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떠나는 여행!

다방기행문 / 유성용 지음 / 책읽는 수요일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 안도 다다오 지음 / 오픈 하우스
행복한 선(禪)여행 / 정찬주 지음 / 미들하우스

매년 여름휴가 시즌을 앞두고는 여행책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게 마련이다. 여러 곳의 여행지를 찍은 빼어난 사진과 미사여구를 무기로 ‘손만 내뻗으면 금세 이런 곳에 닿을 수 있다’며 독자를 유혹하는 책들이다. 휴가를 앞두고 ‘어디갈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메뉴판을 제공해주는 셈인데, 식사가 끝나고 나면 메뉴판은 필요 없듯이 이런 책들은 휴가나 여행이 끝나고 나면 책장 한구석에 처박히고 만다.

그러나 여행에 대해 다루고 있으되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아니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독자를 이끄는 책이 있으니, 여행의 장소성을 훌쩍 뛰어넘어 확장된 시선과 사유를 통해 독자들과 교감하는 책이다. 이런 책들은 기실 ‘여행’을 앞세우고 있긴 하지만, 여행정보 대신 사람들의 삶 혹은 세상을 보는 시선 등에 대해 제법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올해도 휴가시즌을 앞두고 이런 부류로 꼽을 수 있는 3권의 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왔다. ‘다방기행문’,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행복한 선(禪)여행’. 스스로를 ‘생활여행자’라 칭하는 유성룡의 책 ‘다방기행문’은 저자가 스쿠터를 타고 전국의 쇠락한 ‘다방’을 찾아다닌 기록이고,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은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프랑스 유학을 떠난 이래 유럽의 도시 곳곳을 돌며 건축을 배우고 고민했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정찬주의 ‘행복한 선(禪)여행’은 중국의 대표적인 선사들이 머물렀던 12개의 사찰의 순례 기록을 담고 있다.

세 권의 책은 ‘여행’을 내세우지만, 여행지 정보에 대해서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다방기행문’만 봐도 그렇다. 하기야 여행정보를 제공한다 해도 누가 책에 나온 시골마을의 쇠락한 다방을 일부러 찾아갈 것인가. 그리고 촌구석 한적한 다방이 무슨 내력이 그리 많을 것이고, 그 내력을 읊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다방을 구실로 내세우면서 실상은 삶에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덧 ‘사라져가는 것들’의 목록에 오르게 된 ‘다방’을 기웃거리며 그 주변에서 만난 인연을 얘기하고, 사라져가거나 버려져 가는 것들에 오래 시선을 둔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10대 후반에서 지금까지의 여행의 기억을 반추하며 엮은 글이다. 베트남 등 아시아와 뉴욕 등도 소개되긴 하지만, 책의 대부분을 유럽지역의 도시에 할애하고 있다. 유학시절 감동해서 찾아다녔던 유럽 도시의 건축물과 그 앞에서 거듭했던 건축적 고민, 스스로의 욕망 등을 풀어낸다. 스스로의 골격이 ‘여행을 통해서 만들어졌다’고 믿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여행기록과 그 여행에서 받은 영감 등을 들여다보는 맛이 쏠쏠하다. 더불어 건축이란 단지 기능이 아니라 사유와 관찰, 구조와 역학, 경제와 미감까지 곁들여지는 종합적인 결과물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줄곧 불교에 기대 글쓰기를 해 온 소설가 정찬주의 ‘행복한 선(禪)여행’은 중국 당송시대 장시성과 후난성의 선승들이 머물던 12개 사찰을 찾아간 기록이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당시 고승들이 주고받던 선문답들. 강호의 고승들의 합을 겨루는 선문답이 마치 무협지를 방불케 한다. 1000여년 전의 고승들의 대화가 지금 이 땅에 사는 이들에게 가르침이 되기도 하고 헛된 욕망을 꾸짖는 불호령으로 읽히기도 한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