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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랜만입니다 게재 일자 : 2010년 10월 01일(金)
‘고바우’ 김성환 화백 “‘경무대 똥통’ 필화사건?… 유명해지려고 함정 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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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환 화백이 9월2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자택 거실에서 벽에 걸린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남 =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  지난 1958년 영화 ‘고바우’ 촬영 중 김성환 화백과 출연진 등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배우 김희갑씨, 고바우로 분장한 주연배우 김승호씨, 김 화백(오른쪽부터)과 이대엽 전 성남시장(왼쪽 첫번째)의 모습이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에 납작한 대머리. 그 위로 솟은 머리카락 한 올. 독특한 모습을 한 영감님은 똥 치는 사람 일행이 앞에서 걸어오는 다른 똥 치는 사람에게 “귀하신 분 행차하시나이까” 하고 정중히 인사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영감님 당연히 묻는다. “저 어른이 누구신가요?” 돌아온 대답은 “경무대에서 똥을 치는 분이오.” 때는 경무대가 절대권력의 상징으로 통하던 1950년대 말이고 영감님은 짐작하듯이 4컷 신문시사만화의 주인공 고바우다.

자유당 시절 등장한 고바우는 군부독재와 문민정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는 50년 동안 통렬한 비판과 해학으로 우리 현대사를 풍자해 왔다. 그래서 “(국민들은) 고바우를 보면서 남몰래 웃었고 그 웃음은 자신에 대한 위안의 웃음이자 자책의 비웃음이며 더러는 작은 저항의 웃음이기도 했다”(선우휘). 그렇게 “실재하는 이웃보다 더 친숙하고”(김중배) “국민들의 한숨 속에서 자라났던”(이어령) 고바우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지 벌써 10년이 됐다. 그를 만든 김성환(78) 화백이 지난 2000년 시사만화 연재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김 화백은 화단에서 평가받는 풍속화가로 29일부터 전시회를 열고 있다.


9월2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위치한 김 화백의 자택에 방문했을 때 그는 현관문 밖까지 나와 기자를 맞았다. 고바우와 달리 표정이 온화하고 머리카락도 많았지만 고바우 분위기가 물씬 묻어났다. 김 화백의 안내에 따라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지하실로 내려가 전시회 출품작들이 놓인 마룻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전시회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29일부터 오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그 시절 그 모습’이란 타이틀로 전시회를 엽니다. 90여점을 전시하는데 7년 정도 준비를 했습니다. 풍속화도 있고 인물화도 있고 풍경화도 있는데 오일파스텔로 그린 그림들입니다. 저는 그림을 그릴 때 철저하게 고증을 합니다. 직접 보고 그릴 수 있는 것은 현장을 찾아가 스케치하고 그럴 수 없는 풍경들은 수집한 옛날 사진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합니다. 40호 정도 그림은 보통 두 달 반에서 석 달쯤 걸립니다. 자료 수집 기간까지 하면 1년이 넘게 걸리는 셈입니다.”

50년 경력의 시사만화가다운 답변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고바우로 화제를 옮겼다.

―고바우는 6·25전쟁이 벌어졌던 1950년에 탄생했으니 올해 환갑을 맞은 셈이네요.

“그렇게 됐네요. 만주 소학교 시절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었고 이후 우리 미술계의 대표적 화가를 배출한 경복중(현 경복고)에 진학해 미술반장을 지낼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물론 만화에도 관심이 있어 1949년 초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라는 만화를 보냈는데 게재가 돼 돈을 받았고 그것으로 가족의 생활비를 마련했죠. 고바우는 1950년 11월 초에 나왔습니다. 6·25전쟁 때 북한군이 전쟁에서 밀리면서 보위부원들이 젊은이들을 무조건 끌고 가 정릉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당시 만화 주인공을 200명 정도 그렸는데 고바우는 그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고교 졸업반이었는데 고바우 같은 노인을, 그것도 무표정에 머리카락 하나뿐인 대머리로 설정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만화라면 모두 아이들만 보는 걸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면 아이들은 당연히 볼 것이고 어른들도 같이 볼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구나 고바우는 표정이 없습니다. 사실 만화는 표정을 포함해 모든 것을 다소 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처음부터 표정을 없앴습니다. 다른 만화 주인공과 현격히 다르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고바우의 기분이나 심리 상태를 표정 대신 머리카락 하나로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평소에는 머리카락이 앞으로 약간 구부러져 있다가 놀라면 빳빳해지고, 질릴 정도면 꼬불꼬불해지고 화났을 때는 똑바로 서고 하는 식이죠.”

