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의 文化데이트>“평생을 첼로 50곡만? 제 남은 삶은 길어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정하종기자 maloo@munhwa.com

한국이 낳은 세계적 첼리스트 장한나(27)씨가 전국순회 마라톤 리사이틀을 화제속에 이어가고 있다. 18일 경북 구미 문예회관대극장에서 시작한 장씨의 리사이틀은 고양, 서울, 경남 창원을 거쳐 28일 군포 문예회관 대극장, 12월1일 서울 꿈의숲 아트센터 콘서트홀, 3일 부산 문화회관대극장, 그리고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계속된다. 3년 만의 국내 리사이틀이고, 첼로 시작 20년 기념 무대여서 더욱 정성스럽게 준비, 팬들의 박수가 이어지고 있다. 26일 창원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장씨를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26층 클럽라운지에서 만났다. 검은색 타이트 원피스를 입고 나온 장씨에게서 이제 소녀티를 찾기 힘들었다. ‘천재소녀’가 어느덧 ‘매혹적인 거장’이 됐다. 몰라보게 예뻐진 이유를 묻자 특유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모르겠다”고 답하는데 나이만 들었지 마음은 여전히 소녀였다.

만으로 스물일곱이면 우리 나이로 스물여덟이다. 아홉수를 피하니 전통적으로 스물여덟이 20대에 결혼하는 마지막 기회로 여겨진다. 마지막 불꽃을 피우기 위해 예뻐 보이려는 본능이 작용한 것 아니냐고 농반으로 물어보니 그는 또 한참을 ‘까르르’하고는 “정말 마음은 아직 10대인데 벌써 스물여덟이라니 그동안 뭐했나 모르겠다”고 자못 진지한 표정이다.

말이 나온 김에 미혼여성에게 금기인 질문부터 시작했다. 언제 결혼할 생각이냐고. 그는 “원래 서른일곱쯤 하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늘씬하게 몸매 관리도 하는 것을 봐서는 ‘청춘사업’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증거인데 믿을 수 없다고 짓궂게 달려들자 손사래를 치며 “운동도 안 하고, 먹는 것도 다 잘 먹는다. 연습을 하며 땀을 많이 흘리는데 그래서 그런가 보다”고 말했다.

그런데 손이 좀 이상하다. 약지와 식지가 거의 장지의 길이와 같다. 끝도 동그랗게 뭉쳐 있어 만화에 나오는 개구리의 손과 영락없이 닮았다. 장씨는 또 ‘까르르’하며 손가락을 쫙 펼치면서 “내 별명이 원래 ‘개구리 왕눈이’”라고 ‘자수’했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이라더니 하도 연습을 해서 정말 그런가 보다.

본론으로 들어가 지난번 리사이틀과 이번 리사이틀의 차이를 물었다. 장씨는 “최근 지휘공부를 시작했다”며 “지휘공부를 통한 음악의 깊이의 차이일 것”이라고 답했다.

“지휘공부는 음악의 지평을 넓히는 일입니다. 솔리스트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자기 혼자만 책임지면 되지요. 그러나 지휘자는 다릅니다. 전부를 책임져야 합니다. 음악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중입니다.”

같은 레퍼토리를 연주해도 아는 것이 달라진 만큼 내용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그러나 일부에서 첼로와 지휘,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하나도 잡지 못한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첼로는 축복입니다. 저의 재능을 발견하신 부모님들이 모든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어려움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행복하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휘는 철들 무렵 제 의지로 선택한 길입니다. 두 가지 모두 제 삶입니다.”

첼로는 바이올린과 달리 레퍼토리가 적다. 바흐와 베토벤, 하이든, 드보르자크 등 50여곡이 주요 레퍼토리의 전부다. 그래서 첼리스트들은 음악적 한계를 넘기 위해 지휘공부를 많이 했다. 토스카니니, 로스트로포비치 등이 첼리스트 출신인 세계적인 지휘자들이다.

“사실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첼로곡을 10대 때부터 꾸준히 연주했습니다. 지금도 1시간만 주면 연주 전에 다 맞출 수 있습니다. 물론 모두 깊은 의미와 내용이 있는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평생을 50개의 곡에 한정하기에 (제) 삶은 너무 긴 것 같습니다. 위대한 교향곡을 연주하면 제 첼로도 더욱 깊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장씨는 “음악은 소통이며 조화”라고 강조했다.

