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강인한 버팀목이 되었던… 가슴 깊이 사무치는 이름‘어머니’

어머니 / 강상중 지음, 오근영 옮김 / 사계절

“세상의 아들들에게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어머니일 뿐이다. 아들에서 ‘남자’가 되고 ‘여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자신이 아버지가 된 후에도 아들들은 어머니가 ‘여자’였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어머니’라는 단어는 아들들의 마음에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東京)대 정교수가 된 강상중 교수가 6년 전 세상과 영원히 이별한 어머니의 삶을 돌아본 자전적 에세이다. 하지만 자식으로서 또 아들로서 ‘나의 어머니’에 대한 미치도록 사무치는 마음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 여성으로 태어나 교육도 받지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으로 건너와 온갖 차별과 수모 속에서도 전력을 다해 살았던 어머니의 삶을 통해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온 재일 한국인 1세들의 삶과 역사를 담아냈다.

어머니는 열여섯살 때 생면부지의 약혼자인 아버지를 찾아 도쿄로 간다. 태평양전쟁의 혼란 속에 큰아들을 잃기도 한 어머니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갈 희망이 요원해지자 구마모토(熊本)에 정착, 고물상을 차리고 혼신의 힘을 바쳐 가계를 꾸려나간다. 낯선 땅에서 우리 것을 고집하려던 재일 한국인들의 의지, 그리고 소중한 가족들의 안녕을 조상들에게라도 의탁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머니는 특히 제사에 무서울 정도로 집착했다. “어머니는 자신들을 에워싼 세상의 편견에 가득 찬 시선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머니에게는 ‘황천’과 같은 다른 세계의 의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상을 공경하는 제사가 어머니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다.”

청년기에 심한 정체성의 혼란에 빠졌던 강 교수에게 어머니의 기억은 자신의 정체성을 거듭 확인하는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니와의 기억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살아갈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중략)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는 것은 글을 아는 내가 글을 모르는 어머니가 위탁하신 유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중략) 어머니를 통해 나 역시 내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글을 모르는 어머니가 생전에 카세트테이프에 남긴 목소리 편지엔 자식에 대한 애잔한 사랑, ‘세상의 진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어머니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 정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없는 사람도 있다. 너보다 젊을 때 일본에 와서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보며 살다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중략)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훨씬 낫다. 하지만 돈 때문에 더러운 짓을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돈은 써야 한다. (중략) 너는 항상 먼 앞날의 일만 내다보는 것 같더라. 하지만 바로 코앞도 살펴야 한다. 그 두 가지를 잘하면 범에 날개를 단 것이나 매한가지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