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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1년 05월 17일(火)
4분의 1짜리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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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범 / 부국장 겸 정치부장

비과학적이고 전근대적인 한국 정치에 비로소 과학이 등장한 것은 여론조사다. 지금은 각종 여론조사가 넘쳐 공해가 되다시피했지만 처음 정치권에 등장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그 신선감은 대단했다. 간단한 설문조사로 선거 결과를 미리 척척 알아 맞히던 마법상자였으며 그 예지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서구식 과학 기법을 도입해 ‘정치의 과학화’란 예찬까지 받았었다. 그후 여론조사는 각종 선거 결과를 예측하거나 주요 현안에 대한 시중여론을 파악하는 정치적 도구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정치 도구는 과학을 넘어 신앙으로까지 변질돼 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 더 독(Wag the dog)’현상을 낳고 있다. 정치가 과학을 왜곡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권력쟁취가 존재 목적인 정당은 각종 선거에 후보를 독자적으로 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불안한 나머지 후보를 결정할 때마다 여론조사 결과를 이용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 시중 민심을 미리 반영하고 그만큼 당선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의욕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일 뿐이다. 민심을 파악하는 하나의 지표이자 큰 흐름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것도 조사 시점에 국한된 찰나의 민심. 투표 시점이 멀어질수록 이런 예측성은 정확도가 더 떨어진다. 더더욱 가관인 것은 통계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오차범위내 수치까지 점수로 환산해 후보 선정에 반영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예비후보들 간에는 여론조사 반영 비율은 물론, 질문 내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인다. 물론 여기에는 여론조사 수치를 절대치라고 믿는 무지와 ‘어쩔수 없다’는 무기력함도 작용한다.

선거 여론조사는 선거 특성에 맞게 설문이 달라져야 그 정확도가 높아진다. 대통령 선거는 ‘누가 대통령이 돼야 우리 삶이 나아질까’라는 미래지향적인 설문이 중요하고, 국회의원 선거는 과거에 대한 심판을 우선시하는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을 감안해야 한다.

더 큰 맹점은 현행 여론조사 기법 그 자체에 있다. 여론조사때 사용하는 현행의 전화번호부 표본 추출방식은 전화번호부에 자기 번호를 등재하지 않는 사람(전체 유선전화 가입자 중 55 ~ 60%)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이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하면 연령, 학력, 직업 등 인구통계학적 가중치를 주어야 하며 통계 왜곡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전화의 급속한 보급으로 인한 환경 변화를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선 전화번호부에 등재되지 않은 번호까지 포함한 임의번호걸기(RDD·Random Digit Dialing)방식의 여론조사가 시도돼 표본추출 대상을 2배이상으로 늘려 오차를 좀더 줄여나가는 시도가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민심과 여론을 알아내는 데는 한계를 가진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최근 유선전화 없이 070으로 시작하는 인터넷전화를 가진 사람이 전체의 20.2%, 휴대전화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26.2% 정도라고 밝혔다. 결국 산술적으로 보면 현행 전화번호부 표본 추출방식으로 조사된 여론조사 결과는 대략 전체의 25%만을 조사대상으로 한 4분의 1짜리 여론조사인 셈이다. 최근 들어 각종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여론조사가 결과와 상이하게 나타나는 것도 이런 오류 때문이다. 이제 정치권은 스스로를 옥죄는 ‘엉터리 마법상자’를 부숴야 한다. 휴대전화, 인터넷전화 등 그동안 기존 통계에 잡히지 않았던 조사 대상도 포함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그게 정치발전이다. youngb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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