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저잣거리 사이 聖俗 가르는 ‘자연 쉼터’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 / 전영우 지음/운주사

왜 하필 절집의 숲일까. 사찰의 턱밑까지 차를 타고 들어가 이름난 전각들을 잰걸음으로 둘러보곤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 나오는 게 전부인 행락객들에게는 절을 둘러싸고 있는 사찰림은 아예 관심 밖의 일이겠다.

주위를 좀더 세심히 둘러볼 줄 아는 이들도 사찰림을 그저 ‘잘 보전된 자연’ 정도로만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절집을 둘러싸고 있는 이른바 ‘사찰림’이 얼마나 다층적인 기능과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 기능과 의미를 이해하면 산림생물학자인 저자가 왜 하필 사찰림에 대해 이야기하는가도 눈치채게 된다.

절집 숲은 우선 사찰과 저잣거리 사이에 놓여 성속(聖俗)을 가르는 차폐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더불어 수행과 명상과 울력의 수도공간도 된다. 또 구황식량과 산나물, 버섯 등의 임산 부산물과 땔감을 제공하는 생산공간이기도 하다. 때로는 전란이나 화재 같은 유사시를 대비한 가람축조용 목재의 비축기지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여기다가 잘 보전된 절집 숲이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풍요를 안겨 주는 ‘자연 및 생태소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덧붙인다. 사찰림에 들어 명상과 사색을 하거나 자연과 소통하고 교감하면서 마음의 풍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절집 숲이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다는 특성 덕택에 가능하다. 이런 개방성 덕에 내가 풍광의 아름다움을 즐긴다고 해서 남에게 돌아갈 즐거움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것이 저자가 내세우는 ‘생태소비’의 개념이고, 독자들에게 이 같은 생태소비의 방법과 즐거움을 알려 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전국의 절집 숲은 모두 24곳. 책은 이들 절집을 3년여에 걸쳐 답사한 기록이다. 산림생물학자의 저작이지만 책에는 사찰 숲의 밀도나 수목의 구성비 따위의 통계나 숫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절집의 내력과 그 사찰을 품고 있는 숲에 들어 몸과 마음을 어떻게 고요하게 두어야 하는지, 욕망을 어떻게 내려놔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그 방법을 가르쳐 준다. 책에 나무에 대한 과학적인 이야기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만들어져 소개된다.

예컨대 충남 서산 개심사의 법당을 지탱하는 굽은 기둥을 두고, 곧은 소나무가 무분별하게 벌채되면서 형질 나쁜 굽은 소나무만 남아 그것이 기둥으로 쓰였음을 설명한다. 개심사의 굽은 기둥이 ‘미의식’보다는 ‘소박함’에서 탄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더불어 현대인들은 조형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휘어진 소나무를 더 선호하게 됐음을 말하면서 이른바 ‘예술적인 소나무관(觀)’이 소나무를 베어 쓸 재목으로 바라보는 ‘임업적 시각’과는 전혀 다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설악산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숲길을 임의대로 구간을 나눠 ‘미소의 숲길’ ‘사색의 숲길’ ‘재충전의 숲길’ 등으로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인천 강화의 전등사에서는 번잡함을 피해 숲을 순례할 수 있는 자신만의 코스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

불영사에서는 혜능선사 부도전 주변의 숲길이 백미이고,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은 여름보다 겨울이 숲의 향기가 더 좋다는 사실도 살짝 귀띔해 준다.

절집의 숲에 대한 기록이되 절집의 역사와 내력도 충실하다. 절집과 그 절집을 품은 숲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껴야 할지를 두루 담고 있으니 책이 있어야 할 자리는 책꽂이보다 여행가방 속인 듯도 하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