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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09년 03월 25일(水)
400살 ‘시조木’ 두 그루 여전히 성성, 경북 봉화 띠띠미 마을
경북 봉화 띠띠미 마을 페이스북트위터구글
▲  태백산맥에서 소백산맥으로 갈라지는 기점을 이루는 각화산 허리춤에 자리잡고 있는 고즈넉한 절 각화사. 금강송을 둘러치고 있는 깊은 산중에 들어선 호젓한 절집에 들면 경쾌한 산새소리가 가득하다. 이곳에서 2㎞쯤 떨어진 곳에 300여년동안 조선후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태백산사고 터가 있다.
▲  봉화 닭실마을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청암정. 기묘사화와 을사사화에 휘말렸던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재 권벌이 은거하던 정자다. 암반 위에다 정자를 앉히고 주위에 연못을 둘러파고 물길을 끌어들였다.
# 노란 소쿠리에 담긴 꽃무더기…‘띠띠미 마을’

이즈음 띠띠미 마을은 꼭 산수유에 포위된 형국이다. 백년 고택의 먹빛 기와지붕 위로, 돌담 위로 산수유 꽃들이 만발했다. 마을이 끼고 있는 문수산 자락도 온통 노란색 꽃 천지다. 강렬한 노란색 색감에 아찔아찔 멀미마저 느껴질 정도다. 띠띠미 마을의 정식 명칭은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두동마을. 주민이래야 고작 20여가구 남짓. 남양 홍씨 집성촌으로 지금도 마을주민의 절반이 홍씨 성을 갖고 있다.

마을에 지천인 산수유 나무는 병자호란 때 입향조인 홍우정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 깊은 산중마을로 피란 오면서 경기 이천에서 산수유 나무를 가져다 심은 것이 시초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내성천변에는 당시 처음 심어졌다는 이른바 ‘시조목’ 두 그루가 400년의 세월을 넘어 성성하게 꽃을 피웠다.

논 한 뼘, 밭 한 뙈기 변변히 없는 첩첩산중의 산골마을인 띠띠미 마을에서 산수유 열매는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너른 들이나 갈아부칠 만한 밭이라도 있었다면 굳이 오랜 시간에다 고된 노동까지 필요한 산수유 농사는 짓지 않았을 터. 산수유 마을들이 대개 깊고 깊은 산골마을에서 자리잡은 것도 이런 이유겠다. 그러고 보면 산수유는 나풀나풀 꽃잎들을 보기 위해 심어지는 다른 봄꽃들과 달리 오랜 세월을 생활과 노동으로 길러진 꽃인 셈이다.

젊은이들이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마을에서 주민들은 아직 산수유 농사를 짓고는 있지만, 가을이면 제 집앞의 나무에 빨갛게 달리는 열매들도 다 거둬들이지 못하고 있다. 고단한 노동에다가 품값도 안 나오는 가격 탓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산수유 나무를 심고 정성으로 돌보고 있다. 그래서 띠띠미 마을은 해마다 노란색의 꽃이 더욱 짙어져 가고 있다.

마침 띠띠미 마을을 찾아간 날, 봄볕이 따사로운 양지쪽 언덕에 홍성원(73)씨 내외가 산수유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렇찮아도 지천에 산수유 나무인 데다 가을이면 수확도 다 못할 텐데 왜 나무를 보태 심을까 싶었지만, 홍씨는 “평생을 해온 일이라 봄이면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굳이 꽃을 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열매를 거두겠다는 뜻도 아니지만, 평생 산수유를 심고 길러온 이들에겐 나무를 심는 일은 평생을 지켜온 오랜 노동이었다. 농사꾼이 이문이 남지 않는다고 해서 어디 농사를 쉴 수 있을까.

# 사화와 당쟁, 유배와 절개…세월이 녹아있는 고택에 들다

봉화를 찾아간 길에서 산수유 꽃만 보고 돌아올 수는 없는 일. 봉화에는 유독 고택들이 많다. 전라도의 고택들이 일찌감치 벼슬을 등지고 은거하며 산수를 벗 삼았던 선비들의 것이라면, 안동으로 대표되는 경상도의 고택들은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세도가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봉화는 좀 다르다. 사화와 당쟁을 피해 벼슬을 버리고 물러난 이들이 심심산골인 봉화로 모여들었다.

봉화의 고택마을이라면 봉화읍 유곡리의 닭실마을이 가장 알려져 있다. 안동 권씨의 오래된 반가의 집성촌인 닭실마을은 충재 권벌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권벌은 조선 연산군때 벼슬길에 나섰다가 기묘사화로 물러나 낙향해 이곳에 터를 잡았다. 이후 다시 벼슬자리로 돌아가 우찬성자리에 올랐지만, 다시 을사사화로 파직당하고 벽서사건에 연루돼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다. 닭실마을에서 백미는 바로 거북모양의 바위 주위로 연못을 파고 정자를 앉힌 청암정. 너른 들에 세웠지만 청암정에 들면 자연에 푹 파묻힌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봉화읍 도촌리의 공북헌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집은 중종때 벼슬을 지내던 도촌 이수형이 단종의 영월유배로 벼슬을 버리고 정착한 곳이다. 툇마루를 벽으로 길게 막아 문을 열면 오직 북쪽만을 내다볼 수 있도록 지어졌다. 이수형은 평생 이 집에 머물며 단종이 머물고 있던 영월쪽을 바라보았다고 전해진다.

