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전 中에 무릎 꿇던 유럽을 세계 중심에 우뚝 세운 원동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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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 니얼 퍼거슨 지음, 구세희·김정희 옮김 / 21세기북스

15세기 유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처럼 세계 패권의 한 축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영국은 전염병에 시달리며 심각한 공중위생, 그칠 줄 모르는 전쟁으로 비참한 나날을 보내는 침체된 나라였다. 프랑스, 포르투갈, 스코틀랜드 같은 서유럽의 다른 왕국도 나을 바 없었다.

같은 시기 중국은 어땠을까. 1411년 명나라 수도 베이징에서는 자금성 건설이 한창이었고, 톈진에서 항저우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대운하의 수리 작업도 함께 진행 중이었다.

1420년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중국의 난징으로, 당시 영국의 런던은 난징에 비교해 보잘 것 없는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1453년 근동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비잔틴 제국은 마지막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던 중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양문명의 미래가 서양문명의 미래보다 훨씬 밝아보였던 것이다.

책은 자금성 건설 당시 이후 오늘날까지 600년 동안 서양이 어떻게 상황을 역전시켜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저자인 니얼 퍼거슨은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로 2007년 베를린자유대 모리츠 슐라리크 교수와 함께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 및 보완의 ‘공생 시대’를 알리는 ‘차이메리카(Chimerica)’란 신조어를 만들어 낸 경제사학자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부, 영향력, 힘 측면에서 서양의 문명을 그토록 확대시킨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2009년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서양 우위의 시대는 끝난 것일까’라는 물음이 집필의 동기가 됐다는 저자는 “과거 서양이 패권을 잡은 진정한 이유를 알아내야만 오늘날 서양의 쇠퇴와 몰락 시점이 얼마나 임박했는지 조금이라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서양이 나머지 세계와 차별화를 이룬 요인으로 ▲경쟁 ▲과학 ▲재산권 ▲의학 ▲소비 ▲직업 등 여섯 가지를 든다.

우선 유럽은 정치적으로 분열된 탓에 한 국가 내에서도 서로 경쟁하는 다수의 조직이 있었고 이로 인해 늘 불안한 상태에 놓였는데, 이것이 군사, 경제, 무역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가져왔고 근대 민족 국가와 자본주의의 발판을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또 17세기 수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분야의 주요 혁신이 모두 서유럽에서 일어났으며, 이것이 곧 군사력 강화로 이어진 점도 서양 문명이 앞서나가는 계기가 됐다. 저자는 열대병 연구를 비롯해 공중 보건에서 19∼20세기 거의 모든 혁신이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인의 손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서양의 가장 훌륭한 무기는 죽이는 무기가 아니라 인간의 수명을 2배로 늘려준 현대 의학이라는 분석도 흥미롭다. 21세기 들어 심각해진 금융위기와 유럽의 문화적 쇠퇴, 그리고 중국의 부상은 서양 문명의 황혼이 가까워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서양이 가진 비장의 무기가 아직까지 쇠퇴하기는커녕 서양문명에 저항하는 중국, 이란, 러시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곳에서 번성하고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끈다.

“점점 더 많은 세계 나머지 지역 사람들이 서양 사람처럼 자고, 씻고, 입고, 일하고, 놀고, 먹고, 마시고,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그 주장의 근거다. 철두철미한 서양문명 중심적 시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서양 문명을 향해 다가오는 가장 큰 위협은 다른 문명이 아니다” 며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무기력함, 그리고 그것을 더욱 부추기는 역사적 무지”라고 말한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