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신년특집-2009 세계전망과 한국의 나아갈 길> “지금은 ‘지식기반시대’… 20년 앞 내다보는 정책 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공일(왼쪽)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과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지난해 12월23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2009년 새해 전망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임정현기자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충격 속에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전세계적 위기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선 어떤 비전과 전략이 필요하고 이명박 정부의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국가경쟁력 전도사’로 불리는 사공일 대통령자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과 ‘혁신의 리더’로 꼽히는 서남표 카이스트(KAIST) 총장이 신년대담을 나눴다.


1.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전세계가 어수선한 가운데 2009년 새해를 맞게 됐습니다. 2008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고, 2009년은 어떻게 다가올 것으로 보십니까?

◆ 사공일 위원장 = “2008년 초까지만 해도 대다수 경제학자들과 사계전문가들도 세계경제가 이렇게 어려워지리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2009년에 세계경제는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동시에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세계경제는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작년 4분기(10~12월)부터 경기하강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낙관적인 측면이 있다면 작년 11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이 경기회복을 위한 국제공조의 필요성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제2차 G20 정상회의는 오는 4월2일 런던에서 개최되는데 다시 한 번 세계경제 침체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고 단기화하자는 데에 뜻을 모을 것으로 봅니다. 우리 정부도 작년부터 적극적인 경기대응 노력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 재정지출 정책을 더욱 적극적 펼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2009년 하반기부터는 세계경기가 완만하게나마 회복할 것으로 보입니다.”

◆ 서남표 총장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를 새롭게 혁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처음부터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었습니다. 중간에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서 개편하지 못해 위기가 커진 것입니다. 사회의 모든 조직이나 정책은 늘 새롭게 혁신을 해야 합니다. 위기대응을 위해선 이니셜 컨디션, 즉 초기조건이 중요합니다.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보면 각 나라들이 조기 협력하면 위기 극복이 쉽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어렵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국민들의 삶이 점점 어려워지고, 직장을 못 구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좋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될 때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속에서 일어섰고 경제를 일궈냈습니다. 그러니 정부가 국민들에게 그런 희망을 주는 쪽으로 생각하고 정책을 펴야 합니다. 국가소득이 높다고 해서 국민들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때 비로소 국민들은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 사공일 =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늘 경기상승과 하강국면을 맞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하강하고 있는 경기는 조만간 회복될 것입니다. 게다가 세계 주요 국가들이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공조하고 있으니 경기회복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런 위기를 기회로 생각해 준비를 잘하면 경기가 좋아질 때 남의 선두에 나설 수 있습니다. 경기침체 이전에 하위 75%에 속하던 기업들의 15%가 경기 상승기에 상위그룹으로 부상했다는 매킨지 보고도 있습니다.”

◆ 서남표 = “정부가 최근 4대강 정비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는데 위기 극복을 위해선 과학기술분야에 과감히 투자해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한국은 이노베이션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하는데 중간중간에 갭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에겐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것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많이 내 이것을 테크놀로지로 발전시키고 그 과정에 지속적으로 이노베이션해 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따라서 요즘과 같은 위기시대에 우리에게는 과감하게 과학기술에 투자해 아이디어부터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사공일 = “정부가 4대강 유역을 정비하려는 것은 좀 더 긴 안목에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단기적으로 서민과 실업자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소비 진작 차원에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학기술인재를 키우고 기술 발전을 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장기간에 걸쳐 가시화될 것일 뿐 아니라 단기간의 고용효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2.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치중할 것이냐, 과학기술 투자를 우선할 것이냐에 대해 견해가 엇갈리는데.

◆ 서남표 = “지식경제부에서 주관한 차세대 신성장동력기획단장으로 일하면서 22개 영역을 발굴했는데 이 가운데 10개 등을 선정해서 과감하게 투자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발굴한 22개 성장동력 가운데 우리나라가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하는데 이럴 때 과감하게 몇분야를 택해 연구하고 개발하도록 해야 합니다. 과감하게 10개 분야를 택해 1000억원씩 투자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만들면 어떨까요? 10개중 1개만 성공해도 결과는 괜찮을 것입니다. 4대강 유역을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에 투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사공일 = “‘미국의 실리콘 밸리는 워싱턴에서 멀어서 성공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시장기능을 간섭하기 시작하면 시장의 활력이 떨어집니다. 정부가 나서서 산업이나 기업의 승자와 패자를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설사 그럴 능력이 있더라도 현재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과학기술개발을 위한 인프라스트럭처를 만들어주거나 기업의 연구·개발(R&D)활동을 세제상 지원해 주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기업을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스럽습니다.”

