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책읽기>‘귤나무 수탈’ ‘노동자 해녀’ 인문학적 시선으로 본 제주

제주기행 / 주강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기행’이란 제목만 보고는 그렇고 그런 ‘여행안내서’쯤으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실상은 제주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책이다. 관광지 또는 명소를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유적지를 안내하는 ‘문화유산답사기’식도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제주를 상징하는 바람, 돌, 여자, 귤 등 핵심 키워드 15개를 올려놓고 제주의 이른바 ‘원형질’을 탐색한다. 이를테면 제주의 특산물인 귤을 놓고는 백제와 신라 때부터 제주 사람들이 귤을 공물로 바치면서 수탈당한 역사를 들여다본다.

조선시대에는 관에서 민가의 귤나무를 일일이 세고 열매가 맺히면 하나하나에 꼬리표를 달아 관리하며 세금으로 거둬 갔다. 어찌나 수탈이 극심했던지 주민들은 귤나무를 심지 않으려 했고, 심지어 뜨거운 물을 뿌려 나무를 고사시키기도 했단다. 이런 방식으로 관광객들이 낭만이나 이색 풍물쯤으로 여기는 해녀를 ‘생활노동자’로 조명하기도 한다.

관광지를 안내하거나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주의 역사·문화적 실체를 깊이 조명하고 있는 만큼 또 다른 의미의 여행 가이드북도 될 법하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