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스트 셀러’서 ‘지식금맥’을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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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놓쳐서는 안될 아까운 책 / 강수돌 외 지음 / 부키

한해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서적은 4만종이 넘는다. 이중 절반이 교과서나 학습 참고서 등 학습 교재라고 치면 대략 2만종 이상이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하지만 이중 인구에 회자될 만큼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책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1만권 넘게 팔리는 책들조차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해마다 수많은 책들이 독자들에게 버림받고 ‘잊힌 책’으로 죽음을 맞고 있는 것이다.

‘흙 속에 묻힌 진주’를 다시 찾는 격이라고 할까. 이 책은 지난 10년간 출간된 책 가운데 독자의 주목을 덜 받았거나 놓치기 아까운 숨은 명저들을 전문가들의 손길을 빌려 다시 발굴해 소개한 책이다. 출판사의 표현대로라면 “값어치나 의의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되거나 아예 평가조차 받지 못하고 묻혀 버린 양서를 발굴”하고 서평과 함께 소개한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 우석훈 2.1 연구소장, 임지현 한양대 교수, 철학자 강신주, 영화 평론가 듀나, 미술 칼럼니스트 손철주 등 각계 전문가이자 이 시대의 ‘글쟁이’로 통하는 46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지 못했지만 내용은 ‘베스트’인 총 48권의 ‘숨은 진주’들을 선정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도 곁들였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장석주는 하일지의 소설 ‘진술’이 “지난 10년간 내가 읽은 한국 소설 중 가장 뛰어난 품격과 고른 재미를 갖춘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술’은 어떤 연애소설보다 더 지독하고 쓰린 아픔과 슬픔을 자아내는 연애 소설이고, 어떤 추리 소설보다 더 지독한 추리력을 요구하는 추리 소설이며, 작중 인물의 복잡한 내면 심리를 잔혹할 정도로 파헤친 심리 소설로, 한국 소설이 드물게 가 닿은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강수돌 교수가 추천한 ‘노동을 거부하라’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노동 지상주의’를 반격한다. 자본과 권력은 필요할 때는 노동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며 성실히 노동하는 걸 칭찬하지만 돈벌이가 조금이라도 어려워지면 가차 없이 노동자를 내팽개치는데, 순진한 노동자들이 ‘노동은 신성하다’며 노동 찬가를 부르는 현실을 꼬집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 놓은 공간에 ‘적응’하는 것을 인생 성공의 잣대로 삼지 말자는 게 책의 요점이다.

우석훈 소장은 지난 10년을 “부자 되세요”라는 단 하나의 광고 카피로 설명할 수 있는 경제 근본주의의 시대였다고 회상하며 “지난 10년 동안 나온 경제학과 사회과학 분야 책에서 딱 한 권을 집으라면 이 책을 집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 소장이 말하는 ‘이 책’이란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이 쓴 ‘경제학 3.0’이다. ‘돈이 모든 것을 구원해 준다’는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시대에 경제근본주의에 균열을 일으키고, 시민들과 연대해 현실에서 의미있는 움직임을 만들어 낸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책들의 서평을 읽다 보면 이처럼 지난 10년간의 변화와 사회적 맥락도 아울러 살필 수 있다.

만화평론가 김낙호는 빠르게 변하고 획일화하는 도시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한 도시 부적응자를 주인공으로 한 김수박의 만화 ‘아날로그맨’을 ‘아까운 책’으로 꼽았다. 김낙호는 “작품이 나왔던 5년 전보다 더 빠르고 맹목적으로 변화하는 지금, 느리고 모든 것을 둘러보는 ‘아날로그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