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김현철 수사땐 죽을 각오… 권력 외압에 정말 죽을 고생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사무실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 사건 수사 뒷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김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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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17일은 김영삼 정부에 정치적 사형선고가 내려진 날이었다. 레임덕 현상이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비리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필연 같지만 당시로서는 ‘소통령’으로까지 불린 현철씨의 사법처리 수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특히 김현철사건을 촉발시킨 한보사건 부실수사로 대검 중수부장이 경질된 상황이어서 검찰로서도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현철씨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를 주도한 사람이 바로 특수통인 심재륜(67) 당시 중수부장이었다. 그는 현철씨의 변칙 정치자금 수수에 대해 사법사상 최초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하는 등 예상을 초월하는 초강수를 구사했다.

사실 아담한 체격에 얼굴엔 장난끼까지 감도는 심 전고검장에게서 ‘사정의 칼’을 휘두르는 검사의 이미지를 발견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권력비리를 단죄하는 특수통일 뿐 아니라 조직폭력 및 마약사건 수사에서도 일가를 이룬 강력통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태촌의 서방파,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 등 우리나라 3대 패밀리가 그의 칼 아래 무릎을 꿇었다.


인터뷰 = 박민 전국부장

이런 이력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심통’이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감상 마뜩잖아 할 것도 같은데 그는 오히려 마음에 든다고 했다. 범죄자들에게는 ‘가장 심통 사나운 사람’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란 뜻이란다. 지난 14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앞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점심 반주의 취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검사로 재직할 때 퇴근 무렵이면 검찰청 인근 허름한 주점에서 공복에 폭탄주 5~6잔을 순식간에 돌린 뒤 표표히 사라지던, 그래서 평생 2차 술자리를 거의 간 적이 없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도 가끔 폭탄주 하십니까.

“하루에 5잔씩 1주일에 30잔쯤 합니다.” 농담조였지만 절반은 진실일 거라고 생각했다. 기자가 대검찰청을 출입하던 1993년 그는 대검 강력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당시 최영광 검찰국장과 함께 검찰의 폭탄주 대표주자로 꼽혔다.

―여전하시네요. 그때는 검찰이 술도 많이 먹었지만 수사도 잘했던 것 같은데. 당시 서울지검 특수부나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하면 피의자가 대부분 구속되지 않았나요.

“그땐 확실하지 않으면 아예 수사를 안했으니까….” 무슨 뜻일까. 그의 평소 성격을 감안하면 검찰을 두둔하기 위한 의미는 아닐 것 같은데.

―요즘은 대검 중수부에 소환돼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거나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시는 ‘소환=구속’이었죠. 그냥 한 게 아니라 깊이 있는 수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하지 않은데도 일단 소환했다 돌려보내고. 수사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수사에 깊이가 없어서 그런지. 두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죠. 사실 정권이 바뀌면서 순환인사가 이뤄져 수사 능력이나 자질이 저하된 측면이 있습니다. ”

―검사로 활동하실 때는 권력의 외압 등도 수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그때는 (정치적 외압이)많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근 어떤 분은 ‘검찰을 견제하려면 인사권으로 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결국 말 안들으면 인사권으로 혼내겠다는 것 아닙니까. ”

―현직 대통령 아들을 구속한 김현철사건 수사 당시에 청와대의 외압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한참을 웃더니) 너무 심했죠. 수사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총장과 좋게 말하면 대화를 했는데 정말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하루 일과가 그렇게 시작됐죠.”

―외부로부터 직접 압력을 받은 적은 없습니까.

“제가 너무 세게 나가니까 직접 전화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죽을 각오까지 했거든요. 그런데 주변에 압력이 가해진 것 같습니다.‘김현철 구속은 절대 안된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쪽지가 수사관계자 방에서 나와 모 방송이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식이었죠.”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오히려 김현철씨 구속에 반대하는 검찰총장에게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해서라도 구속시키라고 수차례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느쪽이 진실일까.

―당시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지 않았습니까.

“김현철씨는 지금까지도 자신은 잘못이 없는데 표적수사를 당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김현철씨는 조세포탈외 다른 혐의도 많았습니다. 김현철씨가 받은 66억원 중에 반은 이권청탁과 관련해 받았고 반은 정치자금으로 받았다는데 신고를 안한 겁니다. 그런데 당시 외국 판례를 연구해보니까 뇌물을 받고 신고를 하지 않아도 조세포탈 혐의가 적용되더라고요, 그래서 이권청탁과 관련 32억여원을 받는 부분에 대해 특가법상 알선수재를 적용했고 동시에 66억원 전체에 대해 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한 것뿐입니다.”

―장영자사건, 율산사건 등 대형 비리사건 외에 조직폭력과 마약사건도 많이 하신 것으로 압니다.

“3대 패밀리 사건을 포함, 많이 했습니다. 원래 강력사건은 경찰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조폭들과)너무 유착돼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강력부장 맡았을 때 일을 저지른 거죠. 사실 그때 조직폭력과 마약을 강력하게 단속해 오늘날 우리나라가 조직폭력과 마약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워진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조폭수사를 하다보면 위험한 순간도 많지 않습니까. 김태촌을 체포할 때는 권총까지 사용했다고 하던데.

