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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庚寅年 연속대담 ① 게재 일자 : 2010년 01월 01일(金)
“과거 100년 매듭짓고, 새 100년 향해 출발할 시점”
한일강제병합 100 년- 공로명 & 이태진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밴드
▲  사진=신창섭기자
대담=최영범 정치부장

2010년은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倂合)시켜 국권을 빼앗긴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1910년의 경술국치(庚戌國恥)는 1945년 광복을 거쳐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는 물론 양국 관계에 실로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한일 양국 간에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비롯해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과거사 문제가 장벽처럼 버티고 있고, 때만 되면 다시 불거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문화일보는 한일강제병합 100년째인 신년을 맞아 지난 12월30일 주일본 대사와 외교부 장관을 지낸 공로명(77) 세종재단 이사장과 일본 전문가로 경영인 역사포럼 고문을 맡고 있는 이태진(66) 서울대 명예교수와의 좌담을 통해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과의 과거, 현재를 진단하고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문제점 해결방안을 짚어 본다.

―올해로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일합방과 한일병합이 혼용되는데 개념상의 차이가 있나요.

▲이태진 명예교수(이하 이) = 합방이란 말은 일본 정부가 반대를 했습니다. 합방이라고 하면 두 나라가 일대일의 입장에서 합치는 겁니다. 일본 정부가 택한 공식적 명칭은 한국병합입니다. 한국을 일본에 병합시킨다는 의미죠. 우리 입장에선 한국강제병합이라고 쓰는 게 옳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일병합 100년은 현재의 한일관계를 토대로 본다면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지요.

▲공로명 이사장(이하 공) = 오늘은 과거에 기초를 두고 있고 미래라는 건 현재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너무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도 안 될 것이고 미래를 향하는 데 있어 과거를 잊고 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2010년은 하나의 매듭을 짓는 해가 아니냐는 생각이고 앞으로 100년의 출발점을 잘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 = 35년간의 일제 통치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한일관계가 시원하게 정리됐다고는 볼 수 없고 뭔가 핵심적인 걸 남겨둔 듯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21세기에서의 한일 양국관계도 그렇게 밝지만은 않은 듯한 느낌을 가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과거사 사과 문제를 놓고 양국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는데 지금까진 정치·군사적 사건으로 이해했는데 근본적으로 해결을 보려면 양국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도 심화시켜 가야 합니다. 현대 한국인들에게 유교 문화가 많이 배어있듯이 일본도 마찬가지로 의식 못하지만 무사(武士)적 사고를 합니다. 그런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충돌이나 상치가 과거사 문제를 미해결 상태로 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양국 국민들이 상대방을 충분하게 이해를 하는 진지한 노력이 사회적 차원에서 진행되지 않으면 쳇바퀴 도는 상황이 계속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공 = 그런 면에서 일본인들이 한류라고 해서 한국의 여러 가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사과가 미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일본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일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죄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한국 국민에겐 별로 깊이 마음에 새겨지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천황이나 총리가 사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인들이 불쑥불쑥 망언을 해서 우리 국민들을 더 자극하고 이런 인상이 깊이 남습니다.

▲이 = 기독교 문화는 죄를 사하여 달라는 그런 관념이 있고, 가톨릭은 사제 앞에 가서 하는 고해성사가 있습니다. 유교문화도 그게 가능합니다. 그런데 무사문화는 그게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 교수들은 ‘어떻게 봐도 잘못이란 건 알지만 일본 사회의 특유한 정서상 어떻게 표현하느냐’를 고민하더군요. 일본 사람이 양보하는 건 충돌을 피하는 것입니다. 충돌을 피하지 않으면 ‘쇼부’ 관념에서 끝장을 봐야 합니다. 그런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치책임자가 진정한 뜻을 가지고 사과하면 일본 자체가 끝장이라는 것으로 본다는 겁니다. 일본 국민들이 진짜 그게 아니다라는 사과의 생각을 가진다면 문제가 달라지는 것 아니냐 싶은데 그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일본이 잘못했다는 입장에서 활동하는 일본 사람들은 지쳐 있습니다. 정치인과 교수들이 움직이질 않으니까요. 대부분이 침묵 속에 있습니다.

―한국측에서 고쳐야 할 점은 없나요. 과거사 문제를 일단락 짓고 미래를 위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방안 같은 것 말이죠.

▲공 = 앞으로의 100년을 더해가면서 비극적인 지난 100년의 역사를 결산짓는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국회에서 사죄 결의를 하는 것도 방법이고 새로운 100년으로 가기 위해서 천황이 방한하는 것이 바람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선 천황의 방한에 대해 정치성을 두는 건 헌법상 지위를 봐서 바람직하지 않고, 또 어느 누구도 계란이나 토마토 세례에 대해 모험을 할 용의가 없어 대단히 어렵다는 현실론도 나옵니다. 1945년 이후 일본은 새로운 일본, 민주 일본입니다. 민주 일본 대부분의 국민 여론은 평화지향적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한일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항상 과거에 발목잡히는 노예가 되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 = 정답을 내는 것이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양국간 교류 속에서 결국 개선돼 가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보는데, 일본측도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 계속 정치적 관점에서 볼 경우 개선은 어렵습니다. 국내에서 ‘우리가 못나서 당했는데 반성 좀 제대로 하자’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무책임한 이야기입니다. 일제의 주권침탈에 대해 저항하다 목숨을 잃고 고난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간단하게 우리가 반성하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 건 착각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친일 인명사전발표 역시 지금 시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사실 대단히 위험하다는 데 공감합니다. 한일관계의 역사는 수면 위 몇개 빙하만 보는 것이고 밑에 큰 것은 아직 안 드러난 상태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친일이다 아니다 그런 것을 따지는 데 인력을 낭비하지 말고 역사의 진실을 파는 좀더 심층적인 연구를 해야 합니다.