6·25전쟁 이후 장기집권으로 숨 막히는 시대적 상황이 전개된 것을 감안하면 무표정한 고바우의 탄생은 마치 필연처럼 느껴졌다. 그도 당시 이런 걸 예감했을까.

“그런 점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화 사건이 여러 번 났죠.”

고바우의 필화 사건. 그리고 그 뒷이야기야말로 이번 인터뷰의 백미일 수밖에 없다. ‘경무대 변소 만화 사건’으로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는데 답변은 요즘 표현으로 ‘대박’이었다.

“사실 그 만화는 계획적이었습니다. 무려 한 달 반을 생각하고 준비했습니다. 외국 만화들도 필화 사건을 일으키면 모두 유명해지더라고요. 저도 그걸 노리고 함정을 판 겁니다.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 양자인 이강석의 권세가 막강하다 보니 가짜 이강석들이 돌아다녔고 거기에 아부하던 도지사, 시장들이 나중에 망신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 상황을 그린 겁니다. 만화가 나오고 나서 경무대가 발칵 뒤집혔죠. 4일간 끌려가 문초를 당했는데 저는 그것까지 계산에 넣고 있었습니다. 외국 필화 사건을 다 분석해 저는 덜 얻어맞고 정권을 크게 곤혹스럽게 만들 방법을 연구했는데 거기 정권이 걸려든 거죠.” 으레 민주지사연한 답변을 예상했는데 ‘유명해지기 위해’라는 말을 듣자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선우휘씨의 표현대로 김 화백의 그런 솔직함이 고바우에 투영됐고 소시민들은 고바우를 보는 것만으로 ‘나만의 저항을 하고 있다’며 자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화가 1958년에 실렸는데 이듬해 ‘높은 사람’이 저녁을 하자고 했습니다. 을지로의 스카라극장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대원호텔이 있고 거기서 또 한번 꺾어 들어가면 하얀 3층짜리 호텔이 있어요. 그게 당시 부정선거 본부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경무대 순경이 법원 판사에게 큰소리칠 때였습니다. 자기가 경무대 총경이라고만 하고 저를 거기로 데려갔는데 미국 유학 갔다 온 박사니 미끈한 미인이니 바글바글했는데 모두 선거에 동원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총경이 저에게 심각한 어조로 ‘이 박사님(이승만 전 대통령)이 또 한번 하셔야 김일성을 막을 수 있다. 이분이 믿는 분이 이기붕씨니까 이기붕씨를 부통령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기붕 일대기를 18~22페이지짜리 조그만 만화책으로 그려 달라’고 하더군요. 그걸 전국에 뿌리겠다는 거에요. 대놓고 이기붕 지지하는 방식은 안 통하니까 이기붕씨가 어렵게 성장했고 민중의 편이란 걸 은유적으로 그려 달라는 거였습니다. 책 제목은 ‘고바우가 본 이기붕’이라고 하면서 원고료로 한 300만∼400만원 주겠다고 했습니다. 4·19혁명 직후 저희 집이 20만원 받았으니까 400만원이면 빌딩 한 채 값은 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절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도 필화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검찰에 2번, 중앙정보부 측에 2번 끌려갔습니다. 중정 요원들이 데려갔을 때는 4박5일간 잡혀 있었는데 그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은 저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제가 풀려나니까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기자가 취재를 하더군요. 제가 지하 감옥에 잡혀가서 얻어맞은 걸로 기사를 쓴 모양이더라고. 그런데 제가 사실과 다르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죠. 저는 우선 지하 감옥이 아니라 라이온스 호텔에 있었습니다. 더구나 기념으로 한번 맞아 주려고 했는데 안 때리더라고요. 5∼6명이 돌아가며 공갈 협박하는데 한 대라도 맞으려고 반말을 했더니 오히려 조용해지더라고요.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나갔다 반 시간 후에 돌아와서는 공갈 협박도 안 했어요. 심지어 잠 안 재우는 일도 없었어요. 잠 안 재우면 그것 자체가 고문이죠.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뉴스위크 기자가 ‘그럼 기사가 안 된다’고 했고 결국 기사가 안 나갔죠. 동아일보 편집국으로 올라왔더니 이번엔 워싱턴포스트지 기자가 왔는데 똑같이 이야기했죠. 만약 제가 거짓말이라도 해서 시사만화가를 고문했다는 기사가 워싱턴포스트지에 나갔다면 미국이 발칵 뒤집혔을 겁니다. 결국 제가 박 전 대통령을 크게 도와준 셈 아닙니까.” 그리곤 “따님(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은 아실지 모르겠다”고 능청스럽게 사족을 덧붙이는 그에게서 시사만화가의 면모가 어김없이 드러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어떠셨나요.

