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의 文化데이트>“낡은 건 박물관 보내라?…그곳은‘미래 DNA’寶庫”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종규(70)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이 최근 ‘한국박물관협회 30년’을 펴냈다. 한국박물관 100주년의 하이라이트인 후반부 30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김 명예회장은 별명이 많다. 문화계 궂은 일에 기꺼이 나서 돕기를 즐겨해 ‘문화계의 대부(代父)’라고도 하며 출판, 학술, 문화제, 공연 등 문화계 일에 관계하지 않는 일이 거의 없어 ‘문화계의 마당발’로도 불린다. ‘한국박물관협회 30년’은 그의 부지런함과 꼼꼼함을 그대로 빼닮아 ‘한국박물관 박물지(博物誌)’라 하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25일 김 명예회장을 만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박물관이 갖는 의미와 역할에 대해 들었다.

한국박물관협회는 1976년 서울 중랑구 상봉동 한독의약박물관에서 32개 회원관으로 시작했다. 2006년이 30년인데 3년이나 뒤에 책이 나온 것이 우선 궁금했다.

김 명예회장은 “처음으로 만드는 사료로 정확성을 기해야 했다”며 “394개 회원 박물관의 자료를 고치고 또 고쳐 정확한 역사를 기록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아직 살아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10년사, 20년사가 있었으면 좀 쉬워 30년 기념해를 넘기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것도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으로 정확성을 기해야 했기 때문에 생존해 계신 분들에게 일일이 자문을 얻고, 증언을 들어 꼼꼼히 만드느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또 394개 회원관 모두 자존심을 걸고 역사적 가치를 정확히 하기 위해 고치고 또 고치는 바람에 조금씩 늦어졌습니다. 빨리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 굳이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담아내는’ 박물관협회 대표다운 넉넉한 답이다. 박물관협회 30년사의 의의를 묻자 김 명예회장은 “성년이 된 박물관협회의 과정을 정리, 한 단계 더 발전한 미래비전의 토대가 확보됐다”고 요약했다.

“사실 (박물관협회) 30년을 돌이켜 보면 처음 출발할 때 32개 관으로 국립은 1개밖에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30년 동안에 무려 394개로 늘어났고, 지금은 600개 관이 넘어갔습니다. 이 시기 경제, 사회 등 우리나라 모든 상황이 그러했지만 특히 감동스럽습니다.”

김 명예회장은 협회 30년사의 최대 사건으로 2004년 서울에서 아시아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열린 세계박물관대회를 꼽았다.

“당시 세계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 회장 김병모 한양대 교수, 이건무 국립박물관장(현 문화재청장)과 제가 공동위원장이 돼 치렀습니다. 세계의 ICOM 관계 인사 1200여명과 내국인 800여명이 참가했는데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성대한 환영파티를 열어줬고, 클로징(폐회)은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맡아주는 등 형식과 내용 면에서 한국 박물관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성대한 ‘문화올림픽’이었습니다.”

김 명예회장은 “88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했듯이 이 대회 이후 한국 박물관에 세계의 오리지널 작품 전시가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당시만 해도 세계적 진품은 일본에까지밖에 안왔어요. 한국에 오는 것은 오리지널 1, 2개에 레플리카(replica·복제품)만 잔뜩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후 달라졌습니다. 지금 국립박물관에서 하는 이집트전만 보더라도 100% 오리지널이에요. 이게 경제력만 갖고는 안되는 일입니다. 문화력을 인정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김 명예회장은 한국박물관사 30년의 또 하나의 성과로 ‘한국 박물관의 글로벌 시대 개막’을 꼽았다.

“그동안 박물관 하면 우리 것만 보존하는 곳으로 인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당장 국립박물관에서 하는 전시만 보세요. 이집트전과 차마고도전입니다. 이집트 전은 조금 전에 말한 대로 100% 이집트에서 들어온 오리지널이고요, 차마고도전은 사립박물관인 티베트박물관, 화정박물관, 실크로드박물관 등에서 전시물을 협조했습니다. 동서문화가 함께 전시돼 있는 겁니다.”

문화의 축적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문화를 축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미래의 문화를 꽃피울 씨앗을 키워낸다.

김 명예회장은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 “박물관은 문화의 DNA(유전자)를 갖고 있는 ‘살아있는 학교’로 한 국가 문화 발전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스트럭처”라고 강조했다.

