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선생 구도의 길, 예수·붓다와 닮은꼴”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2008 세계철학대회’에서 한국철학계가 중점을 두어 소개하고 대회에 참가한 전세계 철학자들이 주목한 우리 사상가는 다석 류영모(1890~1981)와 함석헌(1901~1989)이었다. 함석헌은 다석의 오산학교 제자이자 사상적 제자이다.

1959년부터 줄곧 다석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이후에는 스승의 사상을 알리는 데 매진해온 박영호(75·성천문화재단 연구위원)씨가 지난주 다석의 전기이자 평전인 ‘다석 류영모’(두레)를 펴냈다. 박씨는 1994년부터 2년여간 문화일보에 다석사상에 관한 글을 325회에 걸쳐 연재한 뒤 총 6권의 ‘다석사상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연로했음에도 요즘도 매주 화요일 성천문화재단에서 다석강의를 하는 박씨는 16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나온 책은 다석사상을 처음 접하는 청소년도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이자 깊게 접근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결정판”이라고 스스로 쏟은 열정을 평가했다.

지난 세계철학대회에선 서구신학이 근래에야 본격적으로 논의의 물꼬를 트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적 사상을 70년이나 앞서 터득하고 설파한 다석을 주목했다. 하지만 박씨는 다석을 단순히 ‘종교다원주의’로 말하는 데 대해 회의적이다.

“진리는 여러 개라는 ‘다원주의’와는 달리 다석은 ‘가르침은 여럿이지만 진리는 하나’라는 ‘일원다교(一元多敎)’라 할 수 있습니다. 서구의 다원주의보다 독창적입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다석의 육체적 생애를, 2부는 정신적 사상을 다룬다. 박씨는 2부에 대해 “다석의 구도-득도-득도 이후의 변화를 세밀하게 정리하려 했다”고 말했다. 다석은 일생에서 크게 두 단계의 전환점을 겪는다.

그 하나는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21세때 정통 기독신앙에서 비정통 기독신앙으로 종교관을 바꾼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타율적인 교리신앙에서 자율적인 자각신앙으로, 제사의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의 종교를 갖게 된 것이다.

“오산학교에 교회신앙을 퍼뜨린 다석이지만 학교를 떠날 때는 이미 이슬람의 코란까지 읽을 정도로 여러 종교와 사상을 섭렵하며 달라져 있었습니다. 예수를 배워야지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거지요. 다석의 변화는 첫째 톨스토이의 사상, 둘째 불경과 노자, 셋째로는 두살 아래 아우 영묵의 죽음에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50세를 전후해 맞는 두번째 전환은 “남의 소리가 아니라 제 소리를 내게 된 것”이었다고 박씨는 표현했다. 다석은 스스로 그 시기를 52세 때인 1942년 1월4일이라고 말했는데, “자기 마음속에 있는 ‘제나(자아·에고)’가 죽고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은 것”이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구경각(究竟覺)’을 이룬 것.

“다석이 구경각을 이룬 것은 하루 한끼 식사만 하고 가족에게 ‘해혼(解婚·가족은 유지하되 성생활은 하지 않는 것)’을 선언한 지 1년 만입니다. ‘제나’를 구성하는 탐·진·치 삼독(三毒)을 접고 ‘얼나’가 솟아나는 경험을 한 것이지요.”

박씨는 다석의 구도과정에 대해 “기도와 찬송이 아닌 명상이었으며 예수와 붓다도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똑같은 방식으로 깨닫고 설파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석은 또한 우리말과 우리글로 철학한 사상가로 유명하다. 그가 남긴 1700수의 시조에는 그가 만든 우리말이 수두룩하지만 요즘 학자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박씨는 “‘다석낱말사전’작업이 현재 3분의 1 정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정양모(다석학회 회장) 신부는 책의 추천사에서 “다석이야말로 이 나라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차원 높은 독창적인 사상가라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며 “다석이 세계적인 스승의 자리에 우뚝 설 날이 머지 않으리라 확신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