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盧 조문 태풍’사그라졌지만 ‘이념갈등 장마’해소 과제로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큰 충격에 빠졌던 한국 사회가 당초 우려보다는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은 가운데 비교적 차분한 ‘서거 한 달’을 맞고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정치와 사회 분야에서 이념 갈등이 극심해진 점은 향후 해결 과제로 남았다는 지적이 높다.

검찰 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의 자살은 사회 전반에 엄청난 충격파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한국 사회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단순한 추모열기를 넘어 ‘노 전 대통령은 자살한 게 아니라 무리한 검찰 수사로 인해 타살된 것’이라는 반감이 확산됐다. 고인의 영결식 때 반정부 구호가 난무하고 극도의 분열상이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의 충격과 혼란은 일각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도심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나 소요사태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경찰 추산 2만2000명, 주최측 추산 15만명이 모인 6·10 집회 역시 지난해에 비하면 4분의 1 규모에 머물렀다.

지난 13일 ‘화물연대·쌍용차 투쟁승리 결의대회’에 이어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경찰폭력 규탄 촛불문화제’ 참여인원도 1600명선에 그쳤다. 추모정국 기간 동안 일부 시위대에서 ‘독재 타도’ ‘정권 퇴진’ 등의 구호가 나오기도 했으나 크게 힘을 얻지는 못했다.

이처럼 차분해진 분위기에 대해 박효종 바른사회시민회의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들 전체가 슬픔을 충분히 애도하고 지금은 공동체의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크다고 본다”며 “국민들의 순수한 애도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 있지만 이는 국민들에게 큰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택수(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감정적으로 전 국민을 휩쓸었던 애도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고인에 대한 예의를 넘는 ‘정권 퇴진’과 같은 과격한 구호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확하게 정권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 포인트가 없기 때문에 정권 퇴진이나 사과에 대한 근거가 부족해 거리에서 더 이상 투쟁할 동력이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광장 정국은 사라졌지만 이념으로 쪼개져 대립하는 현 상황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내영(정치외교학) 고려대 교수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해졌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를 통해 한국사회가 이념적으로 갈등이 촉발되고 강화된 상황”이라며 “정치 사회적으로 분열, 대립하고 있는 현 상황은 오히려 고 노 전 대통령의 유지에도 상반되는 것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한상진(사회학) 서울대 교수는 “현재의 상황은 소통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라며 “정권이 국민들이 주는 메시지를 귀담아 듣고 소통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박세영·강버들기자 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