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일본의 이중적 역사의식

여름에 한국 관광객들이 대거 몰리는 오사카성 공원은 ‘일본의 센트럴파크’라고 할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오사카성과 숲, 공원이 잘 어우러져있고, 깔끔하면서도 미학적 환경을 고려한 배치로 이름이 나 있다. 지난해 여름에 찾았던 오사카성 공원은 더위를 식혀주는 서늘함마저 느껴졌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이 공원 남쪽의 ‘오사카국제평화박물관’에서 서늘함이 공포로 바뀌었다.

만지면 폭삭 사그러질 듯 낡은 일본군의 총열과 철모, 폭격 흔적이 남아있는 벽돌과 부삽 등은 강제징용을 당해 참혹하게 쓰러져간 한국인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B29폭격기에서 쏟아져 내렸던 실제 폭탄이 콘트리트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형상으로 전시돼 있었다. 제2전시실에서 일제 강점기 3·1 독립운동 사진과 사형당하는 한국 독립운동가 사진과도 마주쳤다. 오사카 공습 때 13세 소녀, 11세 소년이었던 증언자들의 과거 기억을 들추어낸 한 증언록에는 ‘폭격으로 머리 없는 아기를 업고 있는 여성’ ‘B29로 꽉찬 하늘’ 등 당시의 끔찍한 상황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었다. 이같은 피해의 기록뿐만 아니라 1930년대 이후 아시아 지배에 대한 거침없는 야욕을 드러냈던 일본 제국주의 ‘가해의 기억’까지 전시하고 있다는 점이 이 박물관을 돋보이게 한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이 박물관을 찾았을 때 “전시가 형평성 있게 돼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감명받았다”고 했을 정도다. 일본 정부가 아니라 ‘일본의 역사왜곡’을 반대하는 지역 시민들의 힘으로 박물관 건립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같은 전시가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4월 서울을 방문한 일본의 역사왜곡을 반대하는 양심적 인사들을 만났을 때도 큰 감동을 받았다. 일본의 학생들에게 전쟁 찬미 사상 주입을 목표로 한 역사 교과서를 상대로 최근 위헌 소송을 낸 오쿠무라 에쓰오(奧村悅夫)씨는 “일본의 행동에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그의 부인인 오쿠무라 요시미(奧村吉美)씨는 얘기를 나누던 순간 정색하며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일본이 한국을 침략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일본정부와 싸우고 있는 그가 사과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 순간에 필자는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전율을 느꼈다.

이같은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일본 시민들은 역사왜곡의 실체를 잘 모르거나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 툭하면 역사왜곡을 일삼는 아소 다로(麻生太郞)가 차기 총리 순위 1위로 떠오르는 것으로 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지난 2일과 3일 전국 856가구를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앞으로 총리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아소 간사장이 20%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광복절과 건국 60주년을 돌아보면서 의문이 드는 점은 일본이 왜 끊임없이 과거 역사를 비틀고 왜곡하느냐는 점이다. 석학인 이어령 교수는 독도 문제가 터졌을 때 기자들에게 “일본에 과연 지성이 있는가 묻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일본은 출판 대국이다. 지하철에 가면 할머니까지 문고본 책을 읽고 있다. 미나마타 지역에서는 분리 배출 항목이 22가지나 된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독도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있는 것은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인한 피해자 문제조차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진 국민이라고 자부하는 일본 국민들은 서구사회에 짧고 불분명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로 비쳐지지 않도록 각성해야 한다.

[[예진수 / 문화부차장]]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