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가난한 처녀 혼인’ 국가가 책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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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 이종묵 지음 / 문학동네

조선시대 혼인예식 때 사치 풍조가 성행한 탓에 가난해서 혼인을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정조시대 이옥의 희곡 ‘동상기’에는 ‘세상의 어려운 일 세 가지’로 권세 없는 무반이 처음 벼슬길에 나아가는 일, 지필묵조차 없는 가난한 선비가 감시초시(監試初試)에 합격하는 일, 그리고 가난한 처녀가 혼인하는 일이며, 그중 가장 힘든 것이 가난한 처녀의 혼인이라고 적혀 있을 정도다. 법령집 ‘경국대전’에는 가난 때문에 혼기가 꽉 차도록 혼인하지 못했을 때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적혀 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 목민관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가난한 백성의 혼인 주선이며, 홀아비와 과부의 혼인을 권하는 일까지 포함시켰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며 자유연애를 금했지만, 국가가 가난한 노처녀의 혼인을 위해 재정적인 지원을 하며 혼인에 적극 관여했다. 남녀가 서로 좋아 결혼하는 남녀상열은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기에, 한동네에서 낯을 익힌 청춘남녀도 중매란 절차를 거쳐 부부의 연을 맺었다. 서로의 의지로 사랑을 나누고 결혼에 이르는 소설과 야담 속의 일화에서 당대 사람들의 꿈을 읽어 낼 수 있다.

고서를 연구하는 인문학자인 저자는 옛사람이 남긴 시와 글을 통해 옛사람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풍속을 읽어 낸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지근한 부부의 문제, ‘부부가 어떻게 살았는가’와 ‘부부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는가’란 주제를 저자는 옛 기록과 더불어 진지하게 성찰하고 이 시대와의 연결을 시도한다. 옛사람의 삶이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랑과 결혼, 혼인의 풍속, 갈등과 화해, 부부유별과 효, 이별과 그리움 등의 주제별로 옛 부부의 이야기를 반추하면서 오늘의 부부 관계를 모색해 본다. 조선시대 부부의 삶이 만남부터 죽음까지의 차례로 정리돼 있다.

늘 함께 지내며 사랑하는 것을 부부라 생각하는 오늘과 달리, 부부간에 애정보다 공경을 강조한 조선의 부부유별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분석이 이뤄진다. 당시 혼인의 목적이 부모를 섬기고 후사를 잇는, 효 실천의 한 방편이었던 만큼 유학자들은 부부가 지나친 애정에 빠지면 공경심을 잃어 가정 파괴에 이른다고 여겨 가정을 지키기 위한 윤리로서 부부유별이 중시됐다는 지적이다.

이 책에 인용된 글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옛사람들의 다양한 러브 스토리를 접할 수도 있다, ‘옆집 사는 여편네 혼자 자면 얼마나 추울까’ ‘어찌하여 뺨에 바른 연지가 낭군 얼굴에 가득 묻었나요’라는 이안중의 ‘월절별곡’은 신혼의 즐거움을 열두달로 나눠 묘사한 글이다. 또한 가족 사랑이 인생의 즐거움이라며 가족과 함께하는 산책이라든지 중년부부의 은근한 사랑을 담아낸 18세기 문인 오숙의 글 등 선비의 시 일기 편지글 등이 다수 수록돼 있다.

가부장적인 관점과 거리를 둔 저자의 옛 부부 이야기는 오늘의 아내와 남편에게 되새겨 봄 직한 부부 관계의 노하우를 은근하게 전달하고 있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