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은퇴=재앙” 노인들 폭주… ‘늙은한국’의 미래?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 전영수 지음 / 맛있는책

이 책은 부자나라 일본의 ‘빈민보고서’다. 지금 일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세밀하게 파고들었다. 경제지상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만나 ‘하류 인생’을 대거 생산해 낸 이웃나라의 사례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며, 우리에게 곧 다가올 미래다.

책은, 특히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시대에 노인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탄탄한 연금 등으로 안정된 노후를 보장해 왔던 일본 사회에서 급기야 은퇴 이후의 삶이 곤궁과 비참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파고들었다.

일본 사회는 고독에 빠졌다. 돈이 없어서다. 가난이 인간관계마저 휑하니 끊어버렸다. 외로움에 치를 떨다 고독하게 죽는 하류인생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3가구 중 1가구는 ‘나홀로 세대’로 이미 가난에 직면했다. 저소득·비정규직은 독신 탈출 자체가 힘들어졌다. 이들의 삶에 희망은 없다. 남자는 더 어렵다. 초식(草食)을 이어 고남(孤男)과 독남(毒男)이 넘쳐난다. 충격적인 사건사고도 반복되고 있다. 생계범죄부터 아사 사건까지 ‘부자나라-빈곤국민’의 부끄러운 현대병폐가 총망라 중이다. 도쿄(東京) 주택가의 흉가는 새로운 도시괴담으로 떠올랐다. ‘백골 사체’ 미스터리를 품은 빈집만 800만호다. 핏줄에 대한 기본예의조차 사라졌다. ‘무연사회(無緣社會)’의 개막이다.

특히 노인문제는 복합적이다. 은퇴 순간 사회·경제·육체·정신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급박하다. 그래서 충격이 크다. 상실감과 소외·자괴감에 아슬아슬한 삶을 사는 노인인구가 적지 않다. 그래도 알려진 건 덜하다. 접촉을 피해 스스로를 집에 가둔 경우가 많아서다. 집 밖에서 소통부재를 해소하자니 온갖 불협화음이 이들을 기다린다. 노소갈등을 유발하는 민폐부터 사회후생을 저해하는 범죄로까지 이어진다.

일본 고령사회의 상징 키워드는 ‘망주(妄走)’ 혹은 ‘폭주(暴走)’ 노인이다. 미쳐서 날뛴다고 괴물로 비유된다. 베이비부머의 대량퇴직이 기형화된 고령 괴물을 양산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 사회에서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이중적”이라며 “돈 많은 이들에겐 축복이되 빈털터리 빈곤세대에겐 재앙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