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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랜만입니다 게재 일자 : 2010년 03월 12일(金)
“프로 안간다했는데, 제안오면 나도 모르겠네”
프로야구 원년스타 이광은 감독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이광은 연세대 야구팀 감독이 10일 경남 김해 상동야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 2군과 연습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김해 = 김선규기자
프로야구 원년멤버로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현역으로 뛴 이광은(55·MBC청룡-LG트윈스). 방망이를 끌며 터벅터벅 타석으로 들어서던 독특한 걸음걸이며 헛스윙을 하고는 ‘헛!’ 웃음 짓는 초탈한 듯한 그의 캐릭터로 기억하는 중년세대들이 많을 것이다.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80년대를 통틀어 타격 ‘베스트5’에 들었고 포지션도 내·외야를 가리지 않던 ‘만능 선수’였다. 잔재주를 피우지 않던 그의 별명은 ‘바보 온달’이었다. 또 하나, 이광은은 프로야구에서 ‘맏형’이란 호칭을 처음 들은 선수가 아닌가 싶다. 품이 넓고 선이 굵어 후배들이 많이 따랐는데 선수나 지도자 시절의 야구 스타일도 그랬다. 좀 더 젊은 세대들은 프로야구 LG의 ‘짧았던’ 감독시절(1999년 10월~2001년 5월)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누적관중 1억명 돌파와 600만명 관중시대를 열게 될 2010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6년째 연세대 야구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광은 감독을 만났다. 전지훈련 중인 이 감독을 10일 봄기운이 완연한 경남 김해의 상동야구장(롯데자이언츠 2군훈련장)으로 찾아갔다. 젊은 선수들과 항상 같이해선지 여전히 힘이 넘쳐 보였다.

“애들(선수들)이 예뻐요. 때묻지 않아 얼굴들이 맑잖아요.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이는 것도 지도자로서 재미있고요. 제가 줄 수 있는 걸 다 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행복하죠.”

그는 프로야구 1세대로서 대학에 ‘프로식 자율야구’를 도입해 연세대의 전국대회 우승 등 효과를 보았다.

“모든 스포츠는 누가 시켜서 하기보다 자율적이어야 해요. 프로시스템을 도입해 미팅보다 게시판에 일정을 알리고 스스로 연습하게 하니까 그게 정착됐어요.”

그는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태어났다. 3남1녀 중에 작고한 큰형(이장하)은 1973년 미스터코리아를 지낸 보디빌더였고, 누나는 여자농구 국가대표 및 한국과 일본에서 지도자로 명성을 날린 이옥자(58·태릉선수촌 지도위원)씨다. 매형은 최장수(15년) 여자농구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정지현(75)씨. ‘스포츠 명가’라 할 만하다.

“형제들이 어머니(남농화·85)쪽을 닮았어요. 함경도 출신인데 그 당시 스키를 하셨다니까요. 형님이 남대문 구제시장에서 농구공을 사다줘 누나는 농구를 했고, 저한테는 글러브를 사줘 야구를 했어요.”

누나의 얘기는 좀 다르다. 이옥자씨는 2007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이동윤의 스포츠인생’)에서 “광은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사고뭉치…, 6학년 때 책가방은 화장실에 던져두고…, 그 나이에 염천교까지 진출해 깡패들과 어울리고…, 오빠가 ‘애 망치기 전에 운동부에라도 넣어야겠다’고 해서 중학교에서 야구를 하게 됐다”고 폭로(?)했었다. 이 감독은 펄쩍 뛰었다.

“청량리 홍릉에 살던 꼬맹이 때, 닭장에 가방을 던져 놓고 강원도에 곰을 잡으러 간다고 1주일 동안 집을 나간 적은 있지만, 그 외에는 운동하면서 한번도 벗어나는 일을 한 적이 없어요. 누나가 잘못 기억하는 것일테지…. 헛!”

배명중에서 야구를 시작했지만 주전에 들 정도는 아니었다. 숭의여고에서 이미 농구선수로 날리던 누나가 주선해 야구팀을 재창단한 배재고로 진학했다. 거기서 나중에 프로야구까지 한솥밥을 먹게 될 하기룡(투수·원광대 투수코치)과 신언호(포수·배재고 감독)를 만났다.

“투수로 들어갔는데, 부산고에서 전학해온 하기룡이 피칭하는 걸 보니 내 볼은 볼이 아니더군요. 투수도 했지만 하기룡한테 밀려 3루수 등 내야를 주로 맡았죠. 타격과 수비에선 잘한다는 말을 들었죠.”

1973년 제28회 청룡기 고교야구대회는 이광은을 전국구 스타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5일 동안 5경기에서 59이닝을 던진 사상 최강의 ‘고무팔’ 전설이 그때 생겼다.

“투수 하기룡이 배재고로 전학해오는 과정에서 서류 미비가 드러나 졸지에 출장을 못하게 됐어요. 배재고 선수가 총 11명이었는데 하기룡이 빠지니 나밖에 나설 투수가 없었죠.”

5일 동안 연장전과 서스펜디드 게임, 패자부활전 등으로 5경기 59이닝, 223명의 타자를 맞아 공 697개를 던졌고, 32안타를 맞아 7점을 내줬다. 방어율은 1.07. ‘청룡기 역사’에는 “이광은은 청룡기 사상 가장 값진 감투상의 주인공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감독님은 경기를 포기하자고 하셨지만 나는 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렸죠. 하기룡처럼 강속구 투수라면 어깨가 망가졌겠지만 나는 손장난(기교파) 투수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어요.”

