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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수도권 명산 30選 게재 일자 : 2011년 08월 05일(金)
600년 역사 성곽따라 한발한발… ‘조선의 脈’을 밟다
(13) 북악산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2007년부터 전면 개방된 북악산 성곽길이 청운대에 이어 인왕산, 남산으로 뻗어 있다. 가운데로 보이는 서울 시내와 남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선다.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  1968년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할 당시 치열한 총격전 속에 탄흔이 남겨진 ‘1·21사태 소나무’. 김낙중기자
북악산(北岳山·342m)만 달랑 오르기보다는 인왕산(仁王山·338.2m)을 먼저 올라야 한다. 인왕 정상에서 눈앞에 좌우로 펼쳐진 북악 아래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 남대문, 남산, 관악산까지 죽 살펴본 뒤 북악을 올라야 두 산이 품어 온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두 산은 조선 창업부터 근현대사, 현재까지 600년 넘게 이 땅 권부의 성쇠를 지켜봐 왔고 한때 왕조의 ‘주산(主山)’ 자리를 놓고 힘겨루기를 했으니 말이다.

‘청와대 뒷산’ 북악산은 2007년 4월 일반에 전면 개방(실제는 북악산 성곽길)됐다. 1968년 북한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습격을 노린 ‘1·21사태’ 이후 38년 만이었다. 그 사태 이후 바로 생겨난 게 북악스카이웨이다. 당시 미아리~정릉~북악산~자하문을 잇는 방어 및 관광용 도로로 만들었다. 우선 이 지역에 조명을 훤히 밝히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북악산 자체는 철통경비 속에 시민들이 접근할 수 없었다.

2일 인왕산에서 창의문으로 내려와 오른 북악산은 해맑은 얼굴로 반겨 주는 듯했다. 백악산(白岳山)이란 이름도 갖고 있는 북악산은 남경(한양) 천도론이 일던 고려 숙종 당시에는 면악(面岳)이라고도 불렸다. ‘얼굴산’이다. 그렇게 보면 북악산은 서울의 맑고 귀한 얼굴이다.

그러나 북악산만큼 흉흉한 풍수설에 시달린 산도 없다. 풍수가 유난히 위세를 갖는 우리나라 일반에 북악산에 대한 인상이 그다지 곱진 않다. 가장 흔한 게 ‘서울의 정룡(正龍)인 북악산이 생기를 내뿜는, 즉 용의 목구멍에 해당하는 지역이 지금 청와대 자리인데, 천하 제1의 명당이지만 너무 기(氣)가 세어 사람이 살 곳이 아니고 귀신이 살 자리…’라며 역대 대통령의 운명이 어떻다는 둥 하는 것이다. 또는 북악산의 형상이 뾰족하니 사나워 나라 사정이 순탄치 않다는 둥….

북악산을 둘러싼 풍수논쟁은 조선 창업 당시 도성(都城)을 세울 때 무학대사의 ‘인왕주산론’과 정도전의 ‘북악주산론’의 충돌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 풍수논쟁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결국 정도전이 이겼고, 북악을 주산으로 남산을 안산(案山), 낙산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게 됐다. 한데 무학은 “내 뜻을 200년 후에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조선 개국이 1392년이니 정확히 1592년에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피란하는 임진왜란을 겪었다. 정사(正史)에는 없는 이 같은 전언들이 오랫동안 민중의 의식 아래에 북악산의 인상을 흉흉하게 심어 놓았다.

풍수를 허투루 볼 것만은 아니다. 현대철학과 건축이론은 공간이 사람의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데 동의한다. 최근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난리를 겪었지만, 풍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보는 것이다. 그래도 근거없이 재생산돼 온 북악에 대한 풍수론은 벗어던질 때가 된 것 같다. 한번 북악산을 찾아 그 잘생긴 얼굴을 보면 달라진다.

자하문 터널 위 창의문 옆에 북악산 안내소가 있다. 신분증을 지참하고 간단한 출입신청서를 써야 한다.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에는 입장할 수 없으며 오전 9시(동절기에는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입산이 가능하다.

창의문은 조선시대 사소문 중의 하나다. 자하문으로 더 잘 알려졌고 북문으로도 불렸다. 예전에 경기 양주 등 북쪽으로 통행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문을 거쳤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성곽을 따라 놓인 계단을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쉬엄쉬엄 30분은 걸린다. 정상에는 ‘白岳山’이라 적힌 표지석이 있다. 정상에서 광화문 쪽을 바라보면 새삼스럽게 북악과 경복궁~광화문~남대문이 자로 잰 듯 일직선상에 또렷하게 놓여 있다. 우리가 평소 잊고 있던 서울의 원래 축(軸)이다. 서울의 나머지 길들은 여기서 뻗어 나간다. 멀리 관악산 역시 직선상에 들어온다. 그러니 관악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숭례문을 남서쪽 방향으로 틀고 현판을 세로로 세웠으며, 광화문 양쪽에 해태상을 세운 것이다. 600여년 전 정도전이 바로 이 자리에 올라 왕도(王都) 구상을 했을 것이다.

정상인 북악마루에서 숙정문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1·21사태 소나무’를 만난다. 수령이 200년 된 이 소나무에는 15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어 당시 ‘김신조 일당’과의 치열했던 전투를 말해 준다. 공비들이 여기까지 왔다면 사실 청와대 뒷덜미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김신조 루트’를 보자면 숙정문에서 빠져나와 오르막과 내리막을 640m 정도 지나면 된다. 김신조 루트의 끝부분에 많은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호경암이 있다. 당시 가장 격렬하게 전투를 벌인 지역이다.

연계산행이 유행하는 요즘에는 인왕산~북악산~북한산~백련산~안산을 잇는 5산 환종주(環縱走)가 인기를 얻고 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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