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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랜만입니다 게재 일자 : 2010년 12월 03일(金)
“檢, ‘권력’넘어 ‘여론’서도 독립… 국익 우선 수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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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이 지난 11월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대검 중수부장 시절 수사 브리핑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다 환하게 웃고 있다. 김호웅기자
안강민 前 서울지검장

안강민(69) 전 서울지검장은 검찰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공안과 특수를 오가며 그가 관여한 사건을 꼽다 보면 우리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것 같다. 명성 사건(1983년), 김현희 KAL기 폭파 사건(1987), 서경원 전 의원 밀입북 사건(1988), 문익환 목사 밀입북 사건(1989), 서석재 전 의원의 동해 보궐 선거 후보 매수 사건(1989), 12·12 및 5·18 내란 사건(1995), 린다 김으로 유명한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 수뢰 사건(1995),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1995). 역사의 변곡점이 된 대형 사건들을 수사한 것에 대해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검찰 의 꽃’인 서울지검장(서울중앙지검 전신) 자리에 오른 것은 수사에 대한 평가를 말해 준다. 30년 검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잠시 무대 뒤로 물러났던 그는 17·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과 심사위원장으로,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국민검증위원장으로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가 기억하는 수사와 공천, 대선 후보 검증의 막후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한편의 전설적 인터뷰가
가능할 법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검사 시절부터 입이 무겁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래서 지난 11월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바로 앞에 있는 그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을 때 기대와 부담감이 교차해 마음이 다소 복잡했다. 반갑게 맞아 주는 안 전 검사장과 마주 앉으며
옛날이야기 하듯 편안한 분위기로 승부를 걸기로 했다.



인터뷰 = 박민 전국부장

-검찰을 떠난 지 꽤 오래되신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십니까.

“1999년 대검 형사부장을 끝으로 옷을 벗었으니까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요즘은 사무실에서 책을 읽거나 지인들과 교류하며 지냅니다.”

-검사장님처럼 공안과 특수를 두루 거친 검사는 찾기 힘든 것 같습니다.

“거의 유일할 겁니다. 평검사 땐 특수·공안부 검사를 했고 이후 대검 공안사무과장, 중수부 3·4과장, 서울지검 특수1부장, 공안1부장, 대검 공안부장, 대검 중수부장을 거쳤으니까.”

-전직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건을 많이 수사했는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 및 5·18 사건과 비자금 사건으로 수사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이지만 서경원 전 의원 밀입북 사건으로 조사했습니다. 서석재 전 의원의 동해 보궐 선거 후보 매수 사건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수사했으니까 간접적으로 조사한 셈입니다.”

-서경원 전 의원 밀입북 사건과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소한 ‘악연’ 때문에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서울지검장에서 대검 형사부장으로 강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입니까.

“그거 말고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사실 그가 자신의 입으로 ‘강등’의 이유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벌써 10여년이 지나서일까. 답변을 하는 그의 표정과 음성은 무덤덤했다. 그래도 내친김에 보충 질문을 던졌다.

-대검 공안부장과 중수부장, 서울지검장을 거쳤으면 차기 검찰총장 후보인데 내부 논란이 없었습니까.

“좌천된 뒤 사표를 내는 문제를 놓고 상당히 고민했습니다. 어떤 후배 검사는 제 사무실에 와서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또 다른 후배 검사는 자기가 쓴 ‘사퇴의 변’을 가지고 와서 그걸 발표하고 사퇴하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사퇴의 변’을 보니 대통령을 공격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걸 발표하고 그만두면 일시적으로 후련할 수 있겠지만 현직 대통령을 비판하는 게 결과적으로 나라에 도움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사양했습니다. 대검 형사부장으로 가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사법시험 동기인 박순용씨가 검찰총장에 임용되는 것을 보고 ‘이때다’ 싶어 그만뒀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로 사상 처음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는데 심경이 어땠습니까.

“전직 대통령이라고 특별한 느낌은 없었습니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여론과 권력으로부터 수사의 독립성을 지켰다는 점은 자부하고 싶습니다. 수사 브리핑을 매일 하루 두 번씩 한 달여 동안 했는데 저는 단 한 번도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만큼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은 확인해 주되 말할 수 없는 것은 수사 기밀이라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기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결국 국민을 속이는 것이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신뢰가 형성되면서 ‘중수부장 일문일답’이 인기 있는 기사 아이템이 됐고 수사가 여론에 휘둘리지 않게 됐습니다.”

-권력으로부터 수사의 독립성을 지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저는 한 번도 수사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한 적이 없습니다. 수사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것을 전부 차단시켰습니다. 과거 이철희·장영자 사건 수사 때 청와대에서 검찰 수사를 많이 챙겼습니다. 당시 민정수석이 이학봉씨였는데 청와대에 수시로 보고를 하니 수사 기밀이 다 새 나갔습니다. 그래선 수사에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대형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밝히지 못한 일화도 많을 텐데.

