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는 빌딩숲… ‘사람’을 잊고 있었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 이경훈 지음 / 푸른숲

“서울은 대단히 큰 도시예요. 빌딩과 빌딩, 또 빌딩 ….”

미국의 뉴에이지 뮤지션 짐 브릭만이 얼마 전 내한 공연을 했을 때, 서울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그네’로서 단지 피상적인 인상만을 말했을 뿐이지만,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난개발된 실상을 들킨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책의 도발적인 제목은 서울의 ‘도시성’을 부인한다. 대학의 건축학과 교수인 저자는 서울의 현재 모습은 시민이 도시인의 삶을 제대로 향유하기에 너무 미흡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는 ‘디자인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서울을 폄훼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서울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타향이 아니라 영원히 살고 싶은 고향이 되어야 한다는 충심에서다.

저자는 뉴욕타임스가 서울을 ‘가볼 만한 곳’ 3위로 꼽은 이면을 들여다본다. 10위 안에 든 도시는 스리랑카, 파타고니아, 태국, 남극대륙 등의 지역으로 선진국 도시에 비하면 ‘오지’였다. 그러니 뉴욕타임스는 탐험하기 좋다는 의미로 서울을 꼽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히려 영국의 여행 전문지 ‘론리 플래닛’이 서울을 최악의 도시 3위로 꼽은 것에 더 눈길을 준다. 세계적으로 큰 도시이긴 하지만,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인지 성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울시의 디자인 도시 프로젝트가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연간 10만여개의 현수막이 정비됐고, 신문 판매대와 구두 수선 부스가 새롭게 디자인됐다. 보도블록의 어지러운 패턴이 단순하게 바뀌었고, 25개의 ‘걷고 싶은 거리’도 조성됐다. 또한 주요 건물의 야간 조명은 서울을 한결 화려한 도시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디자인을 통해 생활공간을 정비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혜택을 가져온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또렷이 새겼다.

이러한 노력들이 의미가 있지만, 서울을 가꾸는 방향이 근본적으로 ‘도시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가지 않으면 오늘날 세계 도시의 로망이 된 뉴욕처럼 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도시(都市)’라는 말은 ‘시장(市場)’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쇼핑하는 거리가 있는 곳이 도시다. 따라서 도시 공간에 자연 녹지를 인위적으로 늘리려고 시도하는 것은 도시성에 반하는 것이다.

농협, 헌법재판소로 쓰던 건물을 헐고 조성한 을지로 5가의 훈련원공원은 현재 사람들이 드물게 찾는 공동화지역이 됐다. 도시를 쾌적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자연’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사람을 쫓아내는 결과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뉴욕과 서울의 가장 큰 차이를 ‘걷고 싶은 거리’의 존재 여부에서 찾는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뉴욕은 사람들이 걸으면서 사색하고, 상점들을 기웃거리고, 낯익은 친구들을 만나 선 채로 수다를 떠는 도시다. 서울은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비좁은데다가 그나마 차들이 올라와 있다. 서울시에서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한 것은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다. 그런데 그 거리에 자연 친화를 강조해서 굳이 가로수를 심는 것은 사람의 진로를 방해하기 때문에 도시성에 반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쾌적함과 자연을 내세우다 보니, 오히려 불편하고 매력 없는 도시가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도심에 벤치나 작은 공원을 만들려고 하는 대신에 모든 길에 인도를 만들고 자동차가 올라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동차를 피해 조심스럽고 불편하게 걸을 필요가 없는 안전한 거리는 상점의 쇼윈도와 어우러져 ‘진짜 도시’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점에서 서울 신사동의 ‘가로수길’이 서울 거리의 미래라고 단언한다. 가로수 없는 가로수길에서 여성들이 유모차를 끌며 쇼핑을 하는 모습이야말로 도시의 진짜 얼굴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서울의 새 랜드마크로 떠오른 광화문광장이 도시 광장의 진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저 한 번의 볼거리로 찾을 수는 있지만, 주변에 상점과 카페가 없는 탓에 상시적으로 사람들이 몰려 소통하는 광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비(非)도시성’을 지적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시정 당국자들에게보다 시민들에게 더 많이 향해 있는 듯싶다. 마을버스의 편리성이 결국 동네 사람들이 걸으며 마주쳐서 소통하는 기회를 뺏고 있다는 것, 방음벽이 주변 이웃과 풍경을 차단함으로써 일종의 게토(도시의 낙후된 구역)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남향 아파트 선호가 단지 안에 짙은 응달을 만들고 있다는 것 등이 그렇다. 이것들이 개선되려면 도시 공동체를 향한 열린 마음이 전제돼야 하는데, 과연 오늘의 서울 시민들에게 그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추천사를 쓴 한경구(문화인류학) 서울대 교수는 “이 책을 읽는다고 견해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면서도 “서울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도시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고 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