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파 박제가의 ‘文才’를 만난다

  • 문화일보
  • 입력 2010-03-0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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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람됨은 이러하다. 물소 이마에 칼 같은 눈썹, 초록빛 눈동자에 흰 귀를 지녔다. 고고(孤高)한 사람만을 가려 더욱 가까이 지내고, 권세 있는 자를 보면 일부러 더 멀리하였다. 그런 까닭에 세상과 맞는 경우가 드물어 언제나 가난했다.”

서얼 출신으로 조선 제22대 왕 정조에게 발탁돼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는 젊은 날의 자서전이라고 할 ‘소전(小傳)’에서 스스로를 가난하지만 고고한 선비로 자처했다. 초정이라는 호(號)도 굴원의 ‘초사(楚辭)’에서 따온 것이다.

최근 정민(국문학) 한양대 교수팀이 ‘북학의(北學議)’를 제외한 초정의 시문집 전체를 완역한 ‘정유각집’(전 3권·돌베개·사진)을 펴냈다. 상·중 2권에 시 820제 1721수가, 하권에 123편의 산문이 우리말로 번역돼 원문과 함께 실려 있다.

1961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원문을 활자화해 ‘정유각집’을 간행한 이후 초정의 전집은 세 차례나 영인·출간됐지만 소규모 선집 외에 전작 번역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난해한 고사가 도처에 숨어 있고 인용이 많은 등 워낙 해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민 교수팀도 지난 2004년 9월 번역에 착수한 뒤 5년여 초정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이번 성과를 내놓을 수 있었다.

초정은 18세기 후반 조선 지식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던 북학파의 핵심인물이다.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와 함께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의 수제자였던 그는 세 차례의 규장각 검서관 생활과 네 차례에 걸친 연행(燕行) 체험을 통해 넓은 식견과 국제적 안목을 갖췄다.

초정은 사신단의 일행으로 중국 연경(燕京·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조선이 북벌의 원수로 지목했던 청(淸)나라가 결코 오랑캐가 아닌, 새로운 학문 사조와 서양 과학으로 무장한 문명국임을 똑똑히 자각하게 됐다. 연행의 경험이 집약된 그의 저서 ‘북학의’는 조선이 북벌(北伐)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청나라의 학술과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北學)으로 나가는 전기가 됐다. 초정은 18세기 후반 조선과 청나라 간 학술 및 민간 교류의 주역이었다. ‘정유각집’에 실린 청나라 문인 반정균(潘庭筠)과 이조원(李調元) 등의 서문이 초정의 교유의 폭을 보여준다. 이조원은 ‘정유각집’하권에 실린 서문에서 초정을 ‘예리한 성품에 글 솜씨가 뛰어난 키 작은 천재’라고 평가하고 있다.

정 교수는 “최근 고전학계에서 민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협소한 시각을 벗고, 중국과 조선과 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유와 그로 인한 세계관의 변화를 감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며 “‘정유각집’ 완역 출간을 계기로 초정의 학문과 사상 및 문예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새롭게 시작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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