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北 천안함 사과할 때까지 모든 수단 동원해 압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공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입장은 확고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인터뷰 = 최영범 부국장 겸 정치부장]

북한 잠수함이 영해를 침범해서 우리 군함을 폭침시켜 46명의 인명피해가 났는데, 시간이 5개월 지났다고 해서 아무일도 없었던 것같이 남북간에 공동번영이나 한반도 평화 이야기를 한다면 상당히 허황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는 확고했다. 흔들리지 않았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 정권 출범 이후 계속되는 남북 경색의 장기화에 대한 피로감이 슬슬 묻어나오고 있다.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국면 전환의 필요성도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뜬금없어 보이는 대북 쌀 지원문제를 거론하고 나섰고, 북한과 중국의 기류도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6일 3개월여만에 중국을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이 인터뷰는 지난 24일 진행됐고, 유 장관은 27일 필리핀을 방문 중이다.

정부의 입장이 겉으로야 대북 제재와 대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투 트랙’전략이지만 아직 남북 대화를 할 시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이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난히 강조했다.

“북한에 천안함 침몰 사건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요구한 것이 북한이 응할 것이냐, 응하지 않을 것이냐에 따라 달라져선 안됩니다.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해서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이런 조치는 지속돼야 합니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에서 만난 유명환(64) 장관.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내용은 단호했다. 그는 질문에 대해 요점을 콕 찍어 대답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전후좌우 배경을 충분히 설명한 후 이해를 구하는 식이다. 그래서 조금은 장황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30여년의 오랜 직업 외교관 생활을 거치면서 다져진 화법인 듯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시절의 대북정책은 실패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지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장거리 미사일 실험도 했습니다. ‘퍼주기’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을 정도로 대북 지원은 효과와 결과에 대한 투명성 확보가 되지 않았고 원조 조건에 대한 원칙도 없었습니다.”

김·노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에서 그의 대북정책은 출발하고 있었다. “대북정책 기조를 좀 더 합리적으로 하고, 일관성 있게 지키자는 것입니다. 북한은 사실 (현정부의) 합리적 정책에 대해 지금까지 불만을 표시하는 것 아닙니까. 북한과의 대화는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좀 더 진정한 상생공영을 위한 대화가 돼야 합니다. 시작이 어렵더라도 그런 대화가 돼야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정권과 달리 ‘대북 저자세’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유 장관은 현 장관 가운데 최장수 장관 중 한명이다. 그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이 대통령은 수시로 그를 찾아 대북 문제와 외교 현안에 대해 의논한다. 지난주엔 주말을 앞두고 모처럼 큰맘 먹고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로 여름휴가를 갔다. 하지만 하루 만에 이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귀경했다. 이 대통령이 “오지 말고 쉬라”고 했는데도 ‘자진해서’ 돌아와 회의에 참석했다. 매주 열리는 청와대 정례회의였지만 이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보니 걱정이 앞서 마음 편히 휴가를 즐길 수 없더란다.

작금의 최대 외교 현안은 남북관계다. 정부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대화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지난 2년반 동안 꿈쩍않던 북한이 제재 때문에 자존심을 접고 자세를 바꿀까. 그래서 미친 생각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 또한 실패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유 장관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정부의 남북 대화는 북한이 원하면 하고, 북한이 중단하면 안되고, 모든 것이 북한 의사에 따라 이뤄졌습니다. 그건 안됩니다. 마치 우리가 칼날을 쥐고 있고 북한이 칼자루를 쥐는 식의, 갑과 을이 바뀐 듯한 상황과 북한 인권 및 내부 개혁·개방이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는 것이 대북정책을 재고한 계기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일관성 있게, 대북 지원에 대해 최소한의 투명성을 보장하라는 것과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한·미·일 등으로부터 대규모 경제원조를 받으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북한이 벤츠를 구입해서 고위 관료에게 나눠주면서 식량은 사오지 않고 우리나 미국 등 선진국에 의존하고, 미사일 부품을 사오는 데 돈을 쓰면서 주민들을 위한 생필품, 특히 식량을 구입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겁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이제야 나왔다. “북한이 불만을 표시한다고 해서 남북정책을 실패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 대북정책의 성공, 실패를 판단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북한은 정권 세습을 준비하는 예민한 시기인데 천안함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할까요.

