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무디스? 누가 누굴 평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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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08-10-1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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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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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처치 거리 99번지에는 웅장한 11층짜리 석조건물이 하나 있다. 현관문 위쪽에는 황금빛 글씨로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상업금융은 현대의 발명품이다. 이것은 오로지 문명화되고 최고로 잘 통치되고 있는 나라에만 가능하다. 신용이란 마치 현대무역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하기 위한 생명의 흐름과도 같다….” 수백명의 고급 두뇌들이 투자분석과 자문 등의 일을 하고 있는 이곳이 바로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 회사다.

무디스는 영국의 피치 IBCA, 미국의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와 함께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한다. 1900년 존 무디에 의해 설립된 무디스는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무디스 추천 채권만이 이익을 거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무디스의 막강한 권력은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채무 상환능력 등 신용도 점수를 매겨 줄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 일본과 같은 금융경제적 우등생 국가나 독일 등 유럽연합(EU) 안에서도 비교적 통화가 안정된 나라에만 최고 등급인 ‘트리플 에이(Aaa)’를 준다. 아무리 석유가 많이 나는 중동국가라도 이런 점수를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림없는 노릇이다.

무디스가 매기는 이러한 점수는 국가간의 모든 금융거래에 있어 위험부담도를 계산하는 척도가 된다. 따라서 이 회사의 평가결과에 따라 그 평가 대상국가는 수십억 달러의 추가 이자부담을 지게 될 수도 있다. 나라 전체의 자존심이 송두리째 뽑혀나가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무디스측은 한 업체나 국가의 신용등급을 매길 때 그 어떤 권력이나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자랑으로 내세운다. 뇌물을 쓰는 로비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간 활동을 들여다보면 다분히 정치적으로 구린 냄새를 풍기는 걸 그들도 어쩌진 못한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조차 “무디스 사람들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고 표현했을까.

글로벌 금융시장 체제에서 무디스가 한 나라의 권력을 굴복시킬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최근 그 권위에 금이 갈 일이 생겼다. 지난 9월 무디스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먹구름을 몰고온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발표하면서 현 수준인 ‘Aaa’로 유지하기로 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견고한 회복력과 유연한 정책, 높은 수준의 대차대조표 관리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책임자의 궁색한 논리였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직전 AA-로 매우 우량한 편이었던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외환위기가 닥치자마자 이 신용평가사들이 무려 10단계나 끌어내려 B+로 떨어지게 한 사실을. 이러한 ‘무책임하고 안일한 평가’ 때문인지 미국 내부에서조차 신용평가사들을 신뢰하지 않는 시각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S&P사가 한국 정부의 신용등급을 평가하겠다고 나섰다. 무디스가 이미 국내 시중은행의 재무건전성 등급을 ‘C등급 안정적’에서 ‘C등급 부정적’으로 바꾼 지 얼마 안된 상황이다. 조사결과야 일단 나와보면 알겠지만 아무도 그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대해선 지적하지 않는 데도 이미 신뢰를 잃고 있는 그들이 과연 누구에 대해 무엇을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리먼브러더스 등 미국의 투자은행(IB)들이 소위 첨단 금융공학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환헤지용 파생상품 ‘키코(KIKO)’ 때문에 멀쩡했던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이 맥없이 나가자빠지는 판이다. 괜히 그들의 ‘입바른’ 평가 한마디에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금융시장이 애꿎게 또다시 혼란에 빠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양수 / 경제산업부 차장]] ysp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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