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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08년 10월 21일(火)
“독립투사 이봉창 그는 한때 ‘모던보이’였다”
배경식 역사문제硏 연구원, 새책서 주장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1932년 1월8일 일왕 히로히토(裕仁)에게 폭탄을 투척한 이봉창 의사. 그해 10월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된 이 의사는 우리에게 기개높은 열혈 독립운동가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이 의사는 전형적인 독립투사라기보다는 ‘모던 보이’로 식민지근대의 향략문화에 빠지기도 했던 평범한 식민지 청년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출간된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너머북스 펴냄)의 저자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김구를 만나서 자신의 삶을 바꾸기 전까지의 이봉창의 삶은 그 시대 청년들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며 “‘황국신민’이 되고자 했던 이봉창이 어떤 이유로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로 변신했는지 그 내면의 고민을 추적했다”고 밝혔다. 배 연구원의 논지를 따라 이면에 가려졌던 ‘이봉창의 진실’을 알아보자.

◆두 장의 사진 = 태극기를 배경으로 선서문을 목에 걸고 수류탄을 두 손에 든 채 찍은 두 장의 사진이 있다. 한 사진에서 이봉창은 환하게 웃으며 마치 생사를 초월한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이 의사 사진이다. 또 하나의 사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사진. 과연 어떤 사진이 일왕을 폭살할 결심으로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식을 하던 밤에 찍은 것일까.

배 연구원은 “수류탄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찍은 사진은 한인 애국단 선서식 때 찍은 사진도 아니고, 일제시기 발간된 어떤 책자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사진”이라며 “게다가 이 사진은 엄밀히 말하면 사진이 아니라 수류탄을 든 두 손과 배경의 태극기를 그린 합성사진”이라고 밝혔다. 이봉창의 사진이 ‘창안’된 이미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봉창의 삶도 과장되거나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배 연구원의 추정이다.

◆이봉창의 꿈과 좌절 =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는 이봉창의 일본식 이름이다. 그는 생활의 편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일본식 이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한때 자신이 일본으로 데려온 조카딸과의 연락마저 끊을 정도로 진짜 일본인이 되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던 식민지 백성이었다. 이봉창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재산을 잃고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방탕과 사업실패로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였다. 그는 일본의 차별정책에 끊임없이 불만을 가지면서도 식민지 근대의 향락문화를 소비한 ‘모던 보이’였다.

이봉창은 일본인에게 차별받지 않고 조선에서 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무작정 일본으로 갔지만 5년 동안의 노동자 생활을 통해 그것이 헛된 환상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스스로 ‘신일본인’이라 표현할 정도로 진짜 일본인이 되기 위해 성실하게 일하여 일본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했지만 그의 이런 노력은 일본인의 편견과 차별로 인해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운명을 바꾼 만남 =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떳떳한 조선인으로 살기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로 간 이봉창은 백범 김구를 만났다. 이봉창은 백범에게 “제 나이 서른하나입니다. 앞으로 31년을 더 산다 한들 과거 반생 동안 방랑생활에서 맛본 것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육체적 쾌락은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맛보며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로 왔습니다”라고 말한다.

김구의 지시로 일왕 폭살을 위해 일본인으로 위장생활하는 이봉창을 향해 임시정부 간부들은 ‘왜영감’이라고 놀려댈 정도였다. 때문에 이봉창은 상하이의 독립운동가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그들을 존경하지도 않았다.

◆마지막 20일의 기록 = 이봉창이 중국을 출발, 일본에 도착한 1931년 12월19일부터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1932년 1월8일까지의 행적을 ‘신문조서’ ‘상신서’ 등 각종 재판자료를 비교, 분석해 재구성했다. 도쿄(東京)에 머무른 동안 이봉창이 보냈던 일상의 흔적은, 작전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였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상상과는 전혀 다르다. 최소한의 거사를 위한 준비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술 마시고, 카페 가고, 영화 보고, 마작 하고, 음악 듣고, 그리고 유곽(창녀촌) 드나드는데 보냈다. 일왕을 폭살할 결심으로 가장 긴장된 나날을 보냈을 20일 동안 이 같은 행적이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이봉창이 최후의 순간을 향락문화로 소비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모던 보이’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배 연구원은 “독립운동의 ‘영웅’과 식민지적 근대를 상징하는 인간형인 ‘모던 보이’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이미지 같지만 이봉창의 삶은 그 두 가지가 한 인간을 통해 복합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며 “영웅과 지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독립운동사이고 인간의 역사”라고 밝혔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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