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더블클릭!>창문 빠끔히 열고 골라 태워… 항의하면 “무슨 문제?” 배짱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29일 서울 종로구 종로2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승차거부를 당하고 있다. 곽성호기자 tray92@munhwa.com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심야시간대 택시들의 승차거부가 여전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심야택시 기사들은 음주 승객들은 물론이고 추가요금지불(시외 할증)이 없어진 경기 일산, 분당, 부천 등 수도권 지역의 원거리 시민들에게도 승차를 거부하고 있었다. 이들 심야택시 기사들의 상당수는 승객들에게 “시외할증 요금이 폐지된 이후 택시기사들에게 승차거부도 허용됐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었다.

지난 10월28일 밤 12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역 씨티극장 앞. 대로변 가로등에 ‘심야택시 승차거부 단속구간’이라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구미에 맞는 손님을 태우려는 심야 택시의 횡포는 그대로였다. 이날 ‘빈차’임을 알리는 붉은 등을 켠 5~6대의 심야택시들은 ‘명일동’, ‘건대입구’ 등 애타게 목적지를 외치는 시민들 사이로 조수석 창문을 20㎝ 정도 내려 간단히 목적지만 물어보고는 가속 페달을 밟아댔다. 30분 동안 택시를 잡으려다 지친 한 시민은 무작정 택시 뒷문을 열고 “기사님, 명일동까지 좀 가주세요”라고 부탁에 가까운 말을 했지만 “그쪽으로 안 가요”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들은 뒤 다시 내렸다.

택시기사에게 계속 승차거부를 당한 회사원 강성운(33)씨는 “보시다시피 강남역은 지하철이 끊기는 자정 무렵이 되면 택시잡기가 전쟁을 방불케한다”며 “어렵게 택시를 타게 되면 손님이 오히려 고맙다는 말까지 할 정도로 승차거부가 심하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29일 오전 1시쯤 서울 종로 일대는 택시 전용 승차장이 있는 먹자 골목 입구에서 종각역 방향으로 100m 앞까지 택시를 잡으려는 시민들로 한바탕 승차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 안까지 들어온 손님들에게 택시기사들은 택시의 앞 창문을 살짝 열고는 손님의 목적지만 간단히 묻고는 다른 손님을 향해 천천히 택시를 이동시키며 승객 고르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30분째 택시를 잡기 위해 대로변을 뛰어다니던 회사원 김승용(38)씨는 길게 줄서 있는 빈 택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집이 일산인데 택시들이 승차를 거부하는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며 “시에서 단속을 한다는데 조금도 나아지는 게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몰려드는 택시 손님들을 뿌리치고 있던 택시기사 전모(56)씨는 “(내가 가려는) 목적지와 맞지 않아 손님을 가려가며 태우는 것인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심야 시간대는 신촌에서 강남 등 목적지에서 다시 손님을 태울 수 있어야 마진이 남는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 사이에 승차 거부를 당했다는 민원이 집중되고 있다. 승차거부 민원이 많은 지역은 종각역, 을지로입구, 홍대입구, 용산역 등 10곳이다. 최근 택시기사들이 승차를 거부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택시 시외 할증 제도의 폐지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9년 6월 서울시 등에서 택시요금을 1900원에서 2400원으로 인상하면서 다른 시·도를 지날 때 내는 택시 시외할증 요금제도를 없앴다.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도의 경계를 벗어날 때 택시요금의 20%를 더 부과하는 시외 할증 제도를 서울시에서 없앤 것인데, 이 제도가 사라지는 바람에 심야택시 기사들은 아예 시외 택시 운행을 회피하고 있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택시 승차거부는 지난 5년 사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05년 택시 승차 거부 신고 건수가 2672건이었던 데 반해 지난 2009년에는 1만3335건으로 5배가량 증가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2월1일부터 폐쇄회로(CC)TV까지 동원해 승차거부 차량을 색출하고 있는가 하면 4월부터 택시 승차거부 단속을 전담할 신규인력 67명을 채용하는 등 집중단속을 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4인1조로 구성된 단속반을 편성해 평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심야 시간대에 승차거부가 빈번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단속반은 현장을 지켜보다가 승차거부로 의심되면 해당 택시의 승객과 기사로부터 위반사실을 확인하게 되며, 증거물이 인정될 경우 택시 운전자에게 과태료 20만원을 부과한다. 또 서울시는 승차거부를 줄이기 위해 7만2500여대의 전체 택시 중 절반가량인 3만6510대를 콜택시로 가입시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택시 수요가 몰리는 심야 시간대에는 무용지물이다. 10년 넘게 개인 택시를 운행하고 있다는 박모(60)씨는 “개인택시의 경우, 2년간 6차례 승차거부를 하면 면허가 취소된다”며 “하지만 주변에서 심야시간대 승차 거부로 운행중지 당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한 관계자는 “승차거부 극심 지역인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단속을 하고 있지만 아직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지는 못했다”며 “신고 포상금 제도 등 다양한 정책과 단속 업무를 통해 승차거부 사례를 줄여나가겠다”고 말했다.

현일훈기자 o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