그의 뚝심을 보여준 대회였다. 언론은 그 대회 최우수선수인 김용희(경남고)와 함께 이광은을 대서특필했다. ‘바보 온달’ 별명도 그때 처음 생겼다. 이후 일본 고시엔 선발과의 한·일 고교선발전에 한국대표로 뽑혀 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이광은이란 존재를 알리게 됐고, 자랑스러운 모교인 연세대로 갈 수 있었어요.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우여곡절이란, 고교야구가 공전의 인기를 누렸던 그해 말 입시를 앞두고 고려대가 고교졸업 예정인 축구와 야구, 농구의 유망주 8명을 납치(?)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명문대학이라면 어디나 연례행사처럼 있던 일이고 선수로서도 행복한 경우였다.

“축구에서 허정무와 최종덕, 야구에선 김용희와 나, 농구선수 4명 등 8명이 전북 고창 등지에서 40일 가까이 붙잡혀 있었어요. 어쩌다 들어온 신문을 보게 됐는데 ‘배재고 야구선수 이광은 등 행불(行不)’이란 기사가 실렸더군요. 강력히 항의해 빠져나올 수 있었죠. 결국 허정무와 나만 연세대로 갔죠. 이후에 8명은 친목회를 만들어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는 모교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배재고와 연세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제자들에게도 최고의 자긍심을 갖고 품행에서도 격조있는 신사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대학시절에 그는 투수와 타자로 고르게 활약하며 여러 차례의 전국대회 우승과 최우수선수 선정, 국가대표로 선발됐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다양한 코스의 두뇌피칭, 펀치력 뛰어난 중심타자”라고 투타에 모두 강했던 이광은을 소개했다. 대학 졸업 후 포항제철을 거쳐 군복무는 성무(공군 야구팀)에서 마쳤다. 제대 즈음인 1982년 4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이광은은 제대가 4월이었지만 그 전해에 MBC청룡과 계약을 해 동계훈련부터 합류했다. 프로로 가면서 타자로 정착했다. 초창기 프로야구 생활은 어땠을까?

“‘프로’란 개념이 전혀 없었어요. 실업에서 월 20여만원씩 받다 200만원 넘게 받게 되니, 그게 좋았죠. 술집의 팁이 3000원, 작은 집도 100만원이면 장만하던 시절이에요. 한 시즌이 80여게임 정도밖에 안 되니까 널널했죠. 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선후배들과 술도 많이 마시고, 한마디로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어요. 지금 후배들처럼, 그때 프로정신으로 무장하고 야구를 했다면 돈 좀 벌었겠죠.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어요.”

이 감독은 현재 독실한 크리스천이지만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다. 선수시절 ‘초탈’한 듯한 모습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 이렇게 들려준다.

“젊은 시절부터 사찰을 좋아했고 스님들도 많이 알아요. 선수시절 12월 중순부터 1월 초순까지 개인 훈련기간에는 포항의 보경사 등으로 가서 등산으로 몸만들기도 하고 수행도 해보고 했어요. LG 감독에서 중도에 물러났을 때도 절에 가서 한달여 동안 마음을 추스렸어요. 나중에 보니 절 앞 술집에 앉아 야구 중계를 보고 있었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내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화두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 모습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이 감독은 2007년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일면 스님(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과의 인연으로 서약을 했어요. 일면 스님도 2000년에 간이식을 받아 새 생명을 얻으셨어요. 그분이 이후에 더욱 열심히 봉사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못할 게 없겠다’ 싶어 장기기증을 결심했죠.”

그는 생명나눔실천본부에 후원금도 내고 있다.

LG의 짧았던 감독시절이 아무래도 이 감독의 야구인생에서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코치생활 7년째, 선수들과 맏형처럼 지냈는데 제게 감독 제안이 왔어요. 감독은 코치와 달리 카리스마도 있어야 하고 이미지 변신도 필요하니 좀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간곡하게 ‘연세대-MBC-LG의 맏형으로 팀을 재건해달라’고 하더군요. 고민끝에 그렇다면 3년의 감독 임기를 보장해달라고 제안해서 약속을 받았죠. 결국 지켜지진 않았지만.”

그는 팀의 성적 부진으로 만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감독 제안을 받은 것이 44세 때였으니, 당시 공부를 더 하고 감독을 했다면 더 오랫동안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금방 훌훌 털었다. 이 감독은 프로야구 1세대로서 현재의 프로야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리 야구의 수준이 일본과 대등할 정도로 좋아졌어요. 연세대도 일본 전지훈련에서 그곳 대학팀과 붙으면 지지 않거든요. 우리 프로야구 수준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활약이 말해주죠. 지도자들이 스케일이 큰 야구를 지향한 게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다시 프로구단에서 감독직을 제안해온다면 어떨까?

“친구들한테는 ‘이제 프로에는 안 간다’고 말해왔어요. 근데 솔직히 다시 제안이 오면 그게 그렇게 될지, 나도 모르겠네요. 허허….”

인터뷰 = 엄주엽 체육부 부장대우 ejyeob@munhwa.com
e-mail 엄주엽 기자 / 문화부 / 부장 엄주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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