“북한이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원칙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북한의 태도가 변했다고 수용할 수 있는 최저선은 어딥니까.

“어떤 식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어떤 표현으로 재발 방지를 약속하느냐는 건 일단 북한에 맡겨야 합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느냐 여부는 북한의 조치를 봐서 판단할 문제지 미리 어떤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천안함 사태를 한·미 양국이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점입니다. 있을 수 없는 어불성설입니다. 먼저 북한이 책임을 인정하고, 두번째는 거기에서 사과와 유감을 표명해야 하고, 세번째 중요한 것이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대북 강경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요구를 무시하고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참여를 선언한다면…. 중국이 이를 적극 중재한다면…. 정부의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입장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지 않을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2008년 12월부터 북한은 ‘6자회담은 끝났다’면서 보이콧했습니다. 북핵 검증문제를 둘러싸고. 그러다 천안함 사건 이후 별안간 아무런 설명도 없이 6자회담에 관심이 있으니 나오겠다, 6자회담에서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하고 비핵화를 논의하자고 했습니다. 6자회담의 원래 목적인 비핵화는 우선순위에서 미루고. 거기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1718호와 1874호 제재를 해제해야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성에 회의감이 드는 겁니다. 천안함 국면을 모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6자회담에 나오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6자회담이 중요하지만 북한이 천안함 사태에 대한 아무런 조치 없이 6자회담에 나오겠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6자회담을 이용해 천안함 사태에서 벗어나려는 저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천안함 문제가 해결돼야 6자회담에 나가겠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조건부로 하는 것은 국제적 신뢰를 받기 어렵습니다.”

약간 알쏭달쏭한 답변이었다. 천안함 사태 해결이 먼저인지, 6자회담이 먼저인지. 그는 이 부분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듯했다. 설명이 추가됐다.

“북한이 천안함 사태를 모면하려고 6자회담을 이용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두개가 별개 문제라는 전제로. 6자회담 전제조건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숱한 대남 도발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사과가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남북 대화는 다시 이어졌다. 천안함 사건도 그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그점이 대북정책의 한계라고나 할까,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물리적 공격을 받았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보복하는 것은 평화를 수호하는 입장에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이 악용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이번에 천안함 사건도 길게 보면 무력 도발 케이스입니다. 천안함 사건은 잘못에 대해서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북한에 가르쳐주지 않으면 이런 도발을 부추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단호하게 조치를 취해나가는 것입니다.”

―일각에서 거론하는 ‘천안함 출구전략’은요.

그는 이 질문에 처음으로 웃었다. 답변이 ‘조크’ 비슷한 뉘앙스를 풍겨서일까. “출구전략은 북한이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잘못한 게 있습니까. 잘못하고 벌을 받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어디로 도망갑니까. 저는 사람들 만날 때마다 왜 우리가 출구를 찾느냐, 북한이 출구전략으로 6자회담을 쓰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중국은 움직이고 있다. 중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26일 방한했다. 중국 외교당국자의 방한은 오랜만이다. 유 장관은 외교관답게 중국의 역할을 평가한 뒤 답변을 이어갔다.

“우다웨이 대표가 오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입증하며, 어떤 방안으로 어떤 절차로 다시 6자회담에 복귀시킬 것이냐 하는 큰 차원에서 논의를 해야 합니다. 언제 6자회담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원칙문제에 있어서 지난 7년간 6자회담의 공과를 한번 검토해보고, 거기에 따라 이 대통령이 제시한 ‘그랜드바겐’문제를 포함해 실효적으로 북한 비핵화 달성을 위해서 어떤 형식으로 6자회담을 이끌지를 근본적 문제부터 논의해야 할 겁니다.”

―우다웨이 대표가 천안함 문제를 언급할까요.

“6자회담 대표니까 북한에 가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했는지 구체적으로 들어봐야 합니다.”