“김태촌의 경우 정말 막강했습니다. 검찰에도 정보원이 침투해 있을 정도고 경호원을 수십 명씩 데리고 다녔습니다. 김태촌을 잡으려면 경호원보다 3배는 많은 경찰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검찰 내부에 있는 정보원을 통해 역정보를 흘렸습니다. ‘김태촌은 요주의 인물도 아니고 잡을 생각도 없다’는 식이었죠. 그랬더니 며칠 지나 김태촌이 경호원 수를 줄였습니다. 당시 우리는 김태촌의 동선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는데, 매일 오전 10시쯤 청담동 제일사우나에 들렀습니다. 제일사우나에는 부하들이 우글거렸죠. 그래서 제일사우나 입구에 병력을 배치해 부하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조승식 검사가 사우나에서 나와 차를 타는 김태촌 옆구리에 총을 들이댔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유혈사태가 났을 겁니다. ”

―강력사건을 수사한 인연으로 영화 ‘공공의 적’에 조언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강우석 감독이 저를 좋아합니다. ‘공공의 적’ 1편에서는 경찰이 주인공이고 검찰은 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조언을 하고 나서는 2편의 주인공이 검사로 변했죠.” 심 변호사가 ‘공공의 적’ 2편에 등장하는 골통검사와 강력부장의 모델이라는 설도 있다.

―별건수사나 저인망식 수사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수사 10결’을 주장하신 적이 있는데 어떤 내용입니까.

“별건 수사는 정도가 아닙니다. 목표한 수사가 안됐다고 다른 것을 걸고 들어가면 안됩니다. 수사는 어려운 것이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10결은 ‘칼을 찌르되 비틀지 마라. 피의자의 굴복 대신 승복을 받아내라, 끈질긴 수사도 좋지만 외통수는 금물이다. 상사를 결코 적으로 만들지 마라. 수사하다 곁가지 치지 마라, 독이 든 범죄정보는 피하라, 실패하는 수사는 하지 마라, 수사는 종합예술이다 절차탁마하라, 언론과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하라, 칼엔 눈이 없다 잘못 쓰면 자신도 다친다’는 것입니다.”

―최근 사퇴한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은 수제자 중 한 사람 아닙니까.

“서울지검 강력부장할 때 강력부 검사를 하는 등 저와 여러가지 인연이 있습니다. 남 검사장이 그만두게 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위에서 왜 막아주지 못했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고 수사 과정에서 부하 검사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고 부하 검사들이 무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 사람에게 때가 된 겁니다. 어쩔 수 없는 환경이 되면 그만둬야지 어떡합니까.”

심 변호사를 만난 이상 피해가기 힘든 대목이 있다. 그에게 ‘항명파동1호’라는 수식어를 안겨준 사건이다. 심 변호사는 대구고검장으로 재직 중 대전법조비리사건과 관련, ‘향응을 받았으니 조사를 받으라’는 검찰총장의 통보를 받자 이를 거부하고 검찰 수뇌부를 강력 비판하며 퇴진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면직 처분을 받은 그는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내 승소함으로써 2001년 검찰에 복귀했다.

―항명사건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겁니까.

“제가 조직폭력 수사를 많이 하다 보니까 당시 권력 핵심 인사들이 조폭과 얽혀 있는 내용을 많이 알고 있었던 것이 먼 원인 중 하나라고 봅니다. 가까운 원인으로는 당시 김태정 장관 부인의 옷로비사건으로 검찰과 권력이 어려움에 처했는데 그 사건을 덮을 대형 사건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요즘 고위직 검찰 출신 변호사의 고액연봉 논란 등이 이어지고 있는데 변호사 개업하셔서 돈 좀 버셨습니까.

“처음 면직 처분되고 개업했을 때는 항명파동으로 검찰에 찍혀 있어 전관예우가 아니라 전관차별을 받았죠. 저 사람한테 맡기면 될 사건도 안된다는 식이었죠. 기업 고문자리도 안주고 심지어 사외이사도 안주더라고요.”

―2002년 개업했을 때는 좀 괜찮아졌습니까.

“내가 권력에 맞서 항명도 하고 김현철씨도 구속시키고 해서 그런지 인권변호사로 알고 돈 안되는 사건만 들어오거나 돈을 아예 안주기도 하더라고요. 요새는 또 늙고 아는 사람 없다고 찾아오지도 않고. 그래도 먹고 살 만큼은 벌었습니다.”

―평소 검찰은 절대 정치에 개입해선 안된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는데 검찰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검찰은 국가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권력이 검찰을 이용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검찰에는 엘리트들이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저항도 하니까 막 대하기 힘듭니다. 단적으로 노무현 정부는 사실 검찰권력을 포기한 거라고 봅니다. 자기들은 ‘검찰중립화를 위해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처음에는 해보려고 했는데 잘 통하지 않았죠. 저는 양성화된 권력은 세도 된다고 봅니다. 양지 권력은 비판하는 곳도 많고 견제를 받습니다. 그런데 음지에서 활동하는 권력, 예를 들어 국정원 같은 권력은 안 보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세지면 안됩니다.”

―정치권에서 영입하려는 시도가 몇차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사실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포기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콜을 받았는데 이데올로기가 맞지 않아 안갔습니다. 이회창 총재는 도와주려고 했고 실제로 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이 총재와 박근혜 전 대표, 서청원 전 대표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제가 이 총재에게 ‘내가 왜 지지하는 줄 아느냐. (당신이) 위험하니까 그렇다’고 말했더니 이 총재가 저를 미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정치권에 가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가서 근본을 잃어선 안된다고 봅니다.” min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