―현재 일본으로 돌아와 보죠. 하토야마 정권의 등장, 즉 일본의 정권교체가 앞으로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뭘까요.

▲공 =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정권의 출현은 일본이 참다운 민주국가로서 동아시아에서 생존해가는 데 있어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부는 과거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고 말하고 있고 동시에 아시아 국가 관계를 일본 대외정책의 커다란 축으로 하겠다는 걸 우애정치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민당 정부같이 전전(戰前) 문제를 끌고 오늘날 양국관계에 지장을 가져오는 것을 스스로 재고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 저도 기대를 많이 합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정치를 민주당 정권이 해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참 중요한 것입니다. 일본 사회가 전향적으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민주당 정권이 좀더 큰 걸음으로 과감하게 여러 가지 의미있는 조치들을 해 주면 상당히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5년 전에 비해 한일관계가 많이 변했는데 그건 한국 경제력의 상승이 가져오는 변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중국도 상승하고 있고…. 그러니 일본이 과거엔 동아시아를 상대하지 않고서도 경제가 돌아가고 발전했는데 지금은 바로 옆 두 나라가 성장하니 혼자선 안 된다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부 일본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 내의 과거사 사과 움직임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원하면 오히려 자신들의 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부담이 된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이 =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못됐다. 고쳐라’고 하는 것은 효과도 없고 반감을 삽니다. 일본 안에서 변화가 생기도록 기여할 수 있는 우리 일을 찾아야 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도 계속 풀리지 않을 고리가 독도, 교과서 문제 아니겠습니까.

▲공 = 영토 문제는 국제관계에서 가장 델리키트(delicate)하고 센시티브한 문제죠. 돌아가신 국제법학자 백충현 교수는 독도 문제는 제3자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도 없고, 국제사법재판소나 중재로 갈 성격도 아니며, 양국 외교교섭에 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당분간 현 상황에서 분쟁이 격화되는 걸 방지하면서 먼 날을 기약해서 양국 연구 결과에 의해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새로운 역사 사실들이 자꾸 드러납니다. 일본 외무성도 블로그에 처음엔 독도를 ‘일본 고유영토’라고 했는데 요즘은 ‘고유’를 뺍니다. 새로운 연구 결과들, 사실들이 축적돼 가면서 일본 국민도 언젠간 독도영유권 주장이 무리라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일본의 일부 어용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말 안 합니다. 중국이 어떻게 될지 정말 걱정입니다. 중국과 일대일로 부딪힐 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방이 필요합니다. 일본도 필요하고 미국도 필요하고 그런 국제관계를 관리해 나가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 독도는 러일전쟁을 위해 일본이 차지했던 땅으로 섬이었습니다. 한일관계의 가장 큰 쟁점은 한일병합의 불법성 문제입니다. 그게 풀리면 독도 문제도 같이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중일 3국은 시간대를 달리 해서 근대화란 과제는 달성했다고 봐야 합니다. 다음은 경제적 관계 속에서 공존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 관계는 국제법적 질서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한중일 3국은 그런 측면에선 대단히 미흡합니다. 과거 일본은 약육강식 논리로 해석해서 팽창주의에 써먹었고, 중국은 조공체제 중심으로 주인자리를 내주는 것으로 국제법 질서에 대응했습니다. 국제법적 공존 관계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는 게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역사분쟁입니다. 한일 간, 한중 간 역사분쟁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국제법적 평화공존 관계입니다.

▲공 = 하토야마 총리가 들어와서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내세우는데 그 사람이 이를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앞으로 세계가 G2 질서로 재편돼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때 가운데 낀 나라는 정말 곤란하다는 겁니다. 일본, 한국같은 나라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결국 공동체를 만들어 평화공존해 가자는 이야길 하는 것인데 중국학자들에게 이 이야길 꺼냈더니 ‘동아시아 공동체요?’ ‘대동아공영권 이야기입니까?’라며 웃더군요. 다시 말하면 중일관계에서 역사의 응어리가 아직 남아있는 겁니다. 중국이 그런 것을 내놓지 못하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 동아시아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앞으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 된다고 봅니다.

youngbchoi@munhwa.com

대담자 약력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1932년 함북 명천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86년 주 뉴욕총영사 ▲90년 주 소련(현 러시아) 대사 ▲93년 주일 대사 ▲94년 외무부 장관 ▲2003년 한일 포럼 회장(현) ▲07년 동서대 국제관계학부 석좌교수(현) ▲08년 재단법인 세종재단 이사장(현)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 1943년 경북 영일 출생 ▲성동고, 서울대 사학과 졸업 ▲77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98년 진단학회 회장 ▲2003년 역사학회 회장 ▲03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06년 서울대 인문대 학장 ▲06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 ▲07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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