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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오랜만입니다 게재 일자 : 2010년 10월 15일(金)
“김영덕 감독이 혹사시켜 허리 망가졌다?… 완전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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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야구 원년의 주인공 박철순씨는 지금도 한국야구를 위해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 지난 13일 올림픽파크텔에서 만난 박씨는 세월의 연륜이 묻어났지만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김선규기자 ufokim@munhwa.com
프로야구 원년스타 박철순

프로야구 원년의 스타 박철순(54)씨에게 인터뷰를 위해 연락했을 때 처음에는 좀 꺼리는 듯했다. “사진도 찍나요?”하고 묻고는 “머리도 빠지고…”하며 걱정을 했다.

박씨는 선수 시절과 은퇴 이후에도 패션과 CF모델로 여러 차례 초청됐다. 쭉 뻗은 몸매에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미소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개 스타가 그렇듯 전성기의 인상대로 남겨지길 바라는 걸까. 몇 차례 전화 끝에 인터뷰 약속을 받아내고,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실야구장에서 보자’고 했더니 다시 주춤했다.

“야구장에 가면 가슴이 아려서….” 후배를 이끄는 호탕한 보스기질과 카리스마로 유명했던 그가 이런 말을 하니 잠시 뭉클했다. 결국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5차전이 열리던 1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박씨를 만났다.

“언론과 이런 인터뷰를 한 지 근 10년은 되는 것 같다”는 박씨는 전화상으로 느낀 것과 달리 여전히 젊었고 몸매도 그대로였다. 머리가 좀 빠지긴 했다.


박철순을 데리고 OB베어스(현 두산) 원년 우승을 이끈 김영덕 전 감독은 지난 7월 ‘오랜만입니다’인터뷰를 했을 때 “박철순이 프로야구 감독 한 번 하는 게 내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문화일보 7월2일자 36면 참조) 원년 우승 이후 박철순은 허리부상으로 사실상 화려한 경력은 접었다. 김 전 감독은 이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그같은 말을 했다. 먼저 김 전 감독 얘기를 했더니 박씨는 다소 목소리를 높이며 다른 얘기를 했다.

“그게 아니에요. 제가 22연승 할 당시 감독님은 제게 ‘오버한다’고 여러 번 야단을 쳤어요. 제 투구폼이 사실 허리에 무리가 가는 폼이에요. 그래서 다른 투수보다 러닝을 두 배 이상 했어요. 감독님은 저한테 그만 뛰라고 하고, 등판을 하겠다고 하면 ‘미친 지랄 좀 하지 말라’고 자주 말했어요.”

―당시 언론을 보면, 과다한 등판에 의한 ‘혹사’가 지적됐고 김 전 감독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나요.

“감독님이 성격상 구차하게 변명하는 걸 싫어해요. 기자들이 물어오면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얘기하신 거죠. 사실은 거꾸로예요. 감독님이 등판을 만류하면 제가 삐치고 그랬어요. 더 승수 쌓고, 더 칭찬받으려고 제가 무리를 했을지 몰라요. 제가 젊었고, 이 정도 허리 삐끗한 것은 금방 괜찮을 줄 알았죠.”

―어쨌든 진통주사를 맞고 한국시리즈에 나갔다고 알려졌는데.

“주사 맞은 적이 없어요. 만약 제가 주사를 맞고 던진다고 했다면 감독님 성격에 제 귀싸대기를 때렸을 거예요. 그분을 승부에 미친 감독이라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선수의 부상은 궁극적으로 선수책임이에요. 감독님께 제가 죄송하다는 말을 꼭 좀 기사에 넣어주세요.”

―당시 무리하지 않았다면 전성기를 더 길게 이어가지 않았을까요.

“당시엔 선발-불펜-마무리 개념이 없던 때예요. 저만 무리했다고 보지 않아요.”

곧이곧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김 전 감독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박씨의 깊은 배려가 느껴졌다. 화제를 바꿔보았다.

―요즘 프로야구는 자주 보나요.

“일부러 안 보려고 하는데 어느 순간 보고 있어요. 어쩔 수 없나 봐요.”

