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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경일 기자의 길에서 만난 세상 게재 일자 : 2010년 10월 20일(水)
오자·비문 투성이 베틀재 안내문 ‘읽기도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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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에는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건물인 동헌과 그곳으로 드나드는 대문인 ‘온주아문(溫州衙門)’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이야 한쪽으로 물러선 자리가 옹색하지만, 아문의 자태는 여전히 위풍당당합니다. 지난 봄 무렵이었던가요. 온주아문에 들렀다가 안내판에서 터무니없는 오자(誤字)를 발견했습니다. 새로 정비된 안내판에는 온주아문과 동헌이 ‘유명문화재 제16호’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유명’한 문화재라고? 물론 ‘유형문화재’를 ‘유명문화재’로 잘못 쓴 것이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오자야 뭐 그럴 수 있다손치더라도, 전국의 관광지에 세워진 안내판이나 기념비에는 좀 심하다 싶은 오·탈자도 있습니다. 도무지 문법에 맞지 않는, 다 읽고 나서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비문(非文)’들도 적잖습니다.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맞지 않는 것은 보통이고, 주어가 두세 개 있거나 목적어가 없는 글들도 심심찮게 발견됩니다. 도대체 뜻을 헤아릴 수 없는 글을 읽다 보면 안내판을 세운 이의 무신경에 혀를 차게 됩니다.

그런 안내판들에 점수를 매겨 ‘최악의 작품’에 시상을 한다면 ‘대상’은 아마도 충북 단양 영춘면 소재지에서 의풍리로 넘어가는 395번 지방도로 ‘베틀재’에 세워진 기념비 안내판이 받아야 할 겁니다. 충북과 경북, 강원 등의 삼도를 잇는 고갯길이었던 베틀재는 우리나라 3대 염로(鹽路·소금길)이기도 한 곳입니다. 소백산 줄기와 태백산의 줄기가 만나는 길. 한때 봇짐 장수들은 구절양장의 이 길을 따라 소금짐을 지고 오갔지요.

지난해 여름 베틀재가 말끔하게 다듬어지면서 큼지막한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기념비 기단에는 오석(烏石)을 박아 베틀재의 유래를 담은 글을 새겨놓았습니다. 겉모습만 보더라도 제법 돈이 들었을 법한 품새입니다.

그런데 안내문을 거듭 읽어도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비틀비틀 시작한 문장은 위태롭게 이어지다가 급기야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암호문’이 되고 맙니다. 그 글의 일부를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6·25전쟁 때에는 인민군 사단과 연대가 점령하였기 국군의 인민군 토벌작전을 대대적으로 감행한 조국의 시련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으로 해방 후 미 480호 법의 밀가루 공사가 소백산의 벌채용 산판 길을 G.M.C.가 처음 열었던 사연이 많은 고개이기도 하다.”

이 고갯길이 사연이 많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만 나머지는 요령부득입니다. ‘점령하였기’ 다음에는 ‘때문에’란 어절이 빠진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해방 후 미 480호 법의 밀가루 공사가…’로 시작하는 부분은 도무지 이해불가입니다. 아마도 미국 공법(公法·U.S.Public Law) 480호에 의해 구호물자로 제공됐던 밀가루와 관련된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일까요.

새로운 모습의 베틀재는 반듯반듯 정비도 잘 됐을 뿐더러 포장도 매끄럽습니다. 하지만 수백년을 이어온 옛길의 의미가 어찌 측량과 토목 솜씨로만 가늠되는 것이겠습니까. 해독 불가능한 난삽한 문장으로 채워진 이 안내판을 보면서 도대체 이 길의 어떤 의미와 무슨 역사를 떠올리라는 것일까요.

parking@munhwa.com
e-mail 박경일 기자 / 문화부 / 부장 박경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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