“내가 멜로디를 연주할 때 누가 나를 반주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연주할 때 내가 반주해야 하는 거지요. 결론적으로 멜로디는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주고받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마음들이 한 마음이 돼야 하는 거지요.”

장씨는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버리는 것”이라며 “콤플렉스와 함께 두려움도 비우고 오직 음악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래야 내가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 나올 수 있다”면서 “나는 할 수 있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나를 응원하는 것, 그것이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는) 열쇠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휘에서 음악 자체로 이야기를 돌렸다. 이번 레퍼토리가 브람스다.

“브람스가 10년을 기울여 작곡한 것이 교향곡 1번입니다. 브람스를 알아가며 너무 많은 게 보여 행복했습니다. 2번 첼로소나타와 3번 교향곡은 연년생처럼 닮아 있습니다.”

흔히 베토벤 다음에 브람스를 한다.

“모차르트가 (음악의) 천사였다면,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예요. 베토벤이 죽으면서 교향곡 10번이 머릿 속에 다 있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음악이지요. 만일 그 작품이 완성됐다면 이후 200년의 음악이 무효가 됐을 겁니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는 지금 해도 너무 현대적입니다.”

장씨는 “청력을 잃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한 베토벤은 진정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낸 프로메테우스”라고 지적했다.

“브람스는 (베토벤) 이후 모든 음악가들이 유행처럼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낼 때 거꾸로 간 음악가입니다. 모차르트도, 베토벤도 이미 만들어진 클래식 구조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그려냈습니다. 브람스는 그들도 했는데 굳이 새로운 형식이 필요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브람스의 음악을 신고전주의라고 부른다.

세계적으로 클래식 음악은 위기다. 한국 역시 그렇다. 그러나 아직 젊은 관객을 많이 갖고 있는 한국으로서 이것은 위기이며 동시에 기회로도 생각된다.

“(세계적으로) 클래식의 위기는 10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누가 클래식 음악을 죽였느냐’는 직설적인 비평도 나왔지요.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음악의 감동은 지울 수 없습니다. 200년 이상을 살아온 저력이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70분, 5번 ‘운명’ 35분, 이만한 시간으로 이만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특히 지금같이 건조하고 빠른 시대에 어린이, 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클래식입니다. 이런 감동을 배우고 느껴야 커서 더욱 창조적이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이것이 음악가가 사회적으로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씨는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은 이제 시작”이라며 “한 나라의 수준은 얼마나 유명한 단체가 (공연하러) 오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주단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세계 유명 학교나 컨서버토리는 물론 오케스트라에도 뛰어난 한국 연주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에 와서 음악에 기여할 부분이 매우 적어요. 이런 연주자들이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생겨야 합니다.”

문득 장씨가 이제 한국으로 들어와 정착하고 싶은 게 아닌지 물었더니 그는 “생각해본 적 없다”면서 “그런 일에 기여하고 싶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한국 클래식은 위기이면서 동시에 좋은 기회입니다. 음반시장이 무너지면서 세계 클래식은 변화하고 있어요. 어떤 형태로든 (과거 음반시장을) 넘어서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베를린필은 인터넷을 이용한 디지털 콘서트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은 우리가 강하잖아요. 어쩌면 이제 우리는 처음으로 그들과 동등한 출발선에 있는지 몰라요. 결국 콘텐츠의 싸움입니다.”

편집국 부국장 hyeon@munhwa.com


장한나는…
▲1982년 경기 수원 출생 ▲2002년 하버드대 철학과 입학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첼로콩쿠르 최우수상, 현대음악상 ▲1995년 EMI서 최연소 첼리스트 데뷔앨범 로스트로포비치와 런던심포니와 함께 녹음.(1997년 에코음반상 올해의 영아티스트 상 수상) ▲2000년 세번째 앨범 ‘백조’ 세계적 권위의 클래식 음악전문잡지 독일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음반 선정, 미국 빌보드차트 클래식 부문 8위 ▲2002년 네번째 앨범 프로코피예프 그라모폰 ‘2003년도 최고의 협주곡 음반’ 선정, 독일음반협회 2003년도 에코 클래식 ‘올해의 협주곡 최고음반상(Concerto of the Year)’ 수상, 제10회 프랑스 칸어워드 우승 ▲2006년 그라모폰, 미래의 음악계를 짊어지고 나갈 세계의 젊은 연주인 ‘내일의 클래식 슈퍼스타’ 20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