―김경문 두산 감독이 포스트시즌을 하는 걸 보면서 부러웠겠네요.(박씨와 그의 후배인 김경문은 우승 원년의 배터리였다.)

“그보다는, TV에 클로즈업된 김 감독 얼굴을 보면 ‘저 심정이 어떨까”하는 안타까움이 일어요. 그 친구는 선수 때부터 남달랐어요. 내가 그때 ‘너는 지도자 하면 잘할 거다’라고 했는데 맞았잖아요. 당시 계형철(SK 와이번스 2군감독) 투수가 올라가면 조범현(KIA감독)이 미트를 잡았고 제가 올라가면 김경문이 맡았죠. 저를 잘 리드했고 사인 낼 때 머리를 흔든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저 때문에 고생도 많았고. 김 감독은 믿음의 야구를 하는 감독이에요. 올해 꼭 우승하길 바랐는데….”

당시 그의 구질을 놓고 ‘너클볼이다’, ‘아니다’는 논쟁이 지금도 팬들 사이에 벌어진다.

“사실 팜볼을 던졌죠. 구질이 비슷하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체인지업이에요. 그때는 국내투수들이 커브나 슬라이더만 던졌으니 저의 체인지업에 타자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저의 결정구는 몸쪽 직구였어요. 맞기도 많이 맞았지만, 팬들은 호쾌하다며 좋아했죠.”

―초창기 프로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여유롭지 않았나요. 경기 수도 적었고.(박씨는 웃음을 터뜨리며 당시 ‘경기 중 담배 사건’을 들려줬다.)

“실업야구의 분위기가 남아서 지금보다 훨씬 느슨했어요. 방송에서 제가 경기 중에 더그아웃 뒤로 나와 담배 피우는 모습을 찍어 내보냈어요. 그때 참 말이 많았죠. 당시만 해도 고참선수들은 이닝을 마치고 나오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어요. 나는 ‘왕고’(왕고참)니까 밖에서 피웠지.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죠.”

―어릴 적 얘기는 별로 알려진 게 없습니다.

“태어난 곳은 부산이죠. 제가 동광초교 6학년 때 야구부원 공고가 났어요. 그때 제 동기가 김용희(SBS 해설위원), 5학년에 김용철(경찰청야구단 감독), 차동열(군산상고 감독)이 있었죠. 용희는 집안끼리도 가까워서 용희 막냇동생이 저희 집에서 학교에 다녔어요. 나중에 다른 학교에서 유지훤(한화이글스 코치)과 하기룡(원광대 감독)을 데려왔죠.”

―중·고 시절엔 좀 이름을 날렸나요.

“경남중에 입학했는데 야구를 너무 못하고 거기다 병약했어요. 서울의 배명고에서도 두각을 못 나타내다가 연세대 재학 중에 입대한 성무에서 야구에 눈을 떴어요. 실업 출신 좋은 선배들에게 도움을 받았죠. 규칙적인 생활에 훈련도 많이 했고. 결정적으로 제대 후 백호기 때 최동원과 같이 2년간 우승을 했죠. 그때부터 국가대표에도 발탁이 되고.”

박철순은 미국 프로야구에 처음 진출한 한국인이었다. 대학 4년 때 한·미 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면서 그곳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었다.

“볼티모어 구장에서 경기가 있었는데, 그날 밤 몇 팀에서 제의가 있었죠. 한국선수의 미국 진출은 꿈도 못 꾸던 때라 처음엔 흘려들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밀워키에서 구체적으로 연락이 왔죠. 병역도 마쳤겠다, 학교에서도 흔쾌히 보내주겠다고 해서 우연찮게 가게 됐죠.”

―첫 미국 진출이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제가 미국에 간다니까 국내 신문기자들은 ‘3개월 안에 안 돌아오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 했어요. 에이전트도 없던 시절, 혼자 비행기와 버스를 수없이 갈아타며 밀워키 스프링캠프가 있는 애리조나 피닉스로 갔어요. 미국 전역과 중남미에서 온 선수들이 수천 명은 돼 보였어요. 테스트가 끝나면 하루에만 수십, 수백 명이 짐을 쌌죠. 연습을 마치고 라커룸을 여는 게 제일 겁났죠. 그 안에 비행기표가 들어 있으면 집에 돌아가라는 사인이었어요. 제가 술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좋아했는데, 딱 끊었죠. 정말 게거품을 물고 훈련했어요.”

