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만에 56만 독자 사로잡은 그의 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에 출판된 하루키의 대표작들과 서울시내 한 대형서점 하루키 코너에서 한 남성이 돳1Q84돴 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오른쪽). 문화일보 자료사진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신작 장편 ‘1Q84’(전2권·문학동네)가 출간 2개월 만에 56만부(발매기준)를 넘어서면서 ‘하루키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출간 직후부터 베스트셀러 정상에 올랐던 소설은 주요 인터넷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10주 안팎으로 종합 1, 2위를 지키고 있다. ‘1Q84’가 인기를 끌면서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가 다시 소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고, ‘1Q84’를 분석한 ‘1Q84를 말한다’(무라카미 하루키 연구회 지음) 등도 번역돼 12월 출간될 예정이다.

일본에서 이 소설은 예약판매가 이례적으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판매 당일 69만부가, 발매 10일 만에 100만부가 팔려나갔다. 여주인공이 택시 안에서 듣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는 소설 출간 1주일 만에 9000장이 주문되는 등 ‘1Q84’와 관련된 문화상품들이 폭발적으로 팔려나가며 신드롬을 만들었다.

이 같은 일본의 신드롬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국내에서 ‘1Q84’는 그저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 1990년대 이후 하나의 문화 현상이자 패셔너블한 문화 상품으로 소비돼온 하루키를 다시 한번 대중의 시선으로 끌고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번 작품에 대해 평론가나 독자 사이에서 하루키가 이제까지 탐색해온 모든 요소들을 쏟아부은 종합 소설이라는 평가와 이전 작품에 비해 문체나 구성력이 아쉽다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1Q84’의 인기는 ‘하루키에 대한 여전한 열광’과 함께 문학성과 대중성의 중간지대, 스타 작가의 흡인력, 새로운 리얼리티 등 2009년 우리 소설 시장을 지배하는 다양한 코드를 보여준다.

탈 역사, 개인, 무국적, 아련한 문체, 댄디즘과 교양주의 등 기존의 하루키 인기의 요소 이외에 ‘1Q84’의 인기가 보여주는 새로운 코드들을 살펴본다.

◆ 문학성과 대중성의 중간지대 =‘1Q84’의 인기를 설명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문학성과 대중성의 절묘한 접점이다. ‘1Q84’는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을 한치의 빈틈도 없이 ‘조용하게’ 살해하는 여자 킬러인 여주인공 아오마메,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문학 미소녀 후카에리 등의 캐릭터가 그렇고, 진실을 한꺼풀씩 드러내는 스릴러 구조도 그렇다.

끝까지 보지 않고는 책장을 덮지 못하게 하는 ‘대중적 흡인력’을 보여준 하루키는 지난 몇년간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로 꼽히면서 일본의 최고 ‘1급 작가’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했다. 일본 작가 중에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당연히 하루키라는 이야기가 국내외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됐고, 이는 결국 일본 시장에서 ‘하루키=일본’, ‘하루키=일본 문화’라는 등식을 만들며 ‘애국주의적 하루키 읽기’로까지 연결됐다.

일본의 분위기와는 다르지만 우리 시장에서도 ‘1Q84’는 최고 작가의 대중적 흡인력이 있는 소설이라는 ‘문학성과 대중성의 결합’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대략 10만명으로 추산되는 하루키 마니아 영토를 넘어 대중 독자와 세계 문학 독자 양 방향으로 동시에 확산된 것으로 풀이된다.

◆ 새로운 리얼리즘 = 윤상인 한양대 일본언어 문화학부 교수는 “하루키하면 따라붙는 수식어는 ‘무국적’이었다. 그의 관심은 개인이었다. 하지만 ‘1Q84’에서 하루키는 일본 사회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5년 도쿄(東京)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살포, 일본 전역을 경악에 몰아넣었던 옴진리교를 떠올리게 하는 종교 집단의 문제를 다루고, 가정 폭력, 비교육적 가정 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 전쟁에 대한 일본인들의 기억 등 일본 사회의 병리 현상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모던’ ‘댄디’ 등으로 묘사되며 다분히 서구적 감성을 보여줬던 하루키가 이번 소설에서는 재일 조선인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등 아시아적 취향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소설에서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성들을 제거하려는 ‘노부인’의 보디가드로 일제강점기에 사할린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노동자의 자식이 등장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일본사회 내에서는 당연히 자신들의 얼굴을 본다는 점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고, 우리 사회에서도 하루키가 보여줘온 아련한 감성과 환상성이라는 두 주요 요소 어디에도 끌리지 않았던 새로운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 스타 작가의 흡인력 = 한편 ‘1Q84’는 출판 시장의 ‘검증된 스타 작가로의 쏠림’ 현상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국내외 소설을 가리지 않고, 어떤 계기로든 스타성이 입증된 큰 작가 중심으로 시장이 갈수록 재편되고 있다. 외국 문학 시장도 새로운 작가의 진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하루키, 베르나르 베르베르, 오쿠다 히데오 등 기존의 스타들이 독자들을 쓸어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 한편 ‘1Q84’의 경우 인터넷 서점의 독자를 분석해본 결과, 전체 구매자의 57.8%가 삼사십대였고, 십대와 이십대는 38.2%를 차지했다. 또 남성 독자가 51.8%로 여성 독자를 넘어섰다.

이는 1980년대말, 1990년대초부터 하루키를 읽어온, 혹은 하루키라는 문화적 자장 안에서 살아온 세대뿐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하루키 세대가 생겨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소설은 기존의 소설 시장에서 벗어나 있던 남성 독자들도 끌어안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