그렇게 생긴 걸 어떻게 하느냐”고 웃지도 않고 말했다.

예술론에 있어서는 결벽증적일 정도로 원칙주의자인데 정간보가 아니라 오선지를 쓰며 작곡한 것이나, 캐논을 가야금으로 편곡한 것이나 방법론에서는 상당히 앞서갔다. 이와 관련, 그는 “전통이라는 것은 단순히 옛날 것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엉터리 책만 보고 전통을 주장해서 그래요. 채보 능력도 없는 이론가들이 ‘악학궤범’만 보고 전통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책은 사실 음악에 아마추어인 사람이 쓴 책입니다. 악보를 모르고 무슨 음악이라고 합니까. 판소리를 들으며 모두 오선지에 채보했습니다. 또 모두 똑같은 음으로 연주하는 단선율이 재미없어 정간보가 아니라 오선지로 화성을 넣어 작곡했더니 그런 국악이 어디있느냐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 때 ‘병신같은 XX들 XX하고 자빠졌네’라고 쏴줬는데 그게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국악은 단선율’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제 정간보로 작곡을 하는 국악작곡가는 거의 없다. 그런데 요즘 국악을 현대화, 세계화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퓨전으로 가 좀 ‘싸구려’ 느낌이 있다.

“박범훈 (중앙대)총장 하고 그런 말을 많이 해요. 우리는 더워서 옷을 좀 벗었는데 요즘 빤쓰(팬티)까지 다 벗으려고 해서 문제라고요.”

그는 또 “‘퓨전’이라고 했는데 그게 가능한 소리냐”며 “하나도 어려운데 두 개를 다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라고 ‘퓨전’이라는 말 자체를 부정했다. 이런 가벼운 세태에 대한 대책을 묻자 “깨닫는 수밖에 없다. 공부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는 공자님 말씀이 돌아온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우리음악의 특징은 음계, 리듬, 짜임새, 음색, 시김새의 독창성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음계만을 중심으로 해서 연구돼 있는데 이 다섯가지를 하나로 연구, 한민족음악을 정리해 보려합니다. 또 국악실내악단을 하나 만들어 운영하고 싶습니다. 지금 국악이 박물관에 들어갔잖아요. 일반에는 없어졌어요. 조심스럽게 닦아 꺼내보고 싶습니다.”

백 교수는 끝으로 “요즘 너무나 먹고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문제”라며 “먹고 사는 문제를 비판할 수는 없으나 염불보다 잿밥에 맘이 더 가 있는 게 문제”라고 질책했다. 위선적 지식사회에 대한 노 교수의 사자후에 가슴이 시원해지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염불은 이미 안중에 없고 잿밥을 위해 꽉 막힌 도로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백대웅 교수는…

▲1943년 전남 광주 출생 ▲1961년 광주일고 졸업 ▲1966년 서울대 국악과(작곡전공) 졸업 ▲1981년 서울대 국악과 석사 ▲1966~1969년 해병대 군악대장 ▲1971~1983년 KBS PD ▲1984~1987년 전남대 예술대 국악과 조교수 ▲1987~1998년 중앙대 음대 한국음악과 교수, 음대 학장 역임 ▲1998년 이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초대 원장 역임(2001년까지) 및 음악과 교수 ▲2004~2005년 중국 옌볜(延邊)대 예술대, 일본 오키나와(沖繩) 현립예술대에서 연구 ▲문화재위원회 제4분과(무형문화재) 위원 ▲저서:‘전통음악의 보편성과 당위성’(2005년 지식산업사) ‘전통음악의 이면과 공감’(2004년 〃) ‘한국전통음악분석론’(2003년 어울림) ‘전통음악의 랑그와 파롤’(2003년 통나무) ▲수상: 작품 ‘회혼례를 위한 시나위’(1986년 대한민국 작곡상 국악부문), 음악극 ‘영원한 사랑 춘향이’(2004년 대한민국 작곡상 대상)

글 = 문화부장 h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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