두 시즌 동안 마이너리그의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밀워키가 트리플A의 진입을 보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81년 말 시즌이 끝나고 국내에 들어왔을 때 한국에선 프로야구 출범이 준비 중이었다. 당시 OB가 적극적으로 박철순을 붙잡으면서 그는 국내 잔류를 선택했다. 출범 첫해 프로야구는 그때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려온 고교야구를 단박에 잠재워버렸다. 프로야구의 정착에 가장 기여한 선수가 박철순이었다. 그 해 10월12일 서울운동장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박철순은 마지막까지 마운드를 지키며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그 해뿐이었다. 원년의 무리로 허리부상을 당한 뒤 박철순은 유니폼을 입었던 12시즌 동안 단 한 번도 10승 이상을 올리지 못했다. 허리부상의 재발과 아킬레스건 부상 등으로 뼈를 깎는 재활을 거듭했다. 선수생활 중 이혼 등 개인사도 굴곡이 심했다. 그러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마운드에 다시 일어서는 그에게 팬들은 ‘불사조’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여러모로 굴곡이 심한 선수생활을 한 셈인데요.(이렇게 묻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솔직히 다시 돌아보는 게 고통스러워요. 의사한테 재기불능 판정을 받은 게 몇 번이고 수술만 몇 번이에요. 팬들의 뇌리에 잊힐만하면 등판하고 또 쓰러지고… 다시 선수로 돌아가 그런 과정을 거치라면 못할 것 같아요. 다시 등판해 재기 전에 이겼을 때 오히려 허무했어요. 겨우 팬들의 환호, 이거 하나 보고 했나, 이런 생각이 듭디다. 아, 좀 밝은 얘기를 합시다. 눈물이 나려고 하네.”

―은퇴 후 코치생활을 1년 정도밖에 못 했는데, 팬들은 ‘지도자 박철순’을 보고 싶어했잖아요.

“유별나게 야구를 해서인지, 선수 때부터 은퇴하면 유니폼을 안 입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죠. 유니폼을 벗고 사업을 해도 늘 야구생각뿐이고 마음 한구석에 야구에 대한 응어리가 있었죠.”

요즘 후배선수들한테, 좋은 얘기 말고 쓴소리를 해달라고 했더니 짧고 의미 있게 말했다.

“글쎄, 겉멋이 너무 들었다고 할까요. 팬들은 선수들에게 스킨 향내보다 땀 냄새를 원합니다. 프로선수의 자세도 그래야죠.”

―공백이 길었지만, 지금이라도 프로구단에서 부른다면.

“공백은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만약 여러 구단에서 제의가 온다면, 저야 당연히 두산으로 가야죠. 잠실에 백넘버 21번이 영구결번돼 있는데. 물론 김경문 감독 밑으로.”

그는 야구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더 구체적으로, 최근엔 스포츠매너지먼트 회사인 TMI와 계약을 하고 국내 야구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뭐든 기회가 오면 야구를 위해 일을 하고 싶어요. 팬들이 지어준 별명이 ‘불사조’인데 죽으면 안 되죠. 날아야죠. 아직은 생각을 정리 중이지만, 후진양성이나, 후배들의 해외진출을 돕거나, 유소년 선수 장학사업 등 여러 아이템을 고민하고 있어요.”

―끝으로, 대장암을 앓았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건강은 괜찮나요.

“그 소문 때문에 제약회사 CF가 계약단계에서 틀어지기도 했어요. 건강검진에서 대장용종이 나와 간단히 내시경으로 조치한 게 전부예요. 저 박철순, 아주 건강합니다.”

인터뷰 = 엄주엽 체육부 부장대우 ejyeob@munhwa.com
e-mail 엄주엽 기자 / 문화부 / 부장 엄주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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