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독도 둘러싸고 한·미·일은…

  • 문화일보
  • 입력 2010-08-1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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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1947 / 정병준 지음/돌베개

책은 이화여대 교수인 저자가 지난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독도문제 종합연구서다. 저자는 책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미·일 3국의 독도인식과 정책이 언제 시작됐으며,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을 거쳐 어떻게 귀결됐는지를 다루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전후 일본이 한국령인 독도를 영토분쟁 대상지역으로 주장하게 된 가장 큰 배경으로 1951년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을 꼽는다. 광복과 6·25전쟁의 혼란기에 한국이 성숙한 외교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틈을 타 일본이 주일미군정치고문 겸 연합군최고사령부 외교국장이던 친일성향의 미국 외교관 윌리엄 시볼드를 움직여 독도를 일본령이라고 주장하게 만들었다는 것. 1004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서 저자는 전후 독도문제가 한·일 간의 역사적 영유권 문제라는 기존의 시각을 넘어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 영향력과 결정이 초래한 국제정치적인 지역문제였음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치밀하게 논증한다. 저자의 작업은 독도연구 1세대인 고(故) 이한기 전 서울대 교수와 2세대인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의 맥을 잇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

책에서 1947년이 부각된 이유는 바로 이 해가 한·미·일 3국에서 독도문제에 대한 인식과 정책, 판단의 출발점이 됐다는 저자의 이해 때문이다. 우선 한국의 경우 1947년부터 독도에 대한 관심과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남조선과도정부 민정장관 안재홍의 명령에 의해 과도정부 조사단과 조선산악회가 독도학술조사대를 편성해 독도를 조사한 것. 종전 직후부터 대일평화조약의 체결이 국가적인 중대사로 부각됐던 일본은 1947년 조약과 관련된 모든 내부준비를 완료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일본 외무성은 1947년 6월 독도와 울릉도를 ‘일본의 부속도서’로 다룬 팸플릿을 제작해 미국과 연합국에 배포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대일평화조약을 준비한 미국은 1947년 초부터 조약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작성된 미 국무부의 다양한 초안은 리앙쿠르암(독도)이 한국령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 이 같은 미국의 정책적 입장은 1949년 11월 시볼드가 일본의 허위정보에 기초해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처럼 1947년은 전후 독도와 관련한 한·미·일 3국의 정책적 선택과 입장이 명확히 드러난 시점이자 전후 독도문제의 보이지 않은 출발점이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에는 영국 외무성 대일평화조약 초안에 첨부된 지도(1951년 3월)와 1947년 7월24일 미 국무부 지리담당관 새뮤얼 보그스가 대일평화조약 초안 준비과정에서 제작한 독도가 한국령임을 명백하게 표시한 지도 등이 실려 있다. 보그스의 이 지도는 1949년까지 미국에서 사용된 대일평화조약 초안용 지도의 모본(母本)이 됐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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