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 바로가기
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2022.12.1 목요일
전광판
Hot Click
오피니언
[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0년 04월 19일(月)
위계와 소통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밴드
“명보야, 밥먹자!” 2002한일월드컵을 앞둔 축구 대표팀 식당. 팀내 최고참 홍명보 선수에게 한참 나이 어린 후배가 툭 던진 말에 좌중엔 폭소가 터진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부임 후 “그라운드 안에서는 모두 반말로 하라”고 지시했다. 기존 선후배 의식으로는 20대 초반의 미드필더가 경기 중 30대 공격수에게 지시하는 게 껄끄럽다. 경기력을 떨어뜨리는 단서를 간파한 것이다.

지난해 청소년 대표팀을 맡아 세계 8강을 이룬 홍명보 감독은 거꾸로 어린 선수들에게 존댓말을 썼다. 또 다른 발상으로 감독-선수 간 벽을 허물겠다는 취지다.

월드컵 4강 신화 직후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외국인 영입 성공 사례로 히딩크와 함께 또 한 사람을 주목했다.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던 데이비드 그린버그다. 델타항공 출신의 그가 2000년 1월 임명됐을 당시 대한항공은 미 국방부가 직원 탑승을 금지시킬 만큼 안전평가에서 최악이었다. 2년 만에 그런 평판을 바꿔놓은 처방은 히딩크 발상과 닿아 있다. 조종사들에게 영어 사용을 의무화한 것이다.

발단은 1997년 8월의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다. 당시 부기장은 심각한 징후를 포착하고도 기장에게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 조직 특유의 위계질서 탓이다. 통념과 달리 부기장이 조종석에 앉을 때, 기장이 조종간을 잡을 때보다 사고가 줄어든다고 한다. 경험이 더 많은 조종사가 옆에서 거리낌 없이 조언할 수 있어서다.

사회학자 기어트 홉스테드는 위계질서 존중 정도를 나타내는 ‘권력간격지수(PDI)’를 고안했다. 1990년대 세계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평가한 PDI 1위는 브라질, 2위는 한국, 3위가 모로코였다. 이 순위는 국가별 비행기 추락사고 발생 빈도와 거의 일치했다. 그린버그는 영어 전용을 통해 경어체로 상징되는 권위주의적 위계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등 정부 핵심인사들이 대거 희생된 비행기 추락사고 후 폴란드 언론은 ‘대한항공의 교훈’을 언급했다. “‘언어의 덫’에 갇힌 계급적 문화를 깨라.” 고위 관계자가 무리한 착륙을 지시했을 거라는 추정에 근거한 논평이다.

언어는 사고·행동을 지배한다. 서열이 내재된 말로는 활발한 의견 개진이 어렵다. 그렇다고 고유의 미덕인 경어 사용을 백안시하는 건 실체를 두고 그림자를 지우는 잘못이다. 위계와 소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요체다.

[[김회평 / 논설위원]]
[ 많이 본 기사 ]
▶ “어린애가 허리 펴고 4성장군과 악수, 김일성 때도 없던 일..
▶ “한국, 포르투갈에 1-0승… 16강 간다”
▶ 진중권 “유시민, ‘60이 지나면 뇌가 썩는다’는 가설 입증하..
▶ “마스크 안 쓴 40대, 공원서 35분 조깅하다 39명 감염시켜..
▶ 서울시 1급 간부 3명 용퇴 결정…국장급 5명 승진 인사로..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서울시 1급 간부 3명 용퇴 결정…국..
‘10명 퇴장’ 시켜 유명한 주심, 포르투..
‘아내 성폭행 오해’ 직장동료 살해…군..
‘홀로 중공군 50명 사살’ 한국전쟁 영..
흑인에게 “‘진짜 어디서 왔냐’ 여러 번..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7.15 | 회장 : 이병규 | 발행·편집인 : 김병직 | 발행연월일 : 1991.11.1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