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유혹>(13)간발의 차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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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향 목소리만 배달하면 너무 감질나잖아요. 그래서 정말 맛난 커피를 대접할까 하구요. 용준씨만 괜찮다면…… 아까 말씀한 그 에스프레소 집 저도 알아요. 작업하다가 잠깐 머리도 식힐 겸 커피 브레이크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서 말이죠.”

“아, 제가 먼저 말씀드렸으니 제가 사야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그냥 동생 같아서 편하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럼, 언제가 좋으시겠어요? 쇠뿔도 단김에 뽑을까요?”

“전 아무 때나 좋아요. 용준씨 편하신 시간이라면.”

용준은 집안을 한 번 휘 둘러 본다. 오늘 할 일은 웬만큼 모두 다 마쳤다. 쓰레기 분리수거만 해 놓으면 된다.

“그럼, 두 시간 후에 뵐까요? 가족들 저녁식사도 챙기셔야 하니…….”

“아…… 예.”

“그럼, 4시에 그 에스프레소 카페 러브홀릭에서 뵙겠습니다.”

용준은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용준은 먹다만 콩나물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식탁 위에 수저를 내려놓았다. 아까부터 거치적거리던 이 사이의 콩나물 줄기를 떼어 내고 찬 보리차로 입을 헹구었다. 생각지도 않게 유지완이라는 이 여자와 약속을 잡게 되다니. 예상외로 이 여자에겐 뭔가 분명 어머니처럼, 누나처럼 편안한 느낌이 있다. 촉촉하고 편안한 목소리. 하긴 목소리 예쁜 여자치고 얼굴 예쁜 여자는 드물긴 한데…… 그리고 주부라서 그럴까. 남을 배려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쁘진 않아. 게다가 그림 컬렉션도 하는 부유한 여자라니 뭐 손해 날 일은 없다. 꿩 대신 닭이라고 유미의 매력에는 못 미치겠지만 인근 지역에 미래의 그림 소장가를 하나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은 토요일. 내일은 미림의 회사에서 노블레스 멤버십 회원들을 위한 미팅 파티를 여는 날이다. 알 만한 결혼정보회사의 커플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미림은 내일 입고 갈 정장 원피스의 다림질을 아침에 부탁하고 나갔다. 그런데 그 비싼 원피스 엉덩이 부분을 온도조절을 잘못해서 살짝 눋게 만들었다. 다행히 단색이 아니라 화려한 꽃무늬가 있어서 그렇게 티는 나지 않았다. 용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유능한 커플매니저인 미림은 잘 나가는 전문직 남녀의 매칭에 회사 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파티를 주선하는 입장이라 원피스의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건 미림이 몇 가지 갖고 있는 명품 아이템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용준의 한 달 수입보다도 비쌀 것이다.

수입이라고 해봤자 일주일에 두 번, 선배의 화실에서 입시생들을 가르치고 받는 게 고작이다. 이번 학기에도 미림의 도움으로 대학원 학비를 겨우 마련했다. 마지막 학기니 무리를 해서라도 졸업은 하는 게 상책이다. 우리 나이 서른. 군대 갔다 오고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다니다 어언 서른 줄에 접어들었다. 사회에 나간 친구들은, 빠른 축은 대기업에서 대리 말년을 달고 있다. 남들과 같은 스타트 라인에서 출발해 달리지만 유독 자신만 처진다고 생각되는 요즘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용준은 남들이 뭐라거나 말거나, 이 레이스는 마라톤이라고 우기고 싶다. 대기만성형의 예술가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지금 예술을 하기도 전에 굶어 죽을 판이다. 그래도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다는 게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러나 그는 가끔 생각해 본다, 자신의 처지를. 미림의 애완견 아니 애완남? 아니 요즘엔 살림 잘 하는 마당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