◆ 서남표 =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4대강 프로젝트를 꺼낸 것은 그것이 무엇보다도 경제 위기극복을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위기시대에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한 경기 진작을 시도하는 것과 환경친화형 그린 카 등을 개발 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가 경제위기극복차원에서 4대강 정비사업을 하려면 과학기술 투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사공일 = “과학기술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교육 잘 받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젊은 서민층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으로써의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투자는 과학기술 분야 투자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 서남표 = “한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예산을 보면 대학에 들어가는 비용이 3조5000억원 가량인데 그것은 교육과학기술부 예산의 10분의 1에 해당됩니다. 학생수와 교사수를 놓고 볼 때 우리나라 대학 수준은 초·중·고교에 비해 열악합니다. 1대 40정도 됩니다. 미국 하버드대는 연간 3조5000억원을 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만큼 돈을 써야 대학의 경쟁력이 커지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 사공일 = “정부의 교육예산에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습니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식 교육에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원비 등등으로 지출되고 있는 사교육비 지출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찾으면 우리나라 교육재정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정부의 교육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5%도 채 안되는데 이것은 주로 초중등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쓰도록 하고 현재 사교육비 지출을 제도화하여 대학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쓰자는 것입니다. 민자의 제도화는 예컨대 기여금 입학 등 적절한 방안을 통해 가능할 것입니다.”


3. ‘서남표식 카이스트 개혁’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사공일 = “무엇보다 교육개혁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식기반경제시대에 교육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합니다. 지식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측면도 있지만 교육을 통해 함양되고 축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식기반경제 시대의 여건에 맞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한마디로 이러한 교육제도의 기본은 경쟁과 자율에 있다고 봅니다. 경쟁과 자율이 보장되어야만 새정부가 지향하는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 양성이 가능할 것이고 우리나라를 넘어 글로벌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는 리더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서 총장이 주도하는 카이스트 개혁은 대학 교육에 관한 자율과 경쟁의 중요성을 정책당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 서남표 = “제가 카이스트 개혁을 추진하면서 그저 주먹구구로 한 게 아닙니다. 개혁의 구체적 목적이 무엇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디자인을 해서 전략적으로 한 것입니다. 카이스트는 세계 10대 과학기술 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목적을 설정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에 대해선 EEWS를 제시했습니다.

즉 에너지와 환경, 물, 지속가능성(Energy, Environment, Water, Sustainability)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붙여서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론을 펴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연구는 하지 말고 핵심적인 것에 투입해 많은 성과를 내자는 것입니다.”


4.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 사공일 = “새정부의 교육시책은 한마디로 자율과 경쟁에 바탕을 두는 것입니다. 서 총장이 이끄는 카이스트는 자율과 경쟁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좋은 사례라고 봅니다. 정부가 우리 대학들이 자율과 경쟁 기반 위에서 경쟁력 강화에 집중한다면 우리 대학의 상당수가 머지않은 장래에 세계 20~30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세계적 교육허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국회에 국가경쟁력위원회 활동과 관련된 법률만 해도 무려 515개가 제출되어 있으며 122개 법률은 부처 입안 또는 행정절차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모든 법들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그 효력이 나타날 내년부터는 국가경쟁력 향상의 가시적 효과가 서서히 나타날 것입니다.”

◆ 서남표 = “지금 한국교육은 목적이 없는 상태입니다. 저는 가끔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 교육의 목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은 왜 대학에 가고, 무엇을 공부할 것이냐에 대해, 대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무엇을 지향할 것이냐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를 해야 합니다. 한국의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실현방안을 세울 것인가를 세워야 합니다.”

◆ 사공일 = “교육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선 학교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없애야 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의 학생과 교수진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게다가 우리 국인들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입니다. 그런데 왜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이 많지 않느냐? 그 이유는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 시스템에 자율과 경쟁이 없기 때문입니다.”


5. 이 대통령이 2009년에 특히 집중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서남표 = “이 대통령이 아주 간결하고 분명하게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의 목표를 국민들에게 알려줬으면 합니다. 그러면 세부적인 방안에 대해선 다른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과거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미국정부는 산업정책을 채택하지 않겠다, 산업에 있어 승자와 패자를 택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레이건정부 때 미국의 관료나 과학자들은 모두 이같은 지침에 따라 정책을 세우고 구체적 실천방안을 만들었습니다. 이 대통령도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이런 것이고, 우리의 목적은 이것이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이 밑에서부터 온국민의 성원을 바탕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불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않고 반드시 필요한 곳에 집중함으로써 우리의 교육 및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 사공일 = “현재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이렇게 좋은 여건에서 국제경쟁에 임해본 적이 없습니다. 농경시대, 산업시대를 거쳐 현재는 지식기반 시대입니다. 지식기반 사회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원입니다. 그리고 이 지식은 교육에 의해 함양되고 축적됩니다.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이 지식기반 경제시대에 남보다 월등히 잘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적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단기적인 것이기 때문에 길게 10년, 20년을 내다보면서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시책들을 꾸준히 펼쳐나가야 합니다. 교육개혁은 그러한 시책의 핵심입니다. 우리에게 처음 주어진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 서남표 총장 약력 ▲1936년생▲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학사, 석사▲카네기멜론대 박사▲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 MIT 기계공학과 교수, 제조생산연구소장▲미국국립과학재단 공학담당 부소장▲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학부 기계공학과 석좌교수▲지식경제부 산하 신성장동력기획단장

◆ 사공일 위원장 약력 ▲1940년생▲서울대 상대 졸업▲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경제학 석사, 박사▲뉴욕대 교수▲산업연구원장▲청와대경제수석▲재무부장관▲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비전그룹(AEVG) 의장▲대외경제통상대사▲고려대 석좌교수▲대통령직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