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광장>이공계가 대우받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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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서울대 교수·전자공학

최근 들어 국민을 힘들게 할 만한 국내 사건들이 잠잠한가 했더니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발생한 ‘재스민혁명’과 함께 찾아온 유가 급등이 어깨를 짓누른 지도 벌써 한 달여째 계속되고 있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는 속설을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온 국민을 충격과 불안으로 몰아가니 정신차릴 겨를이 없다.

이처럼 연속되는 나라 밖의 사건이 국내 모든 사회 및 경제 활동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느끼는 순간 모두가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굵직한 국제 문제에 정신이 팔려 4·27 재·보선이나 동반성장을 위한 초과이익 공유제 같은 민감한 문제들은 일반 국민에게는 비교적 관심 밖이다. 그러나 서로 독립적일 것만 같은 여러 사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치적 사건이나 자연재해에 따른 일련의 사태도 결국은 경제 문제로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최종적으로는 물가에 따른 국민의 실질소득 증감에 따라 사회의 분위기가 밝았다 어두웠다 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 능력에 따라 대통령의 지지율이 달라지는 것이다. 정치 이론가들은 여러 가지 이념과 고상한 논리로 이상적인 정치를 갑론을박한다. 하지만 결국은 국민의 의식주가 만족스럽고 여가 시간의 재미를 잘 보장해주는 정치가 최선의 정치가 아니겠는가. 달리 말하면 다른 나라 국민보다 더 많은 재화를 창출하고 자국민에게 노력과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해 줄 수 있는 정치가 최선이란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노력과 능력에 맞게’가 아니라 모두가 균등하게 나눠 갖기를 주장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두 주장의 공통적인 전제는 재화의 창출에 있다. 과거에는 재화의 창출이 1차 산업에 의해 좌우됐으므로 땅의 크기와 천연자원의 보유에 크게 의존해 왔다. 그러나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재화의 창출을 위해 생산성이 뛰어나거나 남이 보유하지 못한 독특한 고유 기술의 보유 여부가 더욱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과 일본이다. 하지만 차별화된 기술의 보유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우수한 인력이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통해 목표의식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하고 나서야 비로소 한 사람의 경쟁력 있는 기술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때 가장 먼저 주어진 전제조건이 우수한 인력이 기술교육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로 대거 진학해 경제대국 일본을 만들었다. 기술 전문가에게 사회에서 최고의 보수와 신분 대우를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이공계 진학생들의 학업 능력이 급격히 낮아져 왔다는 사실과 오늘날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회사 경쟁력 약화나 자동차 리콜, 이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보여주는 상관관계는 시사하는 바가 작지않다. 기술 경쟁력이 부가가치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기술자 한 명의 완성도 부족에 따른 작은 실수가 초래하는 피해와 손실도 매우 중대한 것이다.

일본의 이공계 문제와 산업 경쟁력 후퇴의 상관관계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약 20년의 시차를 가지고 나타난 우수인력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산업 경쟁력에 미칠 악영향은 명확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확실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사실 재화 창출의 기여도를 보면 이공계 기술 인력의 역할이 그 어느 분야보다 크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렇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기여하는 기술 인력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받는 대우가 노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면 유능한 인재들이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르는 사이에 기피 분야가 돼 버린 이공계 전문 분야가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임을 안다면 이공계 인력에 대해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하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기술의 불모지 한국에서 어떻게 지금의 산업대국 토대를 닦았는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정부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