“이걸 과연 이야기해도 될는지.”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그가 침묵한다면 이번 인터뷰는 클라이맥스가 없는 드라마로 끝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추임새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제 15년이 지났는데 역사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말씀을 해 주십시요.

“당시 언론들은 ‘노 전 대통령에게 돈을 준 대기업 오너는 왜 구속시키지 않느냐’는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먼 훗날 역사가 제 결정을 어떻게 심판할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론이 들끓자 안우만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통해 대기업 오너 두 사람을 지목해 구속시키라고 지시했습니다. A그룹의 B회장과 C그룹의 D회장이었습니다.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았으니까 일단 구속에 대비해 두 사람을 중수부 조사실에 데려온 뒤 하루 종일 혼자 고민했습니다. 두 사람을 구속하면 여론의 비판은 피해 갈 수 있겠지만 과연 국가에 득이 될 것이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A그룹의 경우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이 아니라 B회장의 개인기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C그룹 역시 D회장의 개인 인맥으로 수교가 안 된 중동의 한 국가에서 대수로 공사를 하고 있었고 2차 공사도 수주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구속해선 안 된다고 판단, 검찰총장을 만났습니다. 총장은 제 설명을 듣고 동의했습니다. 안 장관은 댁으로 찾아가 만났습니다. ‘장관님 지시를 받았지만 제 생각은 이렇다’고 설명을 했더니 안 장관은 저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옆방엘 갔습니다. 청와대와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30분쯤 있다 돌아와 ‘두 사람 풀어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검찰청으로 돌아와 두 사람에게 ‘이런 취지에서 구속을 안 하고 석방해 주니까 나라를 위해 좋은 일 좀 하쇼’ 그러고 내보내 줬습니다.”

심정적으로 공감이 갔지만 혹시 막후의 또 다른 장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 굳이 문제 제기를 했다.

-검사라면 비리를 파헤치고 판단은 법원이나 역사의 심판에 맡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검사도 국가 기관입니다. 조그만 사건은 괜찮을 수 있지만 대형 사건을 할 때는 항상 국가에 득이 될 것인지 해가 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복이 있어 초임 검사 시절에 그걸 느끼게 됐습니다. 1974년에 부산지검 특수부에 있었는데 제 선배였던 J검사가 부산에서 큰 철강회사를 수사해 사장을 구속시켰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검사는 공무원 아니냐. 나라 생각은 안 하냐’는 질책이었습니다. 당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펴고 있었고 해당 철강회사는 수출 실적이 몇 등 안에 들어가는 회사였습니다. 불구속 수사를 해 경영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라는 거였습니다. 그다음부터 늘 후배 검사들에게 ‘수사는 치밀하게 하되, 결정은 대범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변호사 개업을 하신 뒤 17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에 이어 17대 대선 국민검증위원장을 맡으셨는데.

“고민 많이 했습니다. 욕을 많이 먹을 줄 알았지만 결국 맡게 된 것은 좌파 정권 10년 동안 나라가 너무 혼란스러워져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권 교체를 하려면 한나라당 후보가 경쟁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 치열한 경쟁으로 상당한 고생을 하신 것으로 아는데 18대 총선에서 다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으셨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10년 만에 정권을 찾았는데 여소야대가 되면 대통령이 일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수락을 했습니다.”

-공천 결과에 반발, 의원들이 탈당하기도 했는데.

“당시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심사위를 운영했습니다. 첫째 당을 깨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친이·친박 싸움을 많이 중재했습니다. 사실 친박 측은 후보 자체가 적었습니다. 어느 도의 경우 친박 국회의원이 한 사람밖에 없는 곳도 있었는데 그것마저 친이가 뺏으려 하기에 막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많은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계파 이해를 조정하다 나중에는 국민 여론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여론이 곧 민심이니까요.”

-18대 공천심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박희태 국회의장을 포함한 현역 중진의원의 대거 탈락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란 말을 생각했습니다. 사실 한나라당의 경우 영남에서 현역 의원을 탈락시키고 다른 후보를 내도 당선이 됩니다. 그래서 영남권에서 현역 의원을 대거 탈락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언론에서 ‘13일의 대학살’, ‘개혁 공천’이란 평가가 나오고 그 결과 수도권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뒀습니다. 서울의 경우 48석 중 40석을, 인천에서는 12석 중 10석, 경기도에서는 51석 중 34석을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정치권에서는 18대 공천을 둘러싸고 여전히 뒷말이 무성하지만 정치권 입문 유혹을 뿌리친 그의 결정은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준다. 영원한 검사에게 어울리는 질문으로 3시간 가까운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검사장님을 존경하는 후배 검사들이 많은데 한 말씀 해 주시죠.

“오늘의 검찰 결정이 먼 훗날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자세로 사건을 처리했으면 합니다. 언제나 정의감에 입각해 당당하게 일하고 외압은 물론 여론도 초월해야 합니다. 나아가 검찰의 결정은 사회적 평균인으로서의 상식에 기초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독선에 그치고 맙니다.”

min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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