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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0년 11월 12일(金)
바빌로프가 찾은 ‘씨앗’은 인류의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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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오는가 / 게리 폴 나브한 지음, 강경이 옮김/아카이브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니콜라이 바빌로프라는 러시아 식물육종학자가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수천, 수만의 씨앗을 수집해 종자은행에 보관한 바빌로프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평생을 바친 코스모폴리탄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사후에 업적을 널리 인정받아 세계 농업사에 이름을 새긴 그는 기후변화로 신음하고 있는 오늘날 인류사회에도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188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바빌로프는 20세기 초 기근을 막기 위한 열쇠를 찾기 위해 115차례에 걸쳐 5대륙 탐사에 나섰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만난 나무들, 풀, 씨앗들에서 인류의 희망을 발견했다. 현지 농부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영어·프랑스어·독일어·라틴어는 물론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라어와 페르시아어에 이르기까지 무려 15개 언어를 습득한 그는 탐사 기간 내내 땅과 씨앗의 진정한 주인인 농부들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다. 소련에 돌아와 바빌로프 연구소 소장을 맡은 후에도 그는 실험실에 안주하지 않고 경작지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1930년대에 대기근이 닥쳐 소련 인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집단농장화정책으로 농민들의 이반이 극에 달하자 스탈린은 바빌로프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다. 소련 인민의 고통을 외면한 채 세계 유람이나 다닌 부르주아 반동, 소련의 농업을 고의로 망쳐먹은 간첩혐의를 받고 투옥된 바빌로프는 급기야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탄원으로 간신히 죽음을 면한 그는 수용소에 갇혀 지내다가 굶주림의 후유증으로 1943년 생을 마감했다.

책은, 생태학자이자 민속식물학자인 저자가 이 같은 바빌로프의 여정을 따라가며 씨앗과 농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행기다. 교통도 치안도 변변치 않았던 20세기 초에 세계를 돌아다닌 바빌로프의 여정은 위험하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 주로 노새를 타고 다녔던 바빌로프는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을 하기도 하고, 계곡을 건너다 목숨을 잃을 뻔도 하고, 첩자로 오인받아 여러 차례 감금을 당하기도 하고, 폭도들에게 붙잡혔다 도망치기도 하는 등 온갖 곡절을 겪으며 씨앗을 찾아다녔다.

탐사기간 내내 농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바빌로프는 세계의 논과 밭에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작물과 지식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작물 다양성의 기원지에 관심이 많았던 바빌로프는 수천 년간 인간과 자연이 상호작용하며 만든 다양한 작물과 그 원형을 찾아 온갖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다. 아울러 저자는 바빌로프의 발길이 닿았던 곳의 농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획일적 근대화와 도시화, 농업의 산업화, 자유무역정책, 기후변화 등이 농업생물다양성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를 들려준다. 또한 세계 곳곳의 농부, 학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변화하는 농업환경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도 전해준다.

작물다양성의 기원을 찾아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고원에서 에티오피아와 아메리카를 거쳐 아마존 열대우림까지 세계 곳곳을 누빈 바빌로프의 이야기는 자연과 인간이 남긴 위대한 유산인 씨앗을 찾아가는 여로의 험난함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바빌로프의 발자취를 따라간 저자의 여정이 겹쳐지면서 책은 오늘날 생물 다양성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처했는지, 나아가 우리의 밥상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를 잘 보여준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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