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조세현의 스타 & 얼굴>영원히 남을 순박한 남자-故 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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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주인공은 모델이다. 많은 사진을 촬영해 왔지만, 한번도 모델이 내 사진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인물사진을 촬영하는 경우 모델이 없는 사진은 하얀색 빈 인화지와 다름이 없다.

이렇게 모델이 중요하기에 모델에 대한 내 기준은 여러 가지다. 진짜 카메라 앞에서만 표정을 만드는 모델이 있는가 하면 무대 위에서 새로운 시즌 의상을 입고 멋진 걸음걸이를 보여주는 패션모델 등 다양한 스타일의 모델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모델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패션모델이다. 아마도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 패션사진만 찍었었고, 패션쇼 현장을 다니면서 모델들과 친해져서 그들의 애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무대 위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그들이야말로 진짜 모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국내 연예인들의 경우, 많은 스타가 모델 출신이기는 하지만 패션쇼보다는 화보 중심의 사진모델을 경험한 정도가 대부분이다. 본격적으로 모델이라고 할 만한 패션모델 수준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런지 ‘진짜 모델’ 출신으로서 변신에 성공한 연예인들은 보면 왠지 모르게 존경심이 들게 되는데, 아마도 그들의 직업에 대한 철저한 자부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항상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그들의 외면과는 달리 아직도 다른 직업들에 비해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찾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땀과 혼이 스며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모델 출신 배우인 변정수나 주지훈, 차승원 같은 스타들에게 유난히 더 애착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들의 뒤를 이을 만한 그런 꿈 많은 청년 중 한 사람인 ‘이언’이 그 꿈을 다 이루지 못하고 멀리 날아가버린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무대 위를 마음껏 활보하던 모델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내 눈을 끌었던, 그리고 많은 기대를 가지게 했던 청년이었기에 더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늘 굳게 다문 입술과 쌍꺼풀 없는 얼굴에서 투박하지만 묘한 개성을 지닌 그는 정말 성실한 사람이었다. 우직한 외모처럼 조용했지만, 선배들이 많은 촬영장에서는 늘 분위기 메이커를 할 정도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격이었고, 그와 작업을 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유쾌해지는 것을 느끼게 하는 신비한 매력을 가진 모델이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 누구보다도 순박한 남자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 만큼 따뜻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연기자로의 변신에 성공하면서 보여주었던 무한한 가능성은 아마도 모델로서 갈고 닦았던 이언만의 ‘순수한 열정’ 때문이 아닌가 싶다.

늘 철학과 꿈을 갖고 있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할 것으로 믿었던 그의 도전과 성공은, 그를 두고두고 많은 후배 모델들에게 상징적인 한 사람으로 남게 할 것이다. 또한 ‘이언’은 일반인들에게는 모델이라는 직업이 존재하는 한 그 꿈을 키워서 보여주었던 참 아름다운 청년으로 우리들 마음 속에, 묵묵한 특유의 표정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오래된 사진첩 속 주인공으로서 말이다.

iconstudio@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