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PB상품 ‘같은 품질 싼 가격’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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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이마트 용산점의 햄 등 가공육 판매 매장.

이마트의 자사브랜드(PB·Private Brand) 제품인 ‘세이브스모크햄’과 동원F&B의 ‘와인갈릭햄’이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가격은 이마트 PB제품이 6150원으로 동원의 제품(6980원)보다 830원 더 쌌다. 그러나 성분명을 확인해 보니 세이브스모크햄은 햄의 주된 성분인 돼지고기가 53.59%인 반면 동원의 제품은 83.77%로 30% 넘게 더 많았다. 대신 세이브스모크햄은 닭고기를 25.82% 넣었지만 그래도 제조업체 브랜드(NB·National Brand)보다 고기 함량이 적었다.

같은 날 서울 중구 봉래동 롯데마트 서울역점 차(茶) 판매 매장. 커피와 녹차 등을 제외한 기타 차를 판매하는 매장에선 롯데마트의 PB제품과 한 NB제품만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NB제품은 롯데마트에 PB제품을 공급하는 업체다. 결국 한 업체의 제품이 서로 다른 포장을 하고 전체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셈이다.

대형마트 PB상품들이 ‘같은 품질 싼 가격’을 내세우며 매출 비중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가격이 싼데도 품질은 기존 제품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꾸준한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형마트 3사의 매출에서 PB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모두 20%를 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PB상품의 확산이 장기적으로 유통생태계의 혼란을 가져올 것이란 지적도 있다.

◆‘같은 품질 싼 가격’ 소비자 선택권 늘어 = PB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NB제품보다 평균 20% 최대 50%까지 저렴하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유통 과정의 마진을 대폭 줄여 저가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품질은 어떨까.

문화일보가 20∼22일 이마트 용산점, 롯데마트 서울역점, 홈플러스 동대문점을 방문, 직접 확인한 결과 특히 물, 우유, 치즈 등 원재료의 질 자체가 품질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의 경우 PB상품이나 NB제품이나 품질 차이가 없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물 같은 경우는 수원지가 같은데 어떻게 다른 품질의 물이 나오겠느냐. 다만 NB제품은 대형마트 외에도 다른 유통경로로도 들어가야 해 비용이 더 들어 가격이 비싼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마트에 PB상품을 공급하는 유가공업체 관계자도 “지금은 모두 1등급A 우유로 비슷한 품질”이라고 인정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용량을 다르게 해 ‘가격 눈속임’을 한다거나 현저히 떨어지는 품질의 제품을 내놓거나 ‘성분명’을 감추는 경우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싸게 팔아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힌다’는 PB 취지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PB상품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며 “제조업체도 대부분 업계 2, 3위나 중소업체에서 만들어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매출을 늘리는 윈윈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 그러나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힌다는 취지와 달리 진열대 대부분을 PB상품이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마트 용산점 계란 판매대에는 전체 14줄의 판매공간 중 12줄을 이마트 PB 계란이 차지하고 나머지 2줄에 풀무원, CJ, 오뚜기 계란이 움츠리고 있었다. 생수판매대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마트 PB상품인 봉평샘물과 ‘이렇게 좋을水가’를 제외하고는 농심 삼다수, 롯데DMZ, LG생활건강의 ‘휘오제주V워터’만 살 수 있었다. 용산점 인근 슈퍼마켓과 편의점에선 5~8종의 NB 생수를 팔고 있었다.

품질에 대해서도 익명을 요구한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제조업체에서 제품을 생산해 대형마트에 공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똑같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에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솔직히 이젠 판매장에서도 같은 품질의 제품이라고 하지 않고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싸게 공급한다고 설명한다”고 해명했다.

◆ 차별화된 상품기획력으로 PB상품 취지 살려야 = 전문가들은 이제 국내 PB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만큼 유통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유통학회장인 한상린(경영학) 한양대 교수는 “PB상품은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 선택의 다양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면서도 “국내 PB는 많은 경우 기존 제조업체 상품과 거의 차이가 없는 제품을 포장만 바꿔 출시하거나 제조업체에 대한 힘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유통업체는 PB의 본래 취지를 살려 제조업체와 협력해 차별화된 상품기획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병기·노기섭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