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아프간戰 기밀 공개 위키리크스 ‘민주주의에 藥인가 毒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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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는 민주주의 축복인가, 폐해인가.’ 내부고발전문 민간인터넷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org)’가 이번 주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군사기밀정보 9만2000여건을 공개하자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런 의문을 던졌다. 일개 민간사이트가 방대한 국가기밀을 입수, 폭로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우려가 미묘하게 뒤섞여 있는 질문이다. 여기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보 공개는 민주주의 존립에 득이 되지만, 그것이 과도할 경우 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위키리크스가 과연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를 자신 있게 말하는 건 미국 정부 말고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로부터 정보를 받고 있는지 불분명한 ‘유령’ 같은 존재 위키리크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령의 등장은 민주주의 논쟁뿐 아니라 웹2.0시대에 획기적으로 달라진 정보의 유통 과정을 보여 주고, 그로 인해 언론의 역할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긴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정보 고발자-유통자 직거래 시대= 1970년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낙마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려 보자. 미 역사상 최대 스캔들인 이 사건은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던 밥 우드워드가 칼 번스타인이라는 ‘딥스로트(내부고발자)’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검증 과정을 거친 후 세상에 공개됐다. 언론과 내부고발자가 서로에 대해 잘 알면서 직접 정보를 주고받은 것이다. 1971년 미 국방부의 베트남전 보고서 유출 등 과거 거대한 파문을 일으킨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유통자는 고발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고발자는 유통자로 기존 언론이 아닌 민간사이트를 선택했다. 언론들이 아프간전 기밀을 보도할 수 있었던 것도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샌지(39)가 폭로 3주 전 뉴욕타임스, 가디언, 슈피겔 등 3개 언론사에 정보접근권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는 폭로 디데이(D-day)를 지난 25일로 잡고 이들 3개사가 해당 정보를 검토한 후 같은 날 일제히 보도할 것을 요구했다. 뉴스나 정보의 유출을 통제하는 ‘게이트키퍼(gatekeeper)’로서의 역할이 사실상 언론에서 민간사이트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언론의 역할이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내용의 신빙성을 담보해 주는 부수적인 것으로 전락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를 두고 전문가들은 인터넷 시대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위키리크스의 경우 익명성이 보장된 스웨덴, 벨기에 등에 서버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언론을 접촉하는 것과 달리 누구나 손쉽게 접속해 기밀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위키리크스가 보유한 기밀이 120만건에 이르는 것도 익명성 때문으로 보인다. 어샌지도 한 인터뷰에서 “우리도 제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며 “(웹사이트)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돼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비밀을 지킬 필요조차 없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위키리크스가 기존 언론이 가진 정보원 보호 책임 등으로부터는 자유로우면서 공공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언론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간편한 절차로 손쉽게 얻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키리크스’는 뉴미디어인가= 위키리크스의 ‘공익성’은 언론이 갖는 ‘공익성’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위키리크스를 폭넓은 의미에서 언론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대 사회는 ‘1인 매체 시대’라는 점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는 미 법원이 ‘블로그’는 언론이고, ‘블로거’는 언론인이라고 유권 해석한 것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 판단대로라면 전통적 의미에서 언론이 아니더라도 진실을 추구하고 공익 차원의 정보를 제공할 경우 위키리크스와 같은 사이트도 블로그처럼 언론으로 봐야 한다. 특히 정보 자체가 신뢰할 만하면 언론이 보도하는 것이나 민간사이트에 올리는 것 사이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공익성만으로는 언론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은 필연적으로 정보를 가공하고, 걸러 내는 작업을 거쳐 정기적으로 전달하고 있지만 위키리크스는 가공하지 않은 정보를 일회성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위키리크스가 정보에 대한 검증시스템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이에 대한 우려도 상당히 큰 편이다.

이는 위키리크스가 현행법 위반이라는 위험에 항상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이번에 위키리크스가 아프간전 기밀 유출로 미 연방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하게 정보를 거르지 않고 공개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기밀’을 공표했기 때문에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보고 명백한 현행법 위반으로 몰아가는 듯 보인다. 국익뿐만 아니라 공개된 정보에 따라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부분도 위키리크스를 언론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공개된 내용으로 봐서는 법 위반으로 몰고 갈 만한 여지가 없고, 다른 경우에도 사례별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현미기자 alway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