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감동을 읽어주는 남자>[AM7] 마흔 즈음 미혼 여성의 삶이란…

IMF 구제금융 직전 세상살이가 정말 힘들어졌을 때 모든 이들에게 부러움을 사던 여성들이 있었다. 일본의 ‘아라시’들이다. 아라시는 ‘around 30’ 즉 서른 즈음의 여성을 뜻한다. 이들은 남녀고용기회균등법으로 직장에서 활기차게 일하면서 버블경기에 따른 엔고에 힘입어 세계를 여행하며 명품소비를 일삼았다.

그런 그들이 이제 ‘아라포’가 됐다.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면 마흔 즈음의 여성이다. 일, 결혼, 출산, 취미 등 인생의 선택지를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했던 그들의 지금 모습은 어떨까? 오치 스키코의 소설집 ‘오늘, 나는 좀 이상하다’(은행나무)에는 아라포 여성들 중 미혼 여성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프리라이터로 일하지만 진학이나 취직은 술술 풀린다. 그런데 연애만은 이상하게도 잘 풀리지 않는다. 이 남자다 싶어 빠져들면 한결같이 유부남이다. 그런 사랑은 결국 깊은 상처만 남긴다. 일은 계속해서 들어오지만 담당 편집자들보다 열두 살이나 많은 나이가 되어 있다. ‘실연을 극복하는 법’이나 ‘사랑을 하면서 예뻐지는 비결’ 따위의 기사를 매달 질리지 않게 써내고 있지만 자신이 쓴 기사대로 행동해 봐도 사랑이 잘 된 적은 없다.

서른 중반이 넘은 남녀 관계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바뀔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냥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보니 남자는 어느새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다. 그것도 절친한 친구에게. 우연한 기회에 만나서 이번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시도를 해보지만 남자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있다. 연하의 몸짱 남자를 만나고도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은 자신의 몸이 한심스러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

출산도 문제다. 아이를 가지려면 빨리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맞춤한 남자는 없다. 자신의 벗은 몸을 바라보자니 한 가닥 하얀 털이 늙어감의 상징처럼 끈질기게 얼굴을 내민다. 그걸 바라보자니 이제 얼마나 더 여자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진다.

11편의 소설에는 아라포 여성 11명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전개된다. 솔직한 그들의 심리가 매우 섬세하게 묘사돼 있다. 공통의 화제를 나눌만한 친구도 없어 그저 망설이기만 하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보인다. 새벽에 일어나 책 한 권을 단숨에 읽어버린 뒤 이들에게 있어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니 정신이 멍멍해진다. 그 뒤 드는 의문? 한국의 마흔 즈음의 미혼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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