癌이 현대인만의 질병이라고? 이집트 파피루스엔 ‘유방암:치료 못할 병’

암:만병의 황제의 역사 /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전 세계에서 매년 수백만 명이 암으로 죽는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인의 암 발생은 남자는 3명 중 1명, 여자는 4명 중 1명이다. 암으로 고통받지 않는 가족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암은 주변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질병이다. 그런 만큼 암과 관련된 책들도 쏟아진다. ‘기적의 암 치료법’같은 암을 치료하는 방법에 관한 책에서부터 ‘암은 내 친구’류의 책처럼 암과 더불어 사는 방법과 관련된 서적 등 각양각색의 암 관련 서적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종양학자이자 의사인 저자가 쓴 이 책은 그 같은 범주의 책들과는 전혀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 암 자체가 주는 고통과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저자의 머릿속엔 다음과 같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암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암과 벌이는 싸움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암과의 전쟁은 어디쯤 와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 ‘끝은 있을까’,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책은 바로 이런 암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들에 답을 얻으려는 시도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책의 원제처럼 ‘만병의 황제’가 된 암의 정체를 알기 위해 저자는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에 따르면 암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2625년경 살았던 이집트 의사 임호텝의 유방암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부터 비롯된다. 임호텝의 가르침이 담긴 파피루스 두루마리엔 “유방에서 튀어나온 덩어리를 살펴볼 때면 그것이 유방 전체로 퍼졌는지 알아보라. 유방 밑에 손을 대서 차가운지, 손을 댔을 때 거기에서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지를 알아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 임호텝 글의 ‘치료법’ 항목에는 단 한마디만 적혀 있다. ‘없음’.

치료에 대한 무력함을 인정하는 이 한마디 이후, 암은 고대 의학사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렇다고 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페루의 평원에서 발견된 미라의 왼쪽 위팔에는 악성 뼈종양이 분명해 보이는 딱딱한 둥근 덩어리가 발견됐으며 이집트 미라에서도 복부암의 흔적이 나왔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암을 현대의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에 일침을 가한다. 저자는 “암은 ‘현대’ 질병이기는커녕 인류 화석에서 발견된 오래된 질병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저 다른 질병에 가려서 크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암이 정작 제 모습을 드러낸 때는 천연두, 결핵 등 대량으로 인류의 목숨을 앗아 갔던 다른 질병들이 수그러든 뒤부터다.

저자는 5000년 넘게 인류와 함께 존재해 온 암의 역사와 암 치료의 발전 과정을 낱낱이 살핀다. 하지만 딱딱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암과 관련된 유전자나 DNA, 병명과 약물, 약품의 이름은 부수적으로 다뤄질 뿐이다. 의사, 환자, 과학자, 활동가, 암 환자의 가족 등 암을 직접 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쉽게 읽힐 뿐 아니라 때론 가슴 뭉클하게까지 만든다.

암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은 ‘암의 전기(傳記)’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2011년 퓰리처상(일반 논픽션 부문)을 수상하고, 2010년 ‘뉴욕타임스 북 리뷰’ 논픽션 부문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미국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과 평가를 받았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