苦戰 모르는 古典

1998년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1권으로 시작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19일 200권을 돌파함으로써 우리 읽기 시장에서 고전문학전집이 일정한 자리를 잡게 됐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지는 우리 출판의 세계문학전집 공백기를 마무리하고 나온 첫 현대적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이 전집이 10년만에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것. 문학전집 시장을 선점한 민음사에 이어 올해 출간 10년을 맞은 대산세계문학총서(문학과지성)와 지난해 첫선을 보인 펭귄 클래식(뿔), 을유세계문학전집(을유문화사)도 올해 판매와 관계없이 꾸준히 종수를 늘려갈 예정이다. 한편 오랫동안 문학전집을 준비 중인 문학동네도 이르면 올 하반기에 문학전집 첫 권을 내놓을 계획이다.

19일 ‘홍길동전’을 출간함으로써 200권을 돌파하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지난해 가을부터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판매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2004년 100권을 출간한 시점을 즈음해 탄력을 받기 시작, 지금까지 600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 이중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괴테의 ‘파우스트’ 등이 인기가 높은 책들로 한 달에 3000~4000부씩 팔려 나가고 있다.

매년 1만부 이상 판매되는 셈인데, 베스트셀러에 비하면 소박한 수치지만 유명 작가의 신작도 5000부 이상 팔리기 어려운 현실을 생각하면 의미있는 수치이다. 세계문학전집의 확대는 우리 사회에서 고전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끊임없이 재생산, 유입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고전전집은 경기 불황 등 외부적 요인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가 줄어도 5%, 늘어도 5% 정도에 불과한데, 지난해 가을부터는 오히려 판매가 늘었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편집인은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독자들이 투자한 만큼 확실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책, 비슷비슷한 책이 아니라 그 책만의 가치를 가지는 책을 선택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 출판평론가는 “고전의 인기는 지난해 몇 년간 출판계를 좌우했던 자기계발서 판매가 떨어지고 문학이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면서 “가벼운 자기계발서를 여러 권 봤지만 도움을 받지 못한 이들이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풀 수 있는 책을 선택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한편 문학전집 후발주자들은 민음 전집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집의 경우 100권 정도 종수가 쌓여야 그때부터 판매에 탄력이 붙는다는 판단 아래 일단 종수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펭귄이라는 세계적인 지명도를 지닌 펭귄 클래식은 지금까지 총 28종을 내놨는데, 올해 50종을 더 선보일 계획이다. 16권을 내놓은 을유측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한 달에 한 권 정도 내놓겠다고 밝혔다.

대산재단의 출판, 번역 지원을 받고 있는 대산세계문학총서는 이제까지 총 80권이 출간됐는데, 대부분이 국내 초역인 작품들로 그만큼 대중적 지명도는 낮지만 의미있는 마니아층을 형성해가면서 100권을 향해 가고 있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