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전망대>美외교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이란 대선 결과를 둘러싼 테헤란의 대규모 시위사태는 미국 외교정책의 오랜 쟁점을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확산론 같은 ‘이상주의’는 이라크전 실패 때문에 역사적 퇴물이 된 듯 싶더니 이란의 반정부 시위로 또다시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 에릭 켄터 하원 원내총무, 신보수주의자의 대표주자 로버트 캐건 등은 미국이 이란의 반정부 시위대들을 더욱 직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이런 주장이 오히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유리하게 만들 뿐이라고 반박한다. 이란 대통령이 시위대의 배후에 미국의 음모가 있다는 증거로 주장하면 미국에도 이란의 민주주의 세력에도 불리한다는 지적이다. 진보주의 싱크탱크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의 이런 주장이 미국 외교를 탈선시켰다고 주장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민주당 진영이 이란 시위사태에 신중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미국 외교정책사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현실주의 대 이상주의였다. 현실주의가 프랭클린 루스벨트·해리 트루먼·드와이트 아이젠하워·리처드 닉슨·제럴드 포드·조지 H 부시 대통령의 원칙이었다면 이상주의는 우드로 윌슨·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지미 카터·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이상주의적 경향이 짙었다. 이상주의대 현실주의는 반드시 정당간의 차이라기보다는 대통령과 주요 참모들의 원칙 차이였다. 미국 외교안보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외교협회(CFR) 리처드 하스 회장의 새 책 ‘필수적 전쟁, 선택적 전쟁(war of necessity, war of choice)’은 이같은 쟁점의 역사적 실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하스 회장은 두 차례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국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 최고위급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수행했던 첫번째 이라크전은 정말 필요했고 잘 실행됐던 전쟁이었던 반면 아들 부시 대통령이 시작했던 두번째 이라크 전쟁은 꼭 필요하지도 않았고 실행도 잘못된 전쟁으로 규정했다. 하스 박사는 두 전쟁을 통해 미국외교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비교했다. 미국 외교는 전통적으로 ‘국가들간의 관계, 국가들의 외부행동에 영향을 미치려는’ 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너무 야심적이고 매우 어려운 이상주의 정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즉 미국 외교의 목표를 국가들의 내부조건, 국가들의 특성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으로 잡고 ‘민주주의 확산’, ‘독재체제의 붕괴’처럼 ‘외국정부의 정권교체(레짐체인지)’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상주의적 외교정책은 ‘성숙한 민주사회야말로 보다 평화로운 국제시민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었지만 이라크전에서 보듯이 엄청난 인명희생과 전비를 감당하고도 현실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웠다.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 역시 현실주의라고 하스 박사는 분석한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등 극단적 테러리즘 세력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군을 증파하면서도 이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식의 언급은 일절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북한과의 대화노력에도 적극적이었던 이유도 현실주의적 외교정책 때문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인권문제로 김정일 정권을 ‘모독’하지도 않고 ‘정권교체’는 입도 벙끗하지 않았는데 북한은 협상을 거부함으로써 미국의 현실주의 외교정책은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최형두 / 워싱턴 특파원]] choih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