이밖에도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봉화읍 해저리에도 개암종책과 만회고택 등이 늘어선 고택마을이 있고, 거촌리에도 수온당이며 쌍벽당 등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고택들이 남아있다. 석평리에도 송석헌과 선암재, 동암서당 등의 고색창연한 마을이, 문단리 쪽에도 동호당과 재사 등이 즐비하다. 어디 이뿐일까. 춘양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만산고택이 있는 고가촌이 있고, 소천면 어지리 쪽에도 재각과 정자들이 늘어서 있다. 외지인들의 발길이 드문 탓인지 고택을 지키고 있는 집주인들도 기꺼이 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준다.

# 정자 위에 올라서 역사를 딛고 봄을 바라보다

봉화 땅에는 강학을 하거나 풍류를 즐기던 정자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정자에는 크고 작은 역사의 이야기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다. 수많은 정자를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역사의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재미가 각별하다.

봉화의 정자 중에서 가장 운치가 있기로는 낙동강의 지류를 끼고 있는 사미정이 꼽힌다. 사미정은 조선 후기 소론의 중심인물이었던 조덕린이 노론의 득세를 비난했다가 함경북도로 유배돼 있는 동안 후손들에게 정미년(1727년), 정미월(6월), 정미일(22일), 정미시(오후 2시)에 맞춰 정자를 지어 이에 들라고 해서 지어진 것. 정미(丁未)가 4개 겹쳤다 해서 사미정(四未亭)이라 이름했다고 전해진다. 정자가 지어진 해에 소론이 집권하면서 조덕린은 풀려나왔으나 결국 노론의 탄핵으로 제주로 귀양을 가다 강진에서 숨을 거뒀다. 사미정이란 현판의 글씨는 번암 채제공이 78세에 쓴 친필이다.

울진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선 연주정은 삼국시대 당나라 학자로 귀화한 남양홍씨 중랑장파의 홍여방이 서울의 청계천변에 있던 정자를 숙종때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전한다. 홍여방의 부친인 홍길민은 조선 건국에 반대해 당시 개풍의 두문동에 은거하던 72명의 충신들과 함께 절의를 지켰으나, 거듭된 이성계의 설득에 사신으로 중국에 건너가 조선건국을 추인받아 개국공신이 됐다.

이밖에도 봉화에는 정자들이 즐비하다. 퇴계 이황이 손수 이름을 짓고 편액은 건 상운면 구천리의 야옹정과 문촌리의 종선정 등을 비롯해 후손들에게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라’는 뜻으로 지은 춘양면 선양리의 한수정 등은 그윽한 정취가 풍기는 곳이다.

# 봉화까지 갔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봉화에는 하나의 주제로 여행의 목적을 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인근에 명소들이 많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봉화읍내에서 인근 영주 부석사까지는 차로 30분이면 가닿는다. 해질 무렵 안양루에서 내다보는 풍광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봉화의 청량산도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춘양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청량산을 찾아가는 길. 이 길에서는 청량산의 벼랑을 낙동강이 굽이치는 풍광과 산골 오지마을의 정겨운 풍경에 취하게 된다. 청량산을 딛고 오르면 웅장한 암봉아래 앉아있는 응진전의 모습이며, 어풍대에서 내려다보는 절집 청량사의 절경도 빼어나다. 봇짐을 메고 청량산을 오르내리며 학문을 닦았다는 퇴계나 굴을 파고 글씨를 공부했다는 신라 명필 김생의 자취도 더듬고, 명문장가 최치원과 고려조 최고의 시인 백운 이규보가 머물렀다는 전설도 짚어볼 수 있다.

각화산(1176m)과 왕두산(1144.3m) 능선 아래 자리잡은 각화사는 고즈넉한 맛이 그만인 절집이다. 부석사가 해질 무렵의 풍광이 압권이라면, 각화사는 이른 아침에 찾는 것이 제격이다. 절집 주위를 둘러싼 붉은 금강송에 구름이 척하고 걸리고, 뒷산에서 딱따구리가 나무 둥치를 쪼아대는 소리가 따르르르 이어진다. 여기다 절집 마당에서 산아래 풍광을 내려다보던 스님이 싸리비로 마당을 쓰는 소리까지 더해지면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기는 느낌이다.

봉화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e-mail 박경일 기자 / 문화부 / 부장 박경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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