―우다웨이 대표의 방한으로 한반도 정세가 6자회담 국면으로 급격히 쏠리지는 않을까요.

“하하하. 앞서가는 문화일보가 중심을 잡아줘야합니다. 문화일보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11월11일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리는데, 북한이 이를 계기로 또 도발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예단할 수는 없지만, 북한도 여러 가지 검토는 하겠죠. G20 정상회의를 방해하기 위해 도발이나 테러를 할 경우 과연 북한에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에 대해서요. 하지만 G20 정상회의에는 러시아, 중국을 포함해서 주요한 나라 정상들이 오는 회의니까 공개적으로 테러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론….” 그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 “국제사회가 좀 더 일치해서 북한에 경고를 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서 그렇습니다. 일관된 입장이 중요하지, 북한의 도발이 염려되니까 화해하자는 것은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G20을 앞둔 대북 유화국면 전환 가능성에 대해 못을 박았다.

―섣불리 대화국면으로 가는 것은 북한에 대한 잘못된 시그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긴가요.

“그렇죠.”

대북 문제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얘기했다. 이제 대미 외교에 대해 들어볼 차례다.

―최근 들어 미국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미국내 일자리 창출, 즉 경기회복입니다. 그걸 수출을 통해서 한다는 정책이죠. 한국 자동차 수출 관세는 2.5%인데, 미국차의 한국 수입관세는 8.5%입니다. 미국은 수출상품의 경쟁력을 높여야 하니까 관세를 서로 없애면 미국 혜택이 더 큽니다. 다만 미국에서 정치 이슈화된 것이니까 중간선거도 있기 때문에 자동차 노조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겠죠.”

―미국의 요구가 재협상 수준입니까.

“미국도 협정문을 다시 손보는 것이 국내 정치적으로 어렵고, 한국도 어렵고,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협정을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찬성하고 있습니다. 반대하는 건 포드자동차쪽일 겁니다. 재협상은 미국도 준비도 안됐고 원하지도 않습니다. 자동차노조의 요구사항을 어떻게 한·미간 협정문을 건드리지 않고 충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차원에서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FTA는 한쪽의 이익이 있으면 한쪽을 양보하는, 균형을 맞춘 것이니까 완전히 새로 하면 다른 것을 또 다시 맞춰서 균형을 잡아야 하므로 복잡해집니다. 미국은 자동차 부분이 불리하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미국이 불리할 것이 없습니다. 미국은 자동차노조 등으로부터 의견을 취합중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11월에 방한하니까 그전에는 입장이 나오겠죠.”

―이미 사인하고 의회 비준만 남겨놓았는데 또 다시 손을 보자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웃으며) 그렇죠. 하지만 미국 정부가 바뀌었으니….” 대답하기가 곤란했던지 그는 말끝을 흐렸다.

―한·미간 대이란 제재 문제가 쟁점인데 미국이 멜라트은행의 한국지점 폐쇄를 요구했나요.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의 방한때 대이란 제재 조치를 설명하고, 협조해달라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한국 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미국의 방침을 설명했습니다.”

―국내 기업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란 제재에 동참해야 합니까.

“해야죠. 해야 합니다. 그건 하나의 의무입니다. 지난 6월 유엔 안보리의 1929호를 보면 이란 제재조치에 중국, 러시아도 동의했습니다. 법에 근거해야 하니까 우리는 금융감독원의 멜라트은행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를 검토해 조치를 취할 것이고, 그런 방향으로 검토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일본 정권 교체후 미일동맹이 약화되면서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정학적인 중요성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동시에 최전방인 한국의 안정은 일본의 안정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는 콘셉트입니다. 미일동맹이 흔들리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좋지 않습니다. 미일관계의 발전이 강화되는 것이 한미동맹 유지에 중요합니다. 일본 정권이 지난 몇년간 많이 바뀌어 미국이 당혹스러워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시적 문제죠.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유 장관에게 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에이 뭘.” 유 장관은 임기에 관계없이 현 정부의 대북 정책 패러다임과 같은 운명인 듯 보였다.

youngb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