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검거 5일만에 자백>‘결정적 순간’ 마다 ‘결정적 실수’… 볼수록 한심한 경찰

① 성폭행당한 K씨, 金 지목 신고→ 적극검거 안해
② 납치 다음날 양부모집 방문만 → 잠복수사 안해
③ 범행 은폐 쉬운 무당집→ 초기수색 대상서 빠져

부산 여중생 이모양 피살사건 피의자 김길태(33)의 자백으로 이양 납치에서 성폭행, 살해 및 사체 유기로 이어지는 행각의 전모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만, 경찰의 초동수사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실했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초동수사만 제대로 벌였어도 끔찍한 참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경찰은 이양 사건이 있기 한 달 전인 지난 1월 김길태에게 끌려가 12시간 동안 감금된 채 성폭행당한 K(22)씨가 김길태를 피의자로 지목했음에도 김을 검거하지 못했다. K씨는 15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옥탑방을 지목하자 경찰은 누구 집인지 알고 있었다”며 “한 형사는 자신의 휴대전화 속에 있던 김의 사진을 보여주며 ‘맞느냐’고 물어왔다”고 주장했다.

김길태는 사건 후에도 줄곧 부산 사상구 덕포동 자신의 집 인근에 머물렀고, 수시로 집에 드나들었다. 당시 경찰이 적극적인 수사를 벌여 김을 검거했다면 이양 사건은 애초에 일어날 수도 없었던 것이다.

K씨 사건 이후 불과 한 달 만인 2월24일 이양이 실종됐지만 경찰이 김길태를 특정해 행방을 추적한 것은 그로부터 1주일가량 지난 뒤였다. 심지어 이양이 실종된 다음날인 2월25일 김길태의 담당형사가 김의 양부모가 사는 집을 찾아갔지만, 1월에 발생했던 K씨 사건에 대한 조사 차원이었다. 경찰은 “이양 사건도 염두에 뒀지만 도주를 우려해 말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경찰은 이후에도 김의 집에 잠복근무를 하지 않았고, 경찰이 다녀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찾아간 김을 검거하지 못했다. 김은 당시 경찰이 남겨 둔 명함을 보고 경찰에 전화를 걸어 “나는 범인이 아니다”고 우기기도 했다.

김은 2월28일에도 친구가 운영하는 주점 인근 공중전화에서 경찰에 전화를 걸어 결백을 주장했지만, 이때도 경찰은 검거에 실패했다. 김의 친구가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당시 경찰이 김길태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만 했어도 얼마든지 검거는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의 허술한 수사는 덕포동 일대 수색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김길태가 이양을 살해한 장소로 지목된 일명 ‘무당집’은 이양 시신 발견장소 바로 근처에 있었던 데다 덕포동 재개발지역 내 다른 빈집들과 달리 대문과 유리창이 멀쩡하게 붙어 있는 공간이다. 누군가를 가둬놓고 사건을 은폐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만큼 우선적으로 정밀 수색이 이뤄졌어야 했다.

이용권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