“동아일보에서 저를 포함해 110명이 해임됐는데 언론계 숙청을 담당한 사람이 K 대령이었습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 특파원 H씨가 전 전 대통령을 면담해 ‘기자 백여명을 어떻게 해직시키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 전 대통령이 거드름을 피우면서 ‘정경유착한 부패 기자와 김대중씨 심부름꾼 기자를 해직했고 무작정 반정부적인 기자도 포함됐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딱 걸려든 겁니다. H 특파원이 ‘정부에 비판적이라고 해직하면 언론 탄압 아니냐’고 따지다가 ‘만화가는 왜 끼어 있냐’고 물었죠. 통역하는 사람이 ‘고바우 작가 이야기’라고 하자 전 전 대통령이 K 대령을 불러 당장 복직시키라고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그날 밤 K 대령으로부터 만나자고 연락이 와 자기들이 실수했으니 없었던 일로 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곤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직접 지시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회사 내부 사정 등으로 복직이 지연됐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조선일보로 옮기게 됐습니다.”

―조선일보를 거쳐 문화일보에서 고바우를 연재하다 2000년 연재를 끝냈는데 아쉬움은 없으십니까.

“50년간 1만4139회를 연재했습니다. 한 개인이 이렇게 연재한 것은 아마 세계 기록일 겁니다. 다른 회사로 가서 1~2년 더 할 수 있었지만 50주년을 기해 마무리하는 게 명분이 서지 않겠습니까.”

―요즘 시사만화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제가 문화일보 그만두고 나니까 이거(시사만화) 없애도 되나 보다 하고 신문들이 연재를 중단한 것 같습니다.(웃음) 사실 기사는 활자를 통해 전달돼 2차적이지만 그림은 보는 즉시 바로 의미가 전달됩니다. 따라서 TV를 거쳐 인터넷으로 옮겨 가는 요즘 시사만화도 효용성이 있다고 봅니다.” 50년 경력의 시사만화가가 요즘 세태를 풍자한다면 어떤 만화를 그릴까. 그런데 또다시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저는 뉴스 거의 안 봅니다. 골치만 아프더라고요. 총리 인준 가지고 몇 달 끌고, 그런 것으로 매일 신문을 도배하는 것도 짜증 납니다.” 이게 아닌데…. 다시 한번 도전했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 40%가량의 국민들이 정부 발표를 못 믿는다고 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군에서 처음에 우물우물한 데다 이명박 대통령도 북측과 대결 구도로 가기 싫으니까 그게 반영돼 우물우물하고.” 그런데 여기까지였다. “하여튼 뭐 복잡해서 원. 전 그런 일로 만날 도배하는 뉴스 잘 안 봅니다. 청문회도 짜증 나서 아예 보기가 싫습니다.” 결국 원로의 한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이미 옛날 사람인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곧 80세가 된다고 하니까 자꾸 죽는 것에 대해 신경이 쓰입니다. 버스 타고 서울 갈 때 양옆의 나무를 보면 나보다 오래 살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무가 부러워지기도 하더라고요. 70대 초반까지는 몰랐는데 이젠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길 것은 철저히 남겨야겠구나 하는 사명감도 생기고.”

유명해지기 위해 도발적 만화를 그린 그가 80을 앞두고 오래 사는 나무가 부럽다고 한 것은 진솔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지금 멈춰서 있지 않다. ‘풍속화’라는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인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일본이 기록을 보석처럼 여긴다는 사실을 몇 차례 상기시키면서 ‘기록이 쌓여 역사가 된다’는 말을 강조했다. 그의 집을 나서면서 전시회에 꼭 한번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 = 박민 전국부장 minp@munhwa.com

▲1932년 황해 개성 ▲경복고 ▲경희대 국문학과 2년 중퇴·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수료 ▲동아일보 연재만화 담당 ▲현대만화가협회 회장 ▲동아일보 국장대우 ▲조선일보 국장대우·이사대우 ▲문화일보 이사대우 ▲한국시사만화가협회 명예회장 ▲한국만화가협회 고문
e-mail 박민 기자 / 정치부 / 부국장직대겸 정치부장 박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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