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이야기 하는 ‘상상속의 세계’

앤서니 브라운 나의 상상미술관 / 홍연미 옮김/웅진주니어

앤서니 브라운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책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영국 어린이 문화 계관 작가였다. 국내에도 그의 그림책 마니아들이 많다. 그림책을 자주 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익살스러운 느낌의 고릴라를 등장시키거나 세계 명화(名畵)를 패러디한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앤서니 브라운이 자신의 생애와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공개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편집자로부터 이 책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해 ‘잘난 척’을 하는 것 같아서 사양했다. 그러나 아들 조 브라운이 관심을 보이자, 아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전체 13장 중 1, 2장을 차지하는 유·청소년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2차대전 직후인 1946년에 태어난 한 영국인의 성장사를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예술가의 어린 시절 경험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깨닫게 한다. “어린이들이 내게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느냐고 물으면, 나는 너희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얻는다고 대답한다. 어린 아이였을 때 내게 일어난 일들에서, 나의 아이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에서, 영화에서, 그림이나 꿈에서.”

그는 우상이었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방황하기도 했으나,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성장했다. ‘돼지책’ ‘고릴라’ ‘우리 엄마’ ‘우리 형’ 등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족이 불안정해 보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전하는 것은, 가족이 그의 작품의 원천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해 들어갔던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엉뚱하게 인체 해부도를 그리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다. 맨체스터대 의대 학생들이 수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의사의 수술 과정을 재빠르게 스케치한 후 세밀하게 그려내는 작업이었다. 자신의 꿈이었던 예술적 그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 작업을 통해 그는 세밀화 기법을 엄청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예술가에겐 어떤 사소한 경험도 다 작품의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 책에서 자신의 그림들에 대해 큐레이터처럼 친절한 태도로 상세하게 설명한다. 예컨대, “왜 그렇게 고릴라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을까”라고 자문한 뒤 “고릴라가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인간의 다른 측면을, 세상의 초현실적인 측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예술가의 지향과 맞아떨어졌다는 뜻이다.

그의 그림 설명을 듣다보면, 한 장 한 장마다 숨은 의미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고릴라와 소녀가 식사하는 장면에서 캐릭터에 대한 접사 기법을 사용하고 식탁에 음식을 많이 차려놓고 밝은 색조를 부여함으로써 독자가 함께 참여하는 느낌을 갖게 한 것이 그 한 보기다.

‘모나리자’ ‘비너스의 탄생’ 등 세기의 명화들을 패러디한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에 대해 그는 “그림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사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습관과 함께 어린 아이같은 상상력을 강조한다. “이 책의 주된 의도는 모양 상상놀이(한 사람이 추상적인 형태를 하나 그리면 뒷사람이 다른 것으로 변형하는 것)를 향한 나의 기쁨과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는 미술의 힘에 대한 나의 열렬한 믿음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는 것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수많은 작품들을 일별할 수 있다는 것은, 컬러 대판 240쪽에 달하는 이 책의 덤이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