“우리의 것은 물론 책이나 여행, 영화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세계의 문화를 지금 우리 주변에서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세계화된 박물관에서 세계의 명품, 진품들을 보며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확인하고, 세계로 나가는 좌표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민간 박물관은 만들기는 쉽지만 운영은 어렵다. 수익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간송미술관 최순우 선생이 살아있을 때는 그가 박물관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김 명예회장이 꼽힌다. 그래서 지방자치시대 이후 각 지자체별로 박물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민·관에서 자문요구가 많다. 사실 본인도 박물관 운영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다른이들의 자문에 어떻게 응할지 궁금했다.

“우리가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지금 600여개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6000개예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요. 그래서 저는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를 위해 최고의 인재들을 추천하지요. 물론 몇년 지나 당사자로부터 ‘회장님, 왜 그때 만류하지 않으셨어요’라는 불평도 듣지만 가야할 길입니다.”

김 명예회장은 “국가의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지만 지자체와 수장가가 서로 윈-윈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어 기대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 부천시장일 때 개인 컬렉터들의 기부로 만화박물관, 로봇박물관 등 많은 박물관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최영도 변호사는 평생 모은 토기를 국립박물관에 기증했지요. 여러 가지 방법이 많습니다. 불암산에 자연사박물관을 유치하려는 노원구는 구청 대강당에서 공룡페스티벌을 열었는데 26만명이 관람했습니다. 노원구는 또 경춘선 폐철도 6.4㎞를 박물관 거리로 조성하려는데 이 역시 놀라운 아이디어입니다.”

그러나 박물관, 미술관이 재산을 빼돌리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하자, 내내 웃음띤 얼굴로 답하던 김 명예회장은 정색을 하고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과거 일부 그런 경우가 없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까요. (문화재 구입을 위한) 국가 예산이 얼마인지 한번 조사해보세요. 전형필 선생이 없었으면 간송미술관이 어떻게 가능했을 것이고, 이병철·윤장섭 회장이 아니었으면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림박물관에 있는 그 귀한 청자, 백자, 고서화들이 한국에 남아있을 수나 있었겠습니까.”

김 명예회장은 “박물관이나 문화재단을 그렇게 비뚤어진 시각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인 열린 시각으로 볼 때가 됐다”며 “2004년 세계박물관대회 때 참가한 외국인사들이 삼성미술관 리움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서울 강남구 신사동) 호림박물관(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청자전을 보라”며 “이 전시를 보면 그들이야말로 ‘최고의 애국자’라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 명예회장은 특히 호림박물관 청자전 이야기를 하며 “라이벌과 적을 구분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청자전 개막식에 삼성미술관 리움 홍라희 전 관장이 왔어요. 리움과 호림은 간송과 함께 한국의 3대 사립 미술관으로 꼽히지 않습니까. 마침 호림박물관 오윤선 관장도 함께 계시기에 제가 ‘라이벌과 적을 구분하자’고 덕담을 했습니다. 적은 상대방을 죽여야 자신이 살지만, 라이벌은 서로가 있어야 잘되는 관계 아닙니까. 이제 우리 사회 각 분야가 적이 아니라 라이벌로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구체적으로 적시는 하지 않았지만 ‘함께 사는 라이벌’이 아니라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사는 적’의 관계가 돼 버린 요즘 정치, 사회 세태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들렸다.

김 명예회장은 “일부에서 (보수적 인사, 사상들을) 박물관에나 보내야 한다고 하는데 박물관은 고물을 놔두는 데가 아니라 골동(骨董)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골동은 미래의 DNA가 들어있는, 다시 새로운 문화활동의 씨앗을 키워내는 밑거름입니다. 골동과 쓰레기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구분할 줄 알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박물관에 가서 우리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부터 배워야 할 겁니다. 그 후에 정치든 뭐든 해야겠지요.”

편집국 부국장 hyeon@munhwa.com

김종규 명예회장은…

▲1939년 전남 무안 출생 ▲1958년 목포상고 졸업 ▲1964년 동국대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삼성출판사 부사장 ▲1987년 삼성출판사 대표이사 ▲1992년 삼성출판사 회장 ▲1990년 ~ 현재 삼성출판박물관장 ▲1995년 정부 광복50주년 기념사업 위원회 위원 역임, 한국메